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철한 킬러의 회색빛 매혹

영화 [콜래트럴]은 어느 날 밤 LA에서 약 10시간 동안 일어난 일을 긴박하게 밟는다. 택시 기사 맥스(제이미 폭스)는 시간에 쫓기는 변호사 애니(제이다 핀켓 스미스)를 이제 막 내려준 참이다. 새로운 손님을 기다리는 그의 택시에 회색 정장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빈센트(톰 크루즈)가 탄다. 빈센트는 지금부터 LA의 다섯 장소를 시간에 맞춰 정확히 가주기만 하면 6백 달러를 주겠다고 제안한다. 이 제안의 실체가 드러나는 건 2004년 1월 25일 밤 9시 30분경, 그러니까 빈센트가 청부 살인 업자이며 사람을 죽이기 위해 자신을 담보(collateral)로 삼았다는 사실을 맥스가 알게 되면서부터다.

[콜래트럴]은 그동안의 마이클 만 영화와는 달리, 사나이(들)의 ‘전설’보다는 대도시가 발산하는 ‘풍경’ 그 자체에 집중했다는점 때문에 [콜래트럴]에는 서사의 거대한 물줄기를 이루려는 유장한 흐름이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택시를 따라 LA 이곳저곳을 떠돌며, 살풍경이 뿜어내는 공기의 모멘트를 온전히 포착하려 애쓴다. 빈센트의 연쇄살인행각은 그 자체로 하나의 ‘로드무비’를 이루는 것.

그러니 [콜래트럴]의 관심은 [히트]나 [인사이더], [알리]가 이루어 낸 유구한 ‘사가(saga)’가 아닌, ‘도시괴담(urban legend)’의 차원인 것. 택시 위에 쿵 떨어지는 시체, 아스팔트를 무심하게 누비는 승냥이, 재즈 맨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를 둘러싼 믿기 어려운 에피소드, 바쁜 산타클로스 대신 못된 아이들을 혼내주는 ‘펠릭스’의 전설, 선혈이 낭자한 채 쓸쓸히 숨을 거두어도 어느 누구 하나 관심 없는 지하철 안의 풍경 등등. 이것들은 도시의 비정함을 환기시키는 이미지의 편린이다. 빈센트와 맥스의 택시는 도시 군데군데 박혀있는 씁쓸한 이미지 조각 사이사이를 떠도는 것이다. 하지만 헤모글로빈으로 처참히 얼룩진 LA의 밤거리가 몹시 매혹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대단히 아이러니 하다.

이렇게 도시의 어둑한 풍광이 주인공들의 심정과 감회를 웅변해 주는 테크닉은, 마틴 스콜세지(Martin Scorsese)나 아벨 페라라(Abel Ferrara)의 세계관과도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이들의 관심사가 도심 뒷골목에 숨겨진 ‘정화’와 ‘속죄’의 흔적이라면, 마이클 만은 도시라면 운명적으로 짓게 마련인 어두움의 표정 그 자체에 주목한다. 그 표정이 일그러지면 일그러질수록, 마이클 만의 근심 섞인 매혹은 생생한 기운을 더해간다. 음습한 허무로 가득한 도시 LA에 대한 혐오와 애정이 동시에 어우러지는 [콜래트럴]은, 감정이 스토리를 대신하고 풍광이 감정을 압도하는 마이클 만의 원숙한 경지다.

[콜래트럴]은 일종의 안도감을 품게 만드는 영화다. 여기엔 마이클 만의 아우라, 즉 도시의 야경이 발산하는 화려한 듯 적막함을 주는 공간감, 그리고 허무함으로 충만해 있다. 그리고 여기엔 영화 제목 그대로, 평행을 이루는 두 남자의 야수적 대결이 있다. 살인청부업자 빈센트(톰 크루즈(Tom Cruise))는 의뢰 받은 건을 수행하기 위해 택시를 대절한다. 운전사 맥스(제이미 폭스(Jamie Foxx))는 이 난처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지만, 상황은 악화일로로 치닫는다. 결국 끝간데 없는 두 남자의 격돌은 장렬한 파국으로 돌입한다.

[콜래트럴]은 톰 크루즈에게 있어, 상당히 독창적인 순간으로 기록될 만 하다. 일차적으로는 그가 잔혹한 ‘악역’을 통해 최상의 연기력을 보여줬다는 점에 있지만, 묘미는 보다 깊숙한 곳에 있다. 지금까지 톰 크루즈가 연기했던 캐릭터가 보여주는 공통점이란, ‘몰랐던(또는 숨겨진) 사실을 깨달아가며 인격적 성숙함을 갖춰나가는 남자’라는 것. 그런데 [콜래트럴]에서, 그는 낯선 영역을 탐구한다. 즉 확고한 목표를 지닌 인물이 점차 해체의 과정을 겪는 것. 일말의 뉘우침이나 대오각성의 조짐 없이 말 그대로 ‘소멸’되고 마는 빈센트라는 캐릭터는, 잿빛 머리카락과 더불어 톰 크루즈라는 스타의 색다르고 신선한 면을 부각시키고 있다. [뱀파이어와의 인터뷰(Interview With The Vampire)](1994)와 더불어, [콜래트럴]은 톰 크루즈 필모그래피에 있어 기억할 만한 ‘찰나’로 남을 듯하다.

김명범 <대중문화예술대학원·공연예술학과·석사과정 4>

▲영화 ‘콜래트럴’의 포스터.
김명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