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신을 굽히지 않는구나

우리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중요한 업무에 대해 상사에게 자신의 의견을 제시할 때가 있다. 이때 자신의 의견을 객관적인 판단하에 소신있게 피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의견은 제시하지 않고 상사의 잘못된 결정을 그대로 따르는 사람도 있다. 이 가운데 어떤 사람이 조직을 위하는 사람인지는 구태여 말할 필요가 없으리라. 『맹자(孟子)』에 보면 ‘임금 노릇을 하려면 임금의 도리를 다해야 하고, 신하 노릇을 하려면 신하의 도리를 다해야 한다’는 구절이 있다. 옳은 말이다. 직장에서 상사가 상사 노릇을 못하고, 부하가 부하 노릇을 제대로 못한다면 그 직장의 앞날은 뻔하다.
그런데 윗사람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지만, 아랫사람 역할 또한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특히 아랫사람의 경우 업무를 수행함에 있어 객관적인 판단을 통해 자신의 견해가 옳다고 생각되면 소신을 굽혀서는 안된다. 물론 부하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합리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상사인 경우에 가능한 일이지만, 어쨌든 냉정하고 신중하게 생각한 결과 자신의 견해가 옳다고 판단되면 상사를 설득해야 한다. 이때 아랫사람으로서 예를 갖추는 것은 기본이다. 이와 관련된 내용이 『미암일기』에 있어 소개한다.

“인심은 예측하기 어렵지만 천리(天理)는 아주 사라지지 않는 법입니다. 그래서 선왕(先王)은 말년에 이르러 쾌히 사정을 살피시고 귀양간 사람들을 석방하여 적몰한 가산을 돌려주고 큰 은혜를 내려 원통하고 억울함을 다 씻어주려 하셨는데, 신민(臣民)이 복이 없어 갑자기 승하(昇遐)하시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이른바 죄인이라고 불린 자들은 이미 다 돌아왔고 당시의 소위 공훈(功勳)이란 모두 허위와 사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전하께서 즉위하시자 예전에 무고로 물러났던 사람을 다 등용하시고 무고하게 죽은 사람도 복작(復爵)시켜 주셨습니다. 따라서 그 간흉하고 무망(誣罔)한 심적(心迹)을 이미 꿰뚫어 보시어 조금도 의심이 없으실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그 허위와 기만을 아시면서 곧 그 관직과 작위를 제거하지 않으시고 온 세상이 그르다 하는 데도 그 간언(諫言)을 따르지 아니하시나이까? 이는 어리석은 신하로서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바입니다. 옛사람은 선인의 뜻을 계승하고 선인의 사업을 잘 발전시키는 것을 효도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전하는 이미 을사년 사람들을 발탁하였으니 수악(首惡)의 관작을 삭탈하는 거조도 구지 조정의 공론이 일어나기를 기다리지 않고서 스스로 하실 터인데 어찌하여 오늘까지 기다리고만 계시나이까? 원컨대 전하께서 한가하실 때 평심으로 이치를 살피시어 위로 선왕의 마음과 아래로 신민의 분노를 생각하시고 편벽된 사정(私情)에 구애받지 마시고 자기 고집을 버리는 아량을 넓히시어 굽어 여론에 물으시고 옳다고 말씀을 하여주시오면 족히 하늘에 계신 선왕의 영령을 위안하고 원통함을 품고 죽은 지하의 혼백을 거의 신원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옛날에 한무제(漢武帝)가 여원(戾園)의 변을 만나자 부자의 윤기를 잊었었는데, 나중에 차천추(車千秋)의 말을 듣고서 확연히 깨닫고 회개하여 천리가 오붓하였습니다. 만약 전하께서 신을 비천하고 용렬하다고 해서 소신의 말마저 버리지 않으신다면, 신은 비록 만 번 죽어도 장차 지하의 차천추에게 부끄러울 것이 없겠습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소신의 어리석은 말을 조금이라도 살펴주시옵소서 홍보(洪溥)의 이 말은 충성을 드렸다고 이를 만하다. … 여러 신하들이 아뢰는 말 가운데 김응남(金應南)이 ‘고려의 모든 왕릉을 두루 보니 모두 묵고 허물어져 초동목수(樵童牧　)가 드나든다고 하면서 드디어 영월에 있는 노산군(魯山君 : 단종<端宗>)의 묘가 거칠고 잡초만 무성한데도 돌보지 않고 있었는데, 중종(中宗)께서 즉위하신 12년에 승지(承旨)를 보내어 치제(致祭)하고 수호군(守護軍)을 두었사오니 지금 역시 거듭 수호할 것을 밝혀주시기를 청하옵니다’ 하였다. … 가장 아름다운 말이로다.”
유희춘은 선조(宣祖)가 조정 신하들의 상소에도 불구하고 을사사화를 일으킨 사람들의 관작을 삭탈시키지 않자, 홍보가 관작 삭탈을 강력하게 주장한 내용과 김응남이 단종의 묘를 보수하고 수호할 것을 건의한 내용을 『미암일기』에 기록하였다. 여기서 유희춘은 이들의 소신있는 주장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서경(書經)』에 보면 ‘나무는 먹줄을 따르면 바르고, 임금은 간(諫)함을 따르면 성인이 된다’는 구절이 있다. 나무가 목수의 먹줄에 맞추어 도끼나 자귀로 깎이어지면 바른 재목이 되고, 임금은 충신의 간언을 들어서 이를 좇아 행하면 허물이 없는 성인다운 훌륭한 인물이 될 것이라는 뜻이다.

상식과 기본이 통하지 않고 흑백논리의 2분법적 사고가 판치는 요즈음과 같은 세상에서는 소신있는 사람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소위 잘나가는 정치인과 고위공직자에게 『논어』에 ‘위태로워도 붙잡지 못하고, 엎어져도 일으키지 못한다면 그런 신하를 어디에 쓰겠는가’라는 구절을 전하노니 부디 곰곰이 되새겨보기 바란다.
송재용<동양학연구소> 연구교수
송재용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