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로(言路)를 막지 마소서

직장에 다니다 보면 중요한 업무를 처리하거나 갑작스럽게 큰 문제가 발생하여 이를 처리해야 할 때가 있다. 이때 우리는 여러 부류의 상사를 접하게 된다. 그 중에는 부하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합리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상사가 있는 반면, 부하들의 의견을 묵살하고 독불장군 식으로 일처리를 하는 상사도 있다. 그런가 하면 부하들에게 전적으로 떠넘겨 처리하게 하는 무책임하고 무능한 상사도 있다. 이 가운데 누가 상사로서 자질이 있는지는 구지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특히 고위공직자나 재벌총수 등과 같이 관공서나 기업체를 책임지거나 경영하는 사람들의 경우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 이들은 때로는 신중하게 판단하여 결심을 한 후,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홀로 결단을 내리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아랫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한 후 결정을 내린다. 중요한 것은 책임자로서 어떤 일을 결정하기 위해 부하들의 의견을 얼마나 듣느냐에 달려있다. ？서경(書經)？에 보면 ‘좋은 말이 감추어지는 바가 없게 하라’는 구절이 있다. 순(舜)임금이 한 말로 좋은 의견이라면 그것이 누구의 것이건 상관없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이다. 참으로 맞는 말이다. 우리는 이 말을 깊이 명심해야 할 것이다. 특히 지도자인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그런데 금년 10월 11일자 모일간지 기사에서 대기업에 다니는 40대 초반의 직원이 입바른 소리를 많이 했다 하여 상사의 지시로 왕따(집단 따돌림)를 당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세태 탓인지는 몰라도 세상이 변한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한심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이런 상사는 자격 미달의 상사요, 회사의 암적 존재일 뿐이다. 그러므로 이런 자들이 많은 직장은 결코 발전이 있을 수 없다. 오히려 망하기 십상인바 이러한 무리들은 가차없이 추방시켜야 한다.

주(周)나라 유왕(幽王)이 망한 이유 중의 하나가 언로를 막았기 때문이다. 유왕은 본래 잔인무도한 임금이었다. 산 사람을 호랑이에게 먹이고, 사람의 심장을 도려내는가 하면, 태아의 성별을 확인한다고 직접 임산부의 배를 가르는 등 인간성을 상실한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총애하는 포사(褒 )의 미소를 보기 위해 포락( 烙)의 형벌까지 행했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어리석고 무능하고 포악한 유왕이 언로를 철저히 차단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대부(大夫) 조숙대(趙叔帶)가 자기에게 미녀만 취하지 말고 정직하고 유능한 자를 등용하여 나라의 과오를 바로잡고 하늘에 용서를 빌어야 한다고 상소를 올리자 추방시켜 버렸다. 그러자 대신(大臣) 포향(褒珦)이 이에 분노해서 간(諫)했지만, 그 역시 감옥행이었다. 이때부터 그 누구도 다시는 간하지 않았다. 결국 유왕은 피살당하고 나라는 망하고 말았다.
？미암일기？에 보면, 언로를 막지 말라는 내용이 있어 여기에 소개한다.
“신 등이 가만히 침묵을 지키고 있으면 족히 조용히 있지 않았다는 의심을 피할 수 있고, 어물어물하며 노상 후하게만 하면 마음에 맞는다는 이름을 얻을 수 있고, 준례에 따라 처사하며 글에 따라 강(講)한답시고 하여 자기의 직책이나 메우는 식으로 나갈 줄 알지 못하는 바도 아니온데 무엇이 안타까워서 권귀층(權貴層)을 건드려서 위로 명주(明主)의 의심을 자초하겠습니까? 진실로 근반(近班 : 시신<侍臣>)에서 대죄하고 논사(論思)의 직(職)에 있으면서 이 사람이 옳지 못함을 확실히 알고도 고하지 아니 하오면, 이는 위로 임금을 저버리고 아래로 평소의 배운 바를 저버리는 것이어서 신하로서 취할 바가 아니옵니다.… 아! 나라의 일이 날로 글러만 갑니다. 군자와 소인이 한데 섞여 있고, 흑백이 분간되지 않고 청론(淸論)이 사라져가고 기강이 날로 문란해지며 심복(心腹)의 충현(忠賢)이 없고 간당들은 넘겨다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전하께서는 이것을 근심하지 아니하시고 도리어 언로를 막으려 하시니 이에 혹시 성상께서 미처 생각을 못하신 것이 아니옵니까? 신 등은 임금을 사랑하는 의(義)가 간절하여 황송한 말씀을 올리는 것이옵니다.”
홍문관의 젊은 관리들이 선조(宣祖)에게 언로를 막지 말 것을 강력히 주청(奏請)한 내용이다. 언로를 차단한 왕치고 치적을 남긴 훌륭한 왕은 없다. 마찬가지로 언로를 차단하는 자는 소인배요, 자신과 자신이 속한 조직을 망치는 자이다. 위정자나 재벌총수가 이렇다면 그 나라나 기업은 희망이 없다. 특히 요즈음 정치판을 보면 찬동세력이나 동조세력의 말만 듣고 반대세력의 의견은 아예 들으려 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비판하기 일쑤이다. 이러면 볼 일 다 본 것이다. 어찌 이다지도 속 좁은 협량(狹量)의 정치를 하는지 모르겠다. 제발 어리석은 짓 좀 그만했으면 좋겠다. 국민이 두렵지 않은가?
송재용<동양학연구소> 연구교수
송재용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