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언(寓言) 읽기의 즐거움-30노인과 古家

오늘 소개하는 우언은 『매일신문』 1898년 8월 31일자에 소개된 것으로, 한말 기울어가는 나라의 형세를 다시 붙들어 세우고자 하는 우국충정이 담긴 글이다.

동촌 낙산(洛山) 밑에 커다란 집이 하나 있으니, 안채와 사랑채며 좌우 익랑(翼廊)들과 곳간도 많고 대문 중문 채며 종의 방까지 합하여 삼백여 칸이나 되는데다가 본래 지경도 굳게 다지고 목재도 잘 쓴 집이었다. 또한 원림(園林)을 잘 가꾸어 온갖 수목과 각색 화초가 많으며, 앞뒤로 수백 이랑이나 되는 텃밭이 있어 각종 곡식과 채소를 심어 먹었다. 애당초 집을 지을 때 주인은 수년 동안 온갖 정성을 다 쏟아 부었을 뿐 아니라 대대로 그 집을 잘 지켜 내려왔다.
그 뒤 세월이 흘러 여러 대(代)를 지났다. 불행히도 주인 내외에게는 자식이 없어 일가(一家)에서 양자를 들여 대를 잇게 되었다. 주인이 죽은 후 양자로 들어온 아들이 그 집을 관활하게 되었는데, 사람됨이 총명하고 인자하여 모르는 것이 없었다. 다만 한 가지, 중심을 잡지 못하여 남의 말을 잘 듣고 이리저리 끌려 다녔으며, 주색을 좋아하는 것이 흠이었다. 간사하고 교활한 노복들이 주인의 그러한 점을 엿보고 완호지물(玩好之物)로 꾀이고 요염한 미색(美色)으로 후려내니, 불과 몇 년이 가지 않아 가산은 거의 탕진될 지경에 이르렀고, 돌보지 않은 집안과 장원은 퇴락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집문서를 잡히고 빌려 쓴 돈이 많아 한도가 넘으니 문서를 잡은 사람들은 제각기 집 한 채씩을 비우라고 독촉하고, 그 동리 돈 있는 사람들은 수십 대 지켜 내려온 남의 집을 싸게 살 생각으로 그 간사한 노복들에게 술과 음식을 주며 꾀었다.

그래도 충직하고 의기가 있는 몇몇 노복은 주인집이 이 지경이 되어가는 것을 보고 차마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때때로 주인에게 간하여 아무쪼록 마음을 돌리게 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주인은 들을 때는 그럴 듯하게 여기다가도 간사한 노복이 한번 참소하면 그 말을 듣기는커녕 도리어 미워하고 꾸짖으며 때려서 내쫓기까지 하였다. 충성되고 의기 있는 노복들이 울며 간하여도 여러 차례 이런 일을 당하고 보니 어떻게 할 수 없었다. 마침내 매일 모여서 어떻게 하면 집안을 보전하고 장원을 수축하며 남의 빚을 갚고 간사한 노복들을 물리치며 주인의 마음을 돌려서 가업을 회복할 수 있을까를 의논하였다. 밤낮 가리지 않고 모여서 의논하고 궁리하다가도 주인집에 어렵거나 급한 일이 있으면 이들은 물불을 가리지 않고 앞장서서 갖은 고초를 다 겪으면서도 싫어하는 기색 하나 없이 문제를 풀어나갔다.
이렇게 지낸 지가 오래되었는데, 주인이 차츰 나이 들어가면서 본래 총명한 성품이 돌아와 하루아침에 환히 깨달았다. 주인은 그 충성스럽고 의기 있는 노복 몇 사람을 불러 자신의 과거 잘못을 스스로 책망하고 그들의 충성으로 지금껏 집을 보전할 수 있었던 데 대하여 무한히 사례하고 다시 가업을 회복할 방책을 물었다. 그러자 노복들은 감격에 겨워 그 아래 엎드려 눈물을 흘렸다.
한편 그날부터 간사하고 교활한 노복을 물리치고 주인과 노복이 한 마음이 되어 부지런히 노력하여 수년 동안에 남의 빚도 다 갚고 집안도 깨끗이 정리하여 장원도 넓히고 원림도 잘 가꾸었다. 그리고 꽃 피는 달밤이면 일가가 상하노소 가리지 않고 단란하게 모두 모여 잔치를 하고 즐겼다고 한다.
윤승준<교양·강의전담> 초빙교수
윤승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