임헌영 / 문학평론가

일본과 한국, 두 풍경의 국회


지난 2-3월에 걸쳐 일본 국회에서 작은 소동이 있었다. 사단은 “일본 통치하 조선에서 일어난 일”을 묻는 4지선다형 대학입학시험 문제였다. 그 정답이 “조선인 강제 연행”이란 사실이 밝혀지자 자민당 소장파 중의원, 참의원 80여 명으로 구성된 ‘일본의 앞날과 역사교육을 생각하는 젊은 의원모임’이 “강제 연행은 제2차대전 후 일본을 규탄하기 위해 정치적 의미를 지닌 조어(造語)”로, “정말 조선인을 강제 연행했는지 여부가 확인되지 않았는데 왜 이것을 문제로 출제했나”며, “확실한 결론이 나지 않은 내용을 정답으로 처리하면 국가가 이를 용인한 결과가 된다”고 목청을 높였다.
관할부처인 문부과학성은 “출제한 사람의 신상정보를 공개해 문제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이겠다”며 한껏 쟁점을 부풀렸다.
일제의 조선인 강제 연행은 어림잡아도 석탄·광산 등에 60여 만, 군수공장에 40여 만, 토건공사에 30여 만, 금속·항만 노동에 20여 만 등 150여 만 명에다, 강제 징집 60여 만, 여기에다 정신대 등을 합치면 수백만 명, 강제 유이민을 합치면 거의 천만에 육박한다. 이 참상을 다룬 연구논문과 저서가 한국은 물론 일본에도 수 천에 이르며, 그 희생자들이 지금도 어렵게 살아있어 배상 청구 소송까지 전개하는 판인데 증거가 없다는 논리를 당당하게 펼 수 있는 특권은 아마 ‘국회의원’들만이 지닌 철면피에서나 가능하리라.
이와 대조적으로 일본은 15명 안팎인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를 국제화하여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할 정도로 엄포를 쏘아대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해 보자.
이럴 즈음 철면피라면 뒤지지 않을 여의도의 한국 국회의원들은 부정부패로 구속된 동료 의원 석방 결의, 위법 의원 구속 저지를 위한 시위와 방탄 국회 따위의 활동으로 시간당 134만원을 챙기고 있었다. 이런 작태와 함께 ‘일제 강점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일제의 ‘강제 연행’을 부추겼던 세력에 대한 역사적인 청산 작업을 위한 법률안을 누더기로 만드느라 일대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한국 국회의사당 안에서 우리의 손으로 뽑아준 의원들이 우리가 낸 세금을 낭비해 가며 ‘일본의 앞날과 역사교육을 생각하는 젊은 의원 모임’이 할 일을 대신해주고 있는 진풍경이었다.
희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제2막으로 이어졌다. 제85회 삼일절 기념사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고이즈미 총리의 각종 대한(對韓) 정책 발언과 신사참배 문제를 빗대어 “우리 국민들의 가슴에 상처를 주는 발언들을 인기에 급급한 한 두 사람의 정치인이 하더라도 적어도 국가적 지도자 수준에서는 해서는 안 된다”고 하자, 야당은 “총선용”이라고 예의 저 ‘일본의 앞날……’ 모임이 했을 법한 공격을 가했다.

입시 문제로 치자면 우리에게도 소동을 일으킬 여지가 있었다. 2004년도 수능시험 언어영역의 예시문 중 친일파 서정주의 시 <외할머니의 뒤안 툇마루>가 있었다. 그렇게 많은 교사들이, 그렇게 열심히 정답을 맞추면서도 정작 이런 식의 출제에 이의를 제기한 적이 아직까지 없었다. 그러니 그냥 넘어가자면 문제가 사라질까? 결코 그렇지 않다. 하고 많은 시들 중에서 왜 하필 친일파의 작품이냐는 항의가 당연히 나와야 하거늘 태평스럽게 잠잠한 건 일본의 경우와 비교할 때 너무나 형평이 안 맞는다.
이렇게 살뜰하게 친일파를 챙겨 옹호 선전해주는 행위에 대하여 아마 ‘일본의 앞날……’ 같은 의원들은 얼마나 크게 찬양 고무될까. 그래서 그들은 틈새만 생기면 독도 소유권 강짜부터 침략이 도리어 경제 발전을 이룩해 주었다, 강제 연행 부인, 정신대도 자원했던 것 등등을 거론하며 도둑놈이 주인 나무라듯 호통을 쳐댄다.
‘일본의 앞날……’은 극우파들이며, ‘일제 강점하 친일반민족 행위……’법을 개악한 의원들도 같은 맥락이다. 그들은 이라크 파병에 찬성하며 미국에의 종속이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일본 극우파가 자국의 이익을 위하여 해외 파병도 불사한다면, 우리의 극우파는 미국이 원하니까 우의를 해치지 않기 위하여 파병해야 된다는 점에서 다르다. 일본 극우파들이 좋아할 활동을 열심히 하는 국회의원,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하여 헌신하는 국회의원을 왜 또 우리의 손으로 뽑아야 할까. 그런 의원을 뽑아 주고도 우리는 태연스럽게 우리나라가 잘 되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


■약력
`- 1941년 경북 의성군 구련1리 생
`- 중앙대 국문과, 동대학원에서 현대문학 전공
`- 1966년 <현대문학>을 통해 문학평론가로 등단
`- <약업신문><경향신문> 등 기자, 중앙대 등 강사
`- <월간 다리><월간 독서><한길문학><한국문학평론> 등 주간
`- 현재 중앙대 국문과 겸임교수
임헌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