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b Marle, 레게뮤지션의 전설

나의 존재가 바로 반역음악이다

과장되지 않은 분노와 도취되지 않은 꿈

개강과 함께 나를 가장 먼저 찾아온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무력감’이었다. 학교를 떠나 있는 동안 나는 삶에서 무언가 확실한 답을 찾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가슴은 온통 삐딱하고 비장한 반항끼로 가득 차 있었고 머리는 그에 걸맞는 지식을 찾아 헤맸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이 나를 규정하고 억압하는가’ 에 대한 물음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이렇다 할 확신 없이 3월~개강이 다가왔고, 나는 돌아왔다. 학교는 무섭도록 평화로웠다. 알 수 없는 들끓음, 내 안의 묘한 치기가 무안할 지경이었다. 좀처럼 꺾인 자신을 추스르지 못하던 어느 날, 절친한 소녀에게서 누군가를 소개받았다. 깊고 선한 눈빛으로 나를 먼저 사로잡았던 그. 바로 밥 말리였다.
밥 말리는 1945년 레게의 본 고장으로 잘 알려진 자메이카의 수도 킹스턴에서 태어났다. 이곳은 사회적·경제적으로 궁핍한 영국 연방의 식민지에 불과했다. 킹스턴에서도 가장 가난한 트렌치 타운에서 부랑아로 자라난 그는, 자메이카 흑인이 겪는 고통과 분노를 고스란히 경험했다. 그는 이러한 감정을 ‘레게’라는 이름의 자메이카 토속음악으로 표출하기 시작했다.
‘음악으로서 혁명을 일으킬 수는 없다. 그렇지만 사람들을 깨우치고 선동하며 미래에 대해서 듣게 할 수는 있다.’-밥 말리-
14세에 집을 나와 음악활동을 시작한 그는 1973년 데뷔작 <Catch a fire>를 발표하며 레게를 자메이카 밖으로 전파하기 시작했다. ‘위험한 아티스트’로 명명되었던 그는 스스로의 음악을 Rebel music(저항음악)이라고 칭하며 ‘나의 존재가 반역음악’이라고 선언했다. 자신의 백밴드 이름 역시 ‘외쳐대는(통곡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의 ‘Wailers’ 였다. 누구보다 노래의 운동적 가치를 확신했던 밥 말리의 음악은 저돌적인 자유쟁취의 상징이었다. 그는 81년 암으로 사망하기 전까지, 무려 10여 장에 달하는 음반을 발표하며 쉴 새 없이 고발과 선동의 노래를 외쳤다.

천재적인 음악적 재능과 폭발력있는 정치적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활동 당시에 그는 대중적으로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다. 70년대 초반 미국에서 에릭 클랩튼(eric crapton)에 의해 <I shot the sheriff>가 리메이크 되고, 75년 <No women, no cry>가 영국차트에 오르면서 국제적으로 주목받기는 했지만, 그는 대중적 인기에 몰입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는 가난한 흑인 민중의 편에 서 있었다. 그는 흑인자유투사를 위한 공연과 평화를 위한 공연에 열성적이었으며 자유와 평화, 정의에 대한 정치적 활동가였다.
그에 관한 수식어는 화려하다. 그러나 내가 밥 말리에 주목했던 것은, 무엇보다 그의 음악 자체였다. 그는 분노와 슬픔을 온 몸으로 안고 있었지만, 결코 힘주어 소리치거나 격하게 내뱉지 않는다. 쿵짝거리는 레게 리듬 위로 부드럽게, 흥겹게, 담담하게 묻어오는 그의 음성은 과장도 미화도 없이 진솔하다. 가만히 눈을 감고 그의 노래에 귀를 기울이고 있노라면 기분좋게 술 한잔을 걸친 듯, 부드러운 흙 위를 맨발로 걷고 있는 듯 편안하기 그지없다. 오랫동안 들뜬 가슴을 앓아온 내게 그는 말하고 있었다. 슬픔과 분노를 표현하는 방식이 그저 거칠고 투박해야만 하는가, 혁명을 꿈꾸고 저항에 온 몸을 맡기는 일이 얼마나 더 아름다울 수 있는가를. 과장되지 않은 분노와 함부로 도취되지 않는 꿈, 듣는 이로 하여금 마음을 놓고 귀를 열게 하는 읊조림, 그는 그러한 자신의 언어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무엇보다 자신의 슬픔과 아픔, 자잘하고도 격한 감정을 그 자체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의 <No women, no cry>가 마치 나를 향하기라도 한 것처럼, 비로소 용기를 얻어본다. 자신의 언어를 찾는 일,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일, 조그마한 권력으로부터 저항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고 거창하지 않다. 조그마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아마도 거기에서부터 나, 혹은 당신의 꿈이 시작될 테니까. 밥 말리를 만나게 해 준 그 소녀도 함께.
이진주<국문·3> pearl289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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