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아지를 지붕 위로 올리는 아들

옛날 우리나라에 유명한 재상이 한 분 있었다. 그는 마음가짐이 정직하고 행실이 단정하였으며, 문벌과 가세 또한 나라 안에서 제일 으뜸이었다. 남에게 부러울 것 없이 잘 살았으나, 다만 슬하에 자식이 없어 항상 근심이었다. 그 재상과 평소 정분이 두터운 친구가 하나 있었는데, 그 친구는 집안이 비록 청빈하였으나 벼슬이 높고 자손이 번성하여 여러 아들 형제를 두었다.
아들이 없는 재상은 매양 가사(家事)를 전할 곳이 없음을 근심하여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하루는 생각하기를 ‘내가 평소 다른 사람에게 적악(積惡)한 일이 없건마는 팔자가 기박하여 자식 하나 두지 못하였으니, 위로는 조상에게 죄를 지음이고 아래로는 후사가 내게 와서 끊어지게 되었도다. 이처럼 원통한 일이 어디 있단 말인가. 내 친구 아무개는 어려서부터 한 동리에서 성장한 터라 일거수일투족을 모르는 바 없거니와 그는 저같이 자손이 많으니 무슨 적선(積善)을 하여 그러한지 그 까닭을 알아보리라’하고는 밤이 깊은 것을 혐의치 아니하고는 벗었던 의복을 다시 입고 하인을 앞세워 그 친구를 찾아갔다.

친구는 문을 굳게 잠그고 잠을 자다가 졸지에 재상 아무개가 온다는 말을 듣고 황망히 일어나 영접하였다. 재상이 그 친구와 더불어 자리를 정해 앉은 뒤 이 얘기 저 얘기 수작을 하면서 가만히 동정을 살펴보니, 병풍 뒤에 무슨 인적이 있는 듯 하였다. 재상이 마음속으로 생각하기를 ‘이 친구가 필시 어떤 계집을 데리고 자다가 내가 창졸간에 문을 열고 들어온 즉 사정이 심히 난처해지자 그 여인을 병풍 뒤에 은신시킨 것이니, 어찌 일국의 명망 있는 재상이 되어 이같은 짓을 하는고?’하며 노기를 발하며 일어섰다. 영문을 모르는 친구가 재상을 붙잡아 앉히려 하자, 재상은 “우리 둘 사이의 정분이 서로 못할 말이 없거니와 병풍 뒤에 무슨 인적이 있으니 이것이 무슨 곡절이오?”하고 책망하였다. 그러자 친구가 웃으며 말하기를 “다름이 아니라 일전에 시골에 사는 일가 하나가 찾아 왔는데 자식들 자는 방에 보내어 머물게 하면 감기가 들까 염려해서 내 이불 속에 재우는데, 그 녀석 의복에 이가 있는 듯해서 옷을 다 벗겨 옷방에 두고 알몸으로 자다가 뜻밖에 대감이 들어오시니 미처 옷을 입지를 못하고 병풍 뒤로 피한 것이오.”라고 하면서 소년을 부르니, 과연 누추한 형용의 한 남자가 나왔다. 무안해진 재상은 즉시 작별하고 돌아와 그 친구의 관후(寬厚)함에 탄복하여 말하되 “나는 이런 일을 행할 수 없으니, 내게 아들 없는 것이 다 박덕한 때문이로다.”라고 하였다.
제국신문 1900년 2월 20일자에 실린 우언이다.

부국강병의 방책을 도모하기 위한 마음의 자세가 중요함을 역설한 글이다. 나보다 나은 남을 부러워하고 시샘하는 마음이 있지 않고서는 자신의 발전이란 있을 수 없다. 그런 마음 자세는 다음과 같은 옛날이야기를 통해서도 되새겨 볼 수 있다.
옛날에 서로 재산이 엇비슷하게 살던 친구가 있었다. 그런데 한 친구는 해마다 재산이 늘고 점점 잘 살게 되는데, 또 한 친구는 자꾸 재산이 줄고 집안이 어려워져만 갔다. 하루는 집안이 잘 안 되는 사람이 친구를 찾아가서 집안이 잘 되는 연고를 물었다. 그러자 그 사람이 자기네 집 사는 모양을 보라고 하더니, 아들을 불러서 송아지를 지붕에 끌어올리라고 하였다. 그 말을 들은 아들은 사다리를 놓고서 송아지를 끌어올리려고 애를 썼다. 다시 그 사람이 아내를 불러서 춤을 춰보라고 하니 아내가 손님 앞에서 춤을 추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서 감탄한 친구는 집에 와서 아들과 아내에게 같은 일을 시켜 보았다. 그러자 아들과 아내는 가장을 정신 나간 사람 취급하면서 무시해 버리는 것이었다. 그 사람은 비로소 왜 자기 집이 안 되는지를 깨달았다고 한다.
윤승준<교양·강의전담> 초빙교수
윤승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