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 서울

37.서울의 장밋빛 꿈 : 60년대 문학 텍스트에 나타난 서울의 미래상

60년대 말 강남 신시가지 들어서며 ‘철학부재 서울’의 도래
‘벌써 돈 있는 사람들은 강건너 땅을 무더기로 사 두었다’<서빙고역 풍경 중>


▲서울시 중구 황학동 청계고가도로의 모습.

물질적 풍요만이 잘 사는 것일까?
물질만능이 정신·신앙·문화를
피폐시켜 종국엔 물질적 쾌락만 남는다

경제개발 계획이 본 궤도로 들어선 1960년대 이후 서울은 급격히 팽창하기 시작했다. 서울의 팽창은 단순히 양적인 변화만이 아니라 질적인 변화를 불러왔다. 산업구조의 변화에 따라 서울의 거주민들은 대부분 화이트칼라층인 사무직 종사자와 전문직 종사자들로 바뀌게 되었고 이들을 중심으로 서울의 문화도 변화하게 되었다.
서울에는 새로운 주거공간인 단지 아파트가 1961년 마포 아파트를 필두로 속속 건설되었고, 주상 복합아파트인 세운상가가 1967년 개관되었다. 늘어나는 교통량에 맞춰 1967년 3.1 고가도로(청계고가도로)가 건설되었고, 한강 이남과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제 3한강교(현 한남대교)가 1969년 완공되어 강남 신시가지 개발의 발판이 마련되었다. 서울은 풍요 속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이호철은 <서빙고역 풍경>(1965)에서 강남 개발이 가지고 있는 이면의 세계를 잘 형상화하고 있다.

‘강 건너 들판은 고즈넉하다. 강바람이 더욱 차진다. 승현이가 말했다.
‘앞으로 서울은 이쪽으로 뻗는다든데요. 벌써 돈 있는 사람들은 저 건너 땅을 무더기로 사두었다든데요.’ ‘암튼 제 3한강교가 서겠지.’ ‘여기 사는 이 사람들은 어떻게 되지요?’ ‘어떻게 되겠지’’

그 후 강남 개발로 투기 열풍이 불고 부동산 졸부들이 양산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강남개발에 의해서 서울은 강남지역과 강북지역이라는 두 개의 주거 공간으로 재편되게 되는데 이 때부터 서울의 중심은 두 개의 축으로 분열되게 된다.
이렇듯 팽창하는 서울과 함께 서울 시민들의 꿈도 자꾸만 커져갔다. 김춘수 시인은 당대 서울 시민들의 내면 풍경을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저녁 한동안 가난한 시민들의/살과 피를 데워 주고/밥상머리에/된장찌개도 데워 주고/아버지가 식후에 석간을 읽는 동안/아들이 식후에/이웃집 라디오를 엿듣는 동안/연탄가스는 가만가만히/주리기의 지층으로 내려간다./그날 밤/가난한 서울의 시민들은/꿈에 볼 것이다./날개에 산홋빛 발톱을 달고/앞다리에 세 개나 새끼 공룡의/순금의 손을 달고/서양 어느 학자가/Archaeopteryx라 불렀다는/주라기의 새와 같은 새가 한 마리/연탄가스에 그을린 서울의 겨울의/제일 낮은 지붕 위에/내려와 앉는 것을’ (<겨울밤의 꿈> 전문)

연탄을 제재로 한 이 시 텍스트에서 당대를 살아가던 시민들의 정서를 읽을 수 있다. 지금은 간혹 가다 갈비집에서나 만날 수 있는 연탄은 당시 서민들의 생필품 중의 하나였다. 연탄은 혹한의 겨울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가장 중요한 연료였기 때문이다. 시의 화자는 연탄을 통하여 석탄의 기원인 주라기를 떠올린다. 그리고 연탄가스에 그을린 서울에 거주하는 시민들의 꿈과 거대한 시조새를 중첩시킨다. 서울시민들은 비록 가난한 서민들일지라도 풍요로운 미래를 꿈꾸고 있었다. 그들의 꿈에는 날개달린 공룡새가 퍼덕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연탄이라는 메타포에는 삶과 죽음이라는 상반되는 의미가 중첩되어 있었다. 따뜻함과 더불어 일산화탄소라는 치명적인 독소. 연탄이 주 연료였던 6,70년대는 연탄가스 중독으로 수많은 인명이 세상을 떠났다. 웬만한 병원들은 모두 고압산소기가 설치되어 있었다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당시 연탄가스 중독사고는 매일매일 일어나는 일상적인 사건이었다.

이러한 연탄의 메타포를 통하여 서울시민들의 꿈이 가지고 있는 이율배반성이 드러난다.
이러한 꿈이 가지고 있는 이율배반성을 김현 교수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박정희가 권력을 잡은 이후부터, 단 하나의 당론이 모든 것의 우위에 있었다 : 우리는 잘 살아야 하고, 잘 살 수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전제가 붙는다. 물질적으로 잘 사는 것을, 그는 그냥 잘 산다로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물질적으로 좀 부유해졌다고, 과연 잘 사는 것일까? 그는 물질을 올리고, 정신·신앙·문화를 낮춘다. 언제까지? 다 피폐해져서, 물질적 쾌락만 남을 때까지? 그는 상징적인 히로뽕 판매자였다’ (<행복한 책읽기>,문학과지성사, 1992) 이러한 서울의 꿈에 대해서 <서빙고 역전 풍경>의 화자는 더욱 냉소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소설의 화자는 서빙고 지역의 음울함을 비판적인 시선으로 그리면서 ‘차 안의 승객도 설핏하고 쓸쓸하다. 불빛도 으스무레하다. 바로 뒷자리에 공대 배지를 단 여학생 둘이 책을 든 채 잠이 들어있다. 머리가 좋게 생겼다. 머리가 좋은 여학생들은 모든 귀찮은 일을 피해서 공과를 선택했을 것 같다.’라고 서울의 세태 변화에 대해서 민감하게 반응을 하고 있다. 머리가 좋은 여학생이 모든 귀찮은 일을 피하기 위해서 공과대를 선택했다는 언급을 통해서 철학 부재의 시대가 도래 하고 있음에 우려 섞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당시 개발독재 정권이 제시한 풍요의 미래상은 왜곡된 풍요였다. 정신적 가치를 인정하지 않은 물질적 풍요는 인간적인 행복을 파괴하는 것이며 결코 잘 사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당대인들은 미래를 꿈꿀 수밖에 없었고 이러한 꿈은 서울이란 공간을 장밋빛 공간으로 치장하여 놓았다.

장두식<대중문화연구소 연구원>
장두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