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효심이 지극하구나

부모님의 은혜는 태산보다 높고 하해(河海)보다 깊다는 말이 있듯이, 그 은혜는 끝이 없는 것이다. 부모님의 은혜를 어찌 필설(筆舌)로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우리는 부모님께 어떻게 하고 있나? 연로하신 부모님을 모시지 않으려는 자식이 있는가 하면, 부모님을 구박하는 자식, 심지어는 부모님을 굶기거나 구타하는 자식, 시해(弑害)하는 자식도 있다. 이들은 부모님의 지독지정( )을 모르는 금수만도 못한 자들이다. 이러한 자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으니 기막힌 세상이다. 하기야 2001년 외국의 모단체에서 아시아 각국의 젊은이들에게 설문조사를 한 결과, 우리나라가 부모 효도와 어른 공경에서 꼴찌를 했다고 하니 더 말해 무엇하랴 … 그때 매스컴에서는 이제 동방예의지국의 간판을 내려야 할 때라고 떠들썩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것도 그때뿐이었다. 사실 이에 대한 범국민적인 각성도 대책도 없었다. 그러니 이후 더 나아질리 만무하다. 이러한 얘기는 첨단정보화시대·핵가족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고리타분하고 진부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는 우리가 매일 호흡하는 공기의 소중함을 잊고 살아가는 것과 똑같다.
「사자소학」에 보면 ‘부모님의 은혜는 높기가 하늘과 같으시고, 은덕은 두텁기가 땅과 같으시니 사람의 자식된 자가 어찌 효도를 하지 않으리오’ 라는 구절이 있다. 참으로 옳은 말이다. 효(孝)라는 글자는 아들(또는 자식)이 늙은 부모를 섬기는 뜻이요, 늙은 부모를 아들이 업고 있는 형상이다. 이러한 효에는 양지(養志 : 마음에서 우러나온 진정한 효)와 양구(養口 : 물질적인 효)가 있다. 우리가 부모님에게 용돈을 드리거나 효도관광을 보내드리는 것은 ‘양구’에 해당된다. 요즈음 ‘양지’는 커녕 ‘양구’도 못하는 자식들이 수두룩한데 더 이상 언급해 무엇하리요 … 학생들은 부모님께 걱정끼쳐 드리지 않고 각자 자기 중심을 잡고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효도하는 것이다. 이것이 ‘양지’의 하나라고 본다.
「효경대의(孝經大義)」에 보면 ‘사람의 행동에 효도보다 더 큰 것이 없다’ 고 하였다. 그런데 ‘인의예지신’ 중 ‘인(仁)’이 그 근본이라 할 수 있다. ‘인’이란 사랑하는 것이 그 핵심의 하나이다. 사랑 가운데 부모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은 없다. 그런 까닭에 효도가 덕의 지극한 것이 되는 것이다. 또한 ‘오륜’이 모두 ‘도(道)’이기는 하지만, 친히 낳아 무릎아래서 기른 것이 행동의 제일 먼저이기 때문에,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야 말로 ‘도’의 가장 중요한 것이 된다.
「미암일기」에는 효와 관련된 내용이 많다. 여기서는 유희춘의 부인 송덕봉(宋德峯)이 남편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 일부를 소개한다.

“진실로 뒤늦게나마 부모님께 효도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서도 힘이 부족해서 소원을 이루지 못한 사람이 있으면 어진 사람과 군자가 모두 유념해서 구해주고자 하였습니다. 제가 비록 어리석고 미련하지만 어찌 그 강령을 모르겠습니까? 그래서 부모님께 효도하려는 마음을 옛사람을 좇아 따르고자 합니다. … 그러나 제가 홀로 생각하며 잠 못이루고 가슴을 치며 속상해 하는 것은 옛날 친정아버지께서 항상 자식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죽은 뒤에 모름지기 성심을 다해서 내 묘의 곁에 비석을 세우도록 하라’ 하셨는데, 그 말씀이 지금도 귀에 쟁쟁하게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우리 아버지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지 못했으니 매양이를 생각하면 슬퍼서 눈물이 눈에 가득합니다. … 당신은 저한테 편지하기를 ‘동복(同腹)끼리 사비(私備)로 하면 내가 그밖의 일을 도와주겠오’ 라고 하니 이 무슨 마음입니까? 당신의 맑은 덕행에 누가 될까봐 그런 것입니까? 처부모에게 차등을 두어서 그런 것입니까? 아니면 우연히 살피지 못해서 그런 것입니까? … 동복끼리 사비를 들여 하라는 말은 크게 불가합니다. … 만약 친정집에서 마련할 힘이 있다면야 저의 성심으로 진작해버렸을 것입니다. 어찌 꼭 당신한테 구차하게 부탁하겠습니까? … 시어머님이 돌아가셨을 때 (이때 유희춘은 종성에서 유배생활을 했음) 진심으로 힘을 다해 예법에 따라 장례를 지냈고 제사도 예법대로 지냈으니 며느리로서 도리에 부끄러운 것이 없습니다. 당신은 어찌 이런 뜻을 생각하지 않습니까? 당신이 만약 저로 하여금 평생의 소원을 이루지 못하게 한다면, 제가 비록 죽더라도 지하에서 눈을 감지 못할 것입니다. 이 모두 지성에서 느껴 나온 말이니 글자마다 자세히 살피시기 바랍니다.”
아내 송덕봉이 당시 전라감사로 있던 남편 유희춘에게 친정아버지 묘에 비석세우는 마지막 작업을 도와달라고 청했으나, 유희춘은 사비를 들여 하라고 거절하였다. 그러자 송덕봉은 애통한 심정으로 다시 한번 간곡하게 부탁하였다. 이에 유희춘은 아내의 효심이 지극함을 깨닫고 도와 준다.
「명심보감」에 ‘내가 부모님에게 효도하면 내 자식 또한 나에게 효도하나니, 내가 부모님에게 효도하지 않는다면 내 자식이 어찌 나에게 효도하리오’ 라는 구절이 있다. 우리는 이를 명심할 필요가 있다.
솔직히 필자도 불효막심한 자식이다. 어리석고 미련한 자식을 위해 일주일에 한번씩 강에 가셔서 자라를 방생하셨던 돌아가신 어머니와 끝없는 사랑을 베풀어주시는 인자하신 아버지께 너무나 죄송스럽다. 반성 또 반성하면서 생존해 계신 아버지께 만이라도 늦게나마 더욱더 효도하리라 다짐해 본다.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효도해야지 돌아가신 뒤에는 아무 소용이 없다. 우리 모두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효도하자.
송재용<동양학연구소 연구실장>
송재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