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머리와 비녀-계례의 문화
현장르포

쪽진 머리에는 우리네 어머니와 할머니의 삶이 담겨있다
머리를 올리는 날 댕기머리 소녀는 여인이 되었다


▲시집가는날 이렇게 머리를 올렸다.

▲각양각색의 비녀가 여인의 아름다움을 더한다.

“머리를 올리면
어른이 된다는 것이지.
그러면 여자로서의 인생을
사는 거란다.”

“그러니까 내가
스무 살에 시집오던 날부터
나는 평생 머리에 쪽을 졌어.
파마나 염색은 꿈도 안 꿨으니까.”

찬 기운에 움찔 잠이 깨는 이른 아침. 졸린 눈을 부비부비 문지르고는 이내 두터운 이불을 코까지 당겨 덮는다. 이불 속에서 꼼지락대는 아이를 어머니는 거울에 비쳐 힐끗 보고 다시 능숙한 손놀림으로 머리카락을 매만지신다. 초겨울, 하얗게 꽃이 피기 시작한 어머니의 손은 차가운 세숫물 때문이었으리라. 그 손에 쥐어진 고운 다리의 참빗으로 내가 한참 동안 따뜻한 이불 속에서 선잠을 꼴딱 꼴딱 먹을 때까지 길고 억센 검은 머리칼을 빗으신다. 더듬더듬 빗으로 가르마를 내고 이마로 모아진 두 손으로 찬찬히 머리칼을 모아 뒤에서 손이 포개져 길게 늘어진 머리칼을 서너 번 쓰다듬는다. 하나로 모인 머리칼을 동그랗게 말아 반대 편 손으로 비녀를 꽂으신다. 그리고는 황색의 맑은 동백기름을 발라 단정하고 곱게 머리를 올리시는 모습을 아이는 매일 아침 조용히 바라본다. 어느덧 이 아이는 나이가 들어 스무 살의 어엿한 여인이 되었다. 시집가는 날, 여인은 해질 무렵 치러질 혼례를 준비한다. 푸른 향기가 나는 젊은 여인은 찬찬히 어릴 적 이불 속에서 지켜보던, 정성스레 머리를 올리는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며 맑은 거울 속의 자신을 들여다본다. 처음으로 머리를 올리던 날, 여인은 한 남자의 아내가 되었으며, 힘껏 당겨 올려 비녀로 고정한 머리처럼 꼿꼿한 여인이 되었다. 어느덧 싱싱하고 젊던 여인은 시간 속으로 흘러 간 지 오래지만 서리 내린 쪽진 머리채에 앉은 풍성한 여인의 품성과 가르마에서부터 미끄러져 내려오는 정갈한 선은 여전히 곱디 고왔다.
“스무 살에 시집갔던 날부터 나는 평생 머리에 쪽을 졌어. 파마나 염색은 꿈도 안 꿨으니까.”
50여 년 동안 항상 쪽머리를 하셨다는 전갑계(74) 할머니는 처음 머리를 올리던 날을 회상하면서 시집가던 날의 당신보다 더 아름다우셨다던 어머니에 대한 아련한 추억을 이야기해 주셨다.
“쪽머리가 참 곱고 정갈하지만, 노상 집안 일을 해야 했던 아낙네들한테는 이보다 좋은 머리 모양이 없었던 게야.”
참빗으로 곱게 빗은 머리칼을 하나로 모아 비녀를 꽂아 고정시키는 쪽머리는 삼국시대부터 그 역사가 시작됐다. 영조 때부터는 여인들의 사치스러운 머리 모양의 문화를 없애기 위해 귀족이나 양반, 평민 할 것 없이 15세 전후의 여자, 시집간 여자는 누구나 머리에 쪽을 지도록 했다. 양반에게는 풍성하고 부드러운 매력의 한복과 전통적인 아름다운 여인의 동그란 얼굴에 어울리는 머리가 쪽머리였으며, 평민과 농민들에게는 아이를 등에 업고 소매를 걷어 농사일, 집안일 하기에 가장 편한 머리 모양이었다. 쪽머리가 일반화되면서 자연스럽게 머리에 꽂는 비녀도 널리 이용되고 그 종류도 다양해졌다. 귀족과 양반들은 노리개와 함께 금과 은, 옥 등으로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장신구 문화를 만들었으며, 농민과 천민들은 흔히 구할 수 있는 나무나 동물의 뼈를 다듬어 비녀를 만들어 사용했다. 또 단오날에 여자들이 창포물로 머리를 감고 창포의 뿌리를 꺾어 비녀를 만들어 꽂았는데 이는 악귀를 쫓는 벽사(？邪)의 상징이다. 또 은비녀는 독살 여부를 판단하는데 쓰이기도 했다.
“머리를 올리면 어른이 된다는 것이지. 그러면 여자로서의 인생을 사는 거란다.”
보통 남자는 20세가 되면 성인이 되었다는 것을 상징하기 위해 갓을 씌우는 의식인 관례를 행했다. 상투를 틀고 갓을 씌우는 것이 남자의 상징이라면 여자는 15세 전후에 머리를 올려 쪽을 지고 비녀를 꽂는 계례( 禮)를 행했다. 오늘날의 성인식과 같은 계례를 치르고 나면 성인사회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해서 품삯도 어른과 같게 받고 성인과 동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었다. 성인이 되었다는 것을 친지에게 알리고 성인의 지위를 공적으로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정자(程子)는 “관례를 폐지하면 천하에 성인이 없게 된다. 어떤 사람이 노공이 12살에 관례를 행한 것처럼 하려고 하는데 이는 옳지 않다. 관례는 성인으로서의 도리를 요구하는 것이니, 12살 나이에는 성인으로서의 도리를 요구 할 때가 아니다. 이미 관례를 치렀는데, 장차 성인으로서의 일을 요구하지 않는 다면 종신토록 그에게 성인으로서의 행위를 바라지 못한다. 예만을 거행한다면 무슨 유익함이 있겠는가! 천자·제후라도 반드시 20살에 관례를 행해야 한다”라고 했다. 시간이 흘러 관례의 의미가 약해지면서 여자의 경우는 대개 혼례 중에 흡수되어 있었기 때문에‘머리를 올렸다’라 함은 결혼을 상징하는 것이 되었다.

