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 서울 이문동 박치과를 찾아서：이균영의 <어두운 기억의 저편>(1984) 읽기
생소한 이문동 거리에서 찾아낸 먼지투성이 기억
전쟁으로 동생과 헤어진 그의 과거는 이문동을 담고 있었다
1983년 6월 30일 밤 10시 15분 KBS 스튜디오 830의 확대 방송이 시작되었다. 이산가족 찾기 프로그램이었다. 일회로 끝내려는 특집방송이 다음날부터 장장 453시간의 대장정 프로그램으로 이어지리라고는 아무도 몰랐다. 남북 적십자회담이니 7·4남북 공동성명이니 하면서 남북의 이산가족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던 당시 지배층들에게 국내의 이산가족 문제는 관심 밖의 일이었다. 하지만 이산가족의 고통은 남북이나 남남이나 다를 수가 없었다. 다음날부터 여의도 KBS 사옥은 이산가족의 벽보판이 되었고 전 국민들을 TV 앞에서 이심전심의 눈물을 흘려야했다. 그동안 감추어져 있었던 한국 전쟁과 분단의 비극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일대 사건이었다. 전쟁이 끝난 지 30년이 지났는데도 전쟁통에 헤어진 가족들을 만나지 못하고 있었다니! 얼마나 비극적인 일인가!
이균영의 <어두운 기억의 저편>은 중소무역회사의 수입부 말단사원으로 근무하는 ‘그’의 과거 찾기 과정을 추적하고 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혼자 살아가고 있는 독신남이다. 매일매일 일상에 매몰되어 살아가고 있는 그의 삶은 80년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소시민의 표준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단조로웠던 일상은 한 번의 술자리 때문에 갑자기 꼬이게 된다. 은행대출 업무를 끝낸 후 담당은행 신대리와 술을 마신 게 화근이었다. 다동 소주집에서 소금구이 안주에다 소주 한 병씩을 나눠 마실 때까지 별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종로에서 2차, 3차를 하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당시 종로통은 서울시민들이 자신의 애환을 술 한잔에 털어버리는 유흥공간이었다. “……술집을 나올 때에 잠깐 그를 부축했던 종업원의 나비넥타이, 신대리가 지나가는 여자에게 느닷없이 팔을 벌렸으므로 일어났던 여자의 짧은 비명, 돌아서 달아나는 여자의 연두색 바바리코트, 한기를 느끼며 그가 오줌을 내질렀던 골목과 그곳을 희미하게 비추던 방범등, 그가 상체를 구부린 시멘트 벽 위에 붙어 있던 영화 포스터, 그 속의 여자 나체……” 그들의 발걸음은 소주에서 맥주로, 맥주에서 양주로 주종을 바꾸면서 빨라졌다. 의식은 점차 해체되어 갔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이었다. 그가 깨어난 곳은 생소한 이문동 술집거리의 후미진 여관방이었다. 이문동은 그와 연고가 별로 없는 동네였다. 그는 이문동에서 잠을 잤다는 것이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서류가방을 분실한 사실을 발견했다. 몇 달 동안 고생한 서류가 들어있는 가방이었다. 만약에 이 서류를 못 찾으면 그가 다니는 회사의 자금사정이 악화될 수도 있는 엄청난 일이 벌어진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사라진 서류가방을 찾아야했다. 그는 지난밤에 들렀던 술집들을 바둑에서 복기를 하는 것처럼 한 집 두 집 찾아가기 시작했다. 신대리에게 전화도 해보고 기억나는 술집도 찾아다니다 보니 끊겼던 필름들이 점차 이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서류가방은 계속 오리무중이었고 이문동으로 그를 태워다 준 택시기사와 어렵게 연락을 하게 되었다. 택시기사는 가방은 잘 모르겠고 한 여인과 동승을 했다는 것을 일깨워주었다. 새로운 사실이었다. 그는 그 여인이 일하고 있는 술집 <밀밭>까지 찾아 갔지만 그 여인의 이름이 미스민이라는 것만을 확인하고 가방의 소재는 알 수 없었다. 결국 가방 찾기를 단념해야 했다. 길고 긴 하루가 끝난 것이다.
아파트에 돌아와 따뜻한 샤워들 하고 전축을 틀자 그는 문득 이문동 여관에서 잠을 잤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낯설게 느껴졌다. 연고자도 없는 이문동. 인사불성인 채 택시에서 이문동이라고 행선지를 말했다는 미스민의 말을 음미하자 지금까지 까맣게 잊고 있었던 과거가 되살아났다. “……진한 술을 마셔야 터질 것처럼 모든 신체의 공기를 압박했던 것이다. 확실히 그의 과거는 이문동을 담고 있었다……” 그에게 사실은 이문동이라는 동네는 너무나 중요한 공간이었다. 전쟁고아였던 그는 여동생인 박혜수와 함께 수원에 있는 고아원에서 생활했었다. 혜수가 그의 피붙이인지 아닌지도 모르지만 그는 그녀가 그의 여동생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다가 혜수가 먼저 입양되어 고아원을 떠났다. 고아원에서 일하는 할머니를 통하여 그는 이문동 박치과집으로 혜수가 입양되었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백방으로 박치과집을 찾았지만 이문동에는 그런 집이 없었다. 점차 여동생에 대한 기억이 그에게서 약해졌고 지금은 까마득히 그녀를 잊게 되었다. 생활은 언제나 기억보다 먼저였던 것이다. 그런데 만취 상태에서 혜수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난 것이다. 기형도의 ‘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처럼 기억은 영원히 사라질 수 없는 것이다. 그는 다시 술집 <밀밭>을 가서 미스민을 만나고 미스민도 전쟁고아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동병상련의 뜨거운 포옹을 한다.
이 텍스트의 주인공인 그는 서울을 원주민이 없는 도시라고 명명한다. 이렇게 원주민이 없는 낯선 도시에서 자신의 형제자매와 헤어져 산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자신의 부모형제와 생이별을 한다는 것 자체가 단장의 고통을 불러온다. 1983년 6월 30일부터 11월 14일까지 방영된 KBS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은 이산가족뿐만 아니라 전 국민을 눈물짓게 만든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국가와 체제는 언제나 국민들의 아픔과 멀리 있는 것 같다.
장두식<동양학연구소 연구교수>

▲ 사랑하는 이들과 헤어진 이산 가족의 고통은 남북이나 남남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장두식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