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강남에선 : 박완서의 <꽃을 찾아서>(1986) 읽기

강북 콤플렉스에 빠진 80년대의 강남
그리고 그곳에서의 삶에 만족하지 못했던 사람들…


80년대는 사회 전반적으로 통일에 대한 담론이 점점 예각화 되던 시기였다. 이는 광주 민주화 운동의 실패라는 정치적 상황과 분배의 양극화 심화라는 경제사정과 무관하지 않았다. 불만족스런 현실의 원인을 점점 분단모순에서 찾기 시작한 것이다. 전후 이산가족의 고통이 KBS의 이산가족 찾기 특집방송에 의해서 표면화된 것도 통일논의 활성화에 일조를 했다. 박완서의 <꽃을 찾아서>는 전직교장이었던 장명환 씨를 통하여 냉전이데올로기와 분단모순을 비판하는 소설텍스트이다.
장명환 씨는 정년을 2년 남기고 여제자와 부적절한 관계를 한 수학선생을 고발하고 사직한 강직한 성품의 인물이었다. 그가 사직한 해에 막내딸과 아들 기정이가 한달 사이를 두고 결혼하는 통에 방이동 다세대 주택으로 집을 줄여 이사를 하였다. 그런데 그의 아내는 방이동으로 이사 오는 것을 처음부터 싫어했다. “「난 이 동네가 싫어요」.....「교통이 좀 불편해서 그렇지 이 동네가 어디가 어때서 그래요?」 「처음엔 가락동이라더니 방이동이라면서요?」 마나님은 궁색하게 이 동네가 싫은 게, 마치 이름 때문인 것처럼 말하면서 한숨을 쉬었다. 「이 일대를 통털어 가락지구라나 봅니다. 가락동은 가락동대로 따로 있고, 가락동이랬으면 좋을 건 또 뭐예요?」 「누가 가락동이랬으면 좋겠다고 했남요. 가락동, 오금동, 삼전동, 마천동, 방이동…다 싫어요. 저만치 남한산성이 바라 뵈는 것도 심란하고요. 혜화동, 명륜동, 안국동, 가회동, 계동, 사직동, 경운동 하는 동네이름 좀 좋아요. 품위도 있고…」 ” 강남·송파지역의 아파트 가격이 평당 몇 천만원을 호가하고 있는 요즘에 장명환 씨 부부의 대화는 정말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그는 아내에게 방이동의 이가 오랑캐 이가 아니라 흰 비름 이(荑)라는 한자임을 강조하고, “「언제고 이 근방에서 그 꽃을 찾아내고 말테요. 그 꽃은 공기 맑은 넓은 초원에나 피는 모양인데 길 내고 아파트 짓느라고 초원이 남아 있어야 말이지. 참 요 앞길 건너 올림픽공원이 며칠 있으면 완공이 된다는데 혹시 그 안에서 그 꽃을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공원이라니까. 그리고 그 자리에 있던 백제시대의 토성까지 복원해 놓는다니 넓은 초원인들 없겠소? 거기서라도 그 꽃이 살아나면 좋으련만」”이라는 낭만적인 말로 설득을 하려고 한다. 그러나 방이동에 대한 아내의 불만을 불식시키지 못한다. 그 시절 강남지역은 아직까지 강북 콤플렉스를 가진 동네였었기 때문이다.

텍스트의 갈등은 장명환씨의 절친한 친구인 서 교수가 등장하면서 심화된다. 그의 아들 기정이가 일본문부성 장학금으로 일본 유학 중인데 비하여 서교수의 아들들은 모두 민주화 운동에 투신을 하여 고난의 길을 걷고 있었다. 서 교수는 기정이가 한국사 공부를 하기 위해서 일본 유학을 간 것에 비판적이었다. “「…이미 자신의 사관을 가진 학자도 아니겠다, 그곳 학계에서 인정을 받고 학위를 받으려는 학생이 그쪽의 투철한 사관의 영향을 안받고 자료만 이용한다는 게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말도 안되는 소리야.」” 이런 서 교수의 지적에 장명환 씨는 대답을 못한다. 기정이가 전공을 한국사에서 일본 고대사로 바꾸었기 때문에 더욱 반론을 펼칠 수가 없었다. 다만 서 교수가 북한에서 나온 고구려벽화 자료를 일본에서 구하는데 도움을 주겠다고 자청을 하게 된다. 기정이의 소개로 그의 집에 세 들어 살고 있는 지요꼬라는 얌전한 일본 유학생 때문에 서 교수에게 호언장담을 한 것이다. 하지만 일본에서 보내오는 자료를 받아달라는 그의 부탁에 지요꼬는 한국에서 살 때 경계해야 할 것이 연탄가스하고 사상대립에 말려드는 것이라며 단호히 거절을 한다. 이 거절의 표시는 이틀 뒤 자신의 앞으로 오는 불온한 우편물은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는 지요꼬의 내용증명으로 더욱 확실해진다. 내용증명을 받아 든 장명환 씨는 “「천대자(지요꼬)가 글쎄, 그년이 우리 거기를, 하필 거기를 이렇게 자꾸자꾸 물고 늘어질 줄을 몰랐소」”라고 분노를 토하게 된다. 분단모순과 냉전이데올로기 때문에 일본인에게도 냉소를 받고 있는 현실에 울분을 터트린 것이다.
이 텍스트에 등장하는 강남지역은 아직까지 개발 중이었다. 때문에 장명환 씨 부부에게 방이동에 사는 것이 불만스러웠다. 하지만 강남은 바둑판식 도로망과 상하수망 등 사회간접자본의 확보 위에 대단위 아파트단지와 각종의 문화시설 그리고 비즈니스 타운이 건설됨으로써 전통적인 주거지였던 강북을 점점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 특히 강남 8학군이라는 교육적인 가치가 더해짐으로써 현재의 강남이라는 담론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인구분산을 위한 공간재배치가 강북이라는 전통적인 공간에서 강남이라는 새로운 공간으로 무게이동을 하게 된 것이다. 현재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강남지역의 아파트 값 잡기에 집중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남은 우리 경제의 그늘에서 메두사와 같은 괴물과 같이 꿈틀거리고 있다. 이 텍스트에서 이런 강남 초창기 편린을 읽을 수가 있다.
장두식<동양학연구소 연구교수>

▲ 80년대 당시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공원이었던 올림픽 공원의 모습.
장두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