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zz, 가을의 애절함을 말하다


▲미국의 전설적인 흑인 재즈보컬리스트 빌리 홀리데이.


더위를 힘겨워 하는 사람 누구나 찬바람을 그리워한다. 그럼 이 시간쯤 딱 함께 하고픈게 하나 생긴다.
압구정 한 복판 퇴근시간 차들은 하나도 움직이질 않는다. 하루 종일 사무실에 앉아서 다른 사람들 퇴근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지금 내가 뭔가 싶어진다. 조금은 호사스럽게 하루를 마감하고 싶을 때 들리는 재즈바가 있다. 다소 버거운 요금을 지불해야 하지만 그 곳을 찾는 이유는 오로지 분위기 때문이다. 적당히 쌀쌀한 바람을 맞을 수 있으며 또 적당히 뻑뻑한 와인도 있고 재즈가 있다.
음악에 장르를 구별하고 유행을 구별하고 나면 이런 결론들이 나오게 된다. 아직도 재즈는 좀 있는 사람이 즐기며, 분위기만큼 중요한게 없을 꺼라고 틀린 말은 아닐지 모르겠지만 정답은 아니다. 난 요즘 가방에 항상 두서너장 CD를 담고 다니는데 그 음악은 모두 재즈다.
재즈를 함께할 가을이 왔기 때문이다.
몇 주 전 우연한 기회로 ‘Lady Day at Emerson’s Bar & Grill’의 프로모션을 진행한 와이바에 가게 되었다. 빌리 홀리데이의 마지막 라이브 무대인 필라텔피아 사우스 벨리에 위치한 Emerson’s Bar & Grill에서의 빌리 홀리데이의 마지막 공연 모습을 가지고 만든 뮤지컬이다. 빌리 홀리데이의 역을 맡았던 ‘Kim Zombik’의 끊어질 듯 넘어가는 그 호흡에 ‘빌리 홀리데이’만큼은 아니더라도 충분히 여윤을 남기는 음색으로 기억되고 있다.

무언가 끈끈하고 듣는 이로 하여금 소름 돋게 하는 ‘빌리 홀리데이’ 몇 년 전 한 구두 광고에서 그녀의 ‘I’m a Fool to Want You’의 그 느낌을 아직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다면 거짓말일까? 하지만 분명 그 곡을 듣는 그 순간 그대로 되사라 날거라 확신 한다.
만약 누군가 ‘빌리 홀리데이’의 음악을 들으며 아무 상념도 들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거의 목석에 가까운 사람일 것이다. 그것은 우리말을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인이 우리의 판소리나 창을 들으며 뭔가 회한에 젖는 표정을 보이는 것처럼 언어가 수반되기 마련인 보컬의 가사 전달과 무관하게 노래하는 이의 음색이나 음성의 애절함을 느끼는 인간이라면 지극히 당연한 감정의 전달이기 때문이다. 김소희 여사의 소리 한 대목을 듣노라면 비록 한국인이 아니라도 그 애절함과 한의 정서를 누구라도 느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빌리 홀리데이, 그녀의 목소리는 한 번 들으면 여간해서는 좀처럼 잊을 수가 없다. 아마도 그건 그녀의 인생이 음성에 담겨져 나오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보컬이 들어간 재즈를 발라드 재즈로 분류하는 이들이 있는 것처럼 재즈에서 보컬이란 요소는 엄밀히 따지자면 주류에 속하지 못한다.
불과 44살에 인생을 마감한 그녀의 일생 중 거의 40여년은 굶주림과 학대, 인종 차별의 두터운 벽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극히 불행하고 힘겹게 마감한 그녀의 목소리엔 닳고 닳은 삶이 들어 있다면, ‘마일즈 데이비스’는 내안의 우울함에 귀 기울였을 것이다. 그의 환경이 말해 주듯이 말이다. 재즈 트럼펫연주의 대가 마일즈 데이비스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극소수의 재즈아티스트중 하나이다. 지주인 할아버지의 치과의사이면서 농장을 경영하던 아버지등 비교적 부유한 가정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아버지는 마일즈에게 13세때 트럼펫을 선물로 줬으며 가정교사까지 초빙해 직접 수업을 받는등 트럼펫과는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인연을 맺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 마일즈는 세인트 루이스의 블루스악단에 참가했는데 선배 재즈 트럼피스트인 Clark Terry를 만나게 되면서 초기에는 클락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되었다. 1944년 아버지의 권유로 줄리어드 음악원에 들어가게 되었으나 마일즈는 근처의 52번가바에서 연주하기위해 학교를 그만두게 되었다.

이 시기에 그는 명 섹소폰연주가인 Charle Parker와 몇 년간 함께 연주를 하게 된다. 이때 녹음되어 명반으로 추앙되는 비밥앨범으로 마일즈의 선배인 Dizzy Gillespie와 동급으로 명성을 날리게 되었다. 후에 뛰어난 연주자의 길을 걸으며 다른 흑인 뮤지션과 같은 인종차별을 받으면서도 항상 당당했다던 ‘마일즈 데이비스’는 위에서 말한 ‘빌리 홀리데이’와는 전혀 다른 슬픔을 얘기하고 있는 것 같지만 어쩌면 사람들 누구나 가지는 슬픔을 그 공허함을 이야기 하는 지도 모르겠다. 너무도 다른 이 두 사람의 음악은 내 가방 안에 함께 들어 있으며 무언지 모를 느낌으로 함께 ‘jazz’를 얘기하고 있다.
김명범 <대중문화예술대학원·공연예술학과·석사과정 5>
김명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