할머니의 옛이야기에 시간가는 줄 몰랐다. 언제부터 계셨는지 옆에 앉아 계신 할아버지를 보고 나서 고개를 돌려 모른 척 할머니께 물었다.
“스무 살에 시집오셨을 때부터 50년 동안 할아버지께서 잘해주셨나요?”
“아니야! 이 영감이 젊었을 땐 속을 얼마나 썩었는지. 그래도 참아야지. 우리 땐 다 그렇게 살았어.”
쪽머리는 옛 여인의 마음과도 닮았다. 인정 많고 넉넉한 둥그런 마음 말이다. 그리고 쪽머리는 흐트러짐이 없다. 참빗보다 더 곱게 빗어진 머리칼을 가지런히 모아 비녀로 꽉 고정시키는 것처럼, 옛 여인들은 많은 관습과 사회의 차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게 살았다. 남자만이 학문을 할 수 있었고 여성이 관직에 나갈 수 있는 길은 전혀 없었다. 조선전기에는 여인들도 남자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았지만, 유학의 발달로 조선사회의 남녀 관계는 17세기 이후 성리학의 지배이념이 확고하게 성립되면서 반전되고 만 것이다. 이후 조선사회는 철저한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질서가 강요되어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점점 열악해져만 갔다.
“어릴 때부터 여자는 그저 삼종지도(三從之道)만 따르면 된다고 배웠어. 혼인 전엔 아버지를 따르고, 혼인 후엔 남편을 따르며, 남편이 죽으면 아들을 따라 사는 거라고.”
이러한 인습은 여인을 의존적이고 주체적이지 못하게 만들어버렸다. 할머니가 살아온 그 인생 그대로 말이다.
“처음 몇 달은 매일 울었지. 시집살이 매워 울고, 친정이 그리워 울고. 그걸 견뎌야 어른이지. 이젠 출가외인(出嫁外人)인걸.”
할머니는 아이를 낳고 기르며 집안 일을 하며 평생을 살았다. 아무 것도 모르고 아무 것도 못하고 친정을 떠났으니 바라볼 것은 정말 남편과 아이 뿐이었다. 그러나 그런 생활조차 마음 편히 누릴 수 없었다. 시집간 여인으로서 가져야 할 것과 갖지 말아야 할 것, 일곱 가지를 정한 칠거지악(七去之惡)이라는 것까지 있었으니 말이다. 시부모에게 순종하지 않으면 내쫓기었고, 아들이 없으면 내쫓기었으며, 음탕하면 내쫓기었다. 질투하면 내쫓기었고 나쁜 병이 있으면 내쫓기었다. 또 말이 많으면 내쫓기었으며 도둑질하면 내쫓기어야 했다.

말하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 듣고 싶은 것 그 어느 것도 여인들에겐 용납 될 수 없었다. 시집살이는 귀머거리 3년, 벙어리 3년, 장님 3년이라는 말을 몸소 느껴야 했던 답답함을. 이러한 사회적 제약이 강요되면서 조선시대 후반의 여성은 방갓을 쓰거나 장옷을 입고 얼굴만 조금 내민 소극적이고 폐쇄적인 성향을 나타내기도 했던 것이다.
굴종까지도 미덕으로 여기며 절제, 인내, 평상심, 가지런히 꽂힌 비녀와 붙들어 맨 쪽머리 속에 담긴 마음. 꽁꽁 묶인 가슴에 든 멍까지. 이것이 소녀가 여인이 됨으로서 짊어져야 했던 숙명이다.
“아가씨도 머리카락이 길던데 예쁘게 쪽지어 봐. ”
할머니는 꼭 내 나이에 머리를 올리셨다. 집에 돌아와 거울 앞에서 할머니께 배운 대로 머리를 올려 보았다. 처음으로 해보는 것이라 어색하긴 했지만 제법 흘러내리는 선이 드러났다. 스무 살. 어린 소녀가 아닌 여인이 되는 시기. 조선시대처럼은 아니더라도 과연 나는 머리를 올리는 것처럼 어른이 될, 여인으로서의 숙명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있는 것일까?
<조영리 기자>  diadiadl18@dankoo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