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선비이야기 미암일기(眉巖日記)를 중심으로
①부인을 임질에 걸리게 하다

성은 과거·현재·미래를 막론하고 우리 인간들의 관심의 대상이다. 신부님과 스님 등 성직자를 제외하고는,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만약에 있다면 그 사람은 비정상적인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공자(孔子)님 말씀처럼 ''''남녀간의 정상적인 성관계(부부관계:正始)''''라면 문제될 것이 없지만, 비정상적인 성관계가 항상 말썽의 소지가 된다. 부적절한 성관계도 잘못이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이로 인해 얻게 되는 상처뿐인 영광(?), 이른바 성병이 문제이다. 하기야 색욕은 식욕·물욕과 함께 3욕의 하나라 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성병이 없을 리 만무하다.
아무튼 화류병, 소위 성병은 조선시대에도 흔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유교윤리를 신봉하고 성인지도(聖人之道)를 지향하며, 도덕군자가 되기 위해 노력했던 사대부들, 이들 역시 유감스럽지만 성병의 굴레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의 경우, 중앙 관청의 관리가 지방 관청으로 공무를 보러 가면, 지방 관청에서는 으례적으로 관기에게 수청을 들게 한다. 중앙 관청의 관리가 잠자리를 허락하면 성관계를 갖게 되는데, 이때 성병에 걸리는 경우가 흔했던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기루의 기생들과의 성관계를 통해 성병에 걸리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일부 사대부들은 성병에 걸린 사실을 모르거나, 아니면 대부분 체통 때문에 이를 감추는데 급급했던 것 같다. 설령 알았다고 하더라도 체면이나 격식을 따지는 당시의 사대부들이 이를 기록으로 남겨 놓았을 리 만무하다.
그러나 유희춘은 달랐다. 그는 자신의 잘못이나 실수, 부끄럽고 창피한 일 등을 포함한 온갖 사실들을 숨기지 않고 『미암일기』에 기록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이 임질에 걸린 사실을 솔직하게 고백하였다. 그것도 잘 나갔던 전라감사 시절 임질에 감염된 사실을 기록으로 남겼다. 뿐만 아니라 임질을 치료하고자 한 사실도 기록으로 남겼다. 그 내용을 간단히 현대어로 요약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내가 임질(淋疾)의 증세가 있음을 느꼈다.…저녁에 임질 때문에 향유차전자(香需車前子)를 가미한 오령산(五笭散)을 먹었다. 심약(審藥) 김복희가 지은 것이다.… 임질 때문에 오줌 누는데 고통을 느껴 오령산을 계속 복용하고 있다.… 음경이 아프고 염증이 있다"
이처럼 임질 감염사실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다. 관청의 수청관기와 성관계를 가져 임질에 걸린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사랑하는 아내 송덕봉(宋德峯)의 임질 감염사실까지도 기록으로 남겼다.
“해남에서 온 편지를 보니 부인이 임질을 앓는 모양이다. 이는 전에 나의 임질에서 전염된 것이다”

이 얼마나 적나라한 기록인가? 유희춘이 부인에게 어떻게 해명하였는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순행(巡行)을 할 때 오랫동안 오줌을 못누고 참았기 때문에 걸린 병''''이라고 둘러대는 것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부인에게도 이와 같이 해명했던 것 같다. 당시 사대부가의 부인들 중 성병에 대해 아는 여자는 소수에 불과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유희춘도 이같은 해명으로 위기를 넘긴 것이 아닐까? 평생의 반려자이자 지우·시우(知友·詩友)였던 사랑하는 부인 송덕봉에게 임질을 감염시킨 유희춘의 심정이 어떠하였는지는 독자들의 상상에 맡긴다.
이처럼 진솔하게 자신을 고백하고 있는 기사(記事)에서 유희춘의 인간적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이같은 사실을 기록한 『미암일기』야말로 우리 삶의 실제적 증언이며 문학적 감동을 불러일으킨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미암일기』는 체면이나 격식을 따지는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쓴 일기와는 그 차원이 다르다.
예나 지금이나 그리고 앞으로도 외도는 삼가야만 한다. 그것은 부부 사랑·존중의 약속과 법도에 위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지키는 부부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부부도 있다. 특히 우리 나라도 요즈음 혼외정사·성병 등이 늘어가는 추세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필자를 포함한 성인 남녀 모두 각자 자신을 되돌아보고 반성할 필요가 있다.
<참고>
미암(眉巖) 유희춘(柳希春:1513∼1577)은 선조(宣祖)때의 대표적인 학자요 당대 제일의 경연관이었다. 유희춘은 관리로서 충절을 지키다 을사사화와 양재역벽서사건에 무고하게 연루되어 제주·종성·은진 등에서 21년동안 유배생활을 하였다. 그는 유배지나 유배에서 풀려나 관직생활, 특히 중앙 정계의 핵심 직책을 맡아 매우 바빴음에도 불구하고, 별세하기 이틀 전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썼다.
여기서 우리나라의 대표적 일기의 하나인 『미암일기』(眉巖日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암일기』는 당시의 한 지식인이 겪었던 관리·학자·문인으로서의 삶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어 감동을 주고 있다.
유희춘은 『미암일기』에 개인의 일상사 뿐만 아니라 왕조사회의 상층부에서 국사(國事)를 논의한 사실까지 사실적으로 가식없이 진솔하게 기록하고 있다. 이와 같은 사실 기록의 진실성 때문에 후일 『선조실록』편찬시 『미암일기』가 사초(史草)처럼 채택되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당시의 모든 면을 총체적으로 담고 있어 진정한 의미에서의 일기요, 일기다운 일기이다.
특히 자신의 잘못이나 부끄럽고 창피한 일 등을 포함한 온갖 사실들을 숨기지 않고 진솔하게 고백하고 있어 유희춘의 인간됨을 엿볼 수 있다. 이같은 일기야 말로 삶의 진실된 증언이라 할 것이며, 바로 이 점이 감동을 불러 일으킨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미암일기』는 체면이나 격식을 따지는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쓴 일기와는 그 격이 다르다.
송재용  (동양학연구소 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