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스 샌버나디노 주택가에서 윤 아무개씨(43살)가 진용(12살), 창용(10살) 두 아들과 함께 정겨운 기억이 서려있는, 시꺼먼 재만 남은 다 타버린 집 터를 둘러보고 있다. “영적인 재산은 무사하고 물질적인 재산만 모두 불에 탔다”며 아쉬움이야 있겠지만 그렇게 슬픈 모습은 아니다 .

10월 21일 부터 시작된 미국 캘리포니아주 L.A 주변 일대를 휘쓸고 지나간 산불이 주말을 고비로 한숨을 돌렸다. 이번 주까지는 대부분 진화될 것으로 보인다.
결국은 날씨 덕분이다. 적지않은 비가 내리며 기온도 10도 이상이 떨어지고 바람 도 많이 잦아들었다.
1년 중 가장 건조한 시기에 몰아닥친 ‘산타아나’ 강풍(모하비 사막에서 불어오 는 뜨거운 바람. 이 바람이 부는 매년 10월에 기온이 30도 이상으로 올라간다.)을 타고 불길이 사납게 번졌다. 서울 면적의 5배 크기인 75만 에이커를 잿더미로 만들고 주택 3천 3백여채를 태우고 소방관 1명을 포함해 주민 사망 20명이라는 엄청난 피해를 입히고 남가주를 공포에 몰아 넣었던 산불은 완전히 기세가 꺽였다.
캘리포니아주 최악의 재난중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 1993년 L.A인근 노스리지 대지진과 1906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에 버금가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똑같은 집이라도 평지보다는 언덕위, 같은 아파트라도 낮은 층보다는 높은 층이 더 비싸다. 또 비슷한 위치에 있더라도 집에서 보이는 주변 경치가 어 떠냐에 따라 값이 큰 차이가 있다. 멀리 태평양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깍아지른 절벽 위에 세워진 집들이 수백만 달러를 호가하는 것도 그때문이다. 높고 경치 좋은 지역을 선호하는 주민들의 바램으로 새로 개발되는 주택 단지의 상당수가 산림과 인접한 언덕 지역에 들어서고 있다. 이번에 피해를 입었거나 입을 위험에 처한 주택 중 많은 숫자가 그런 단지에 속한 것이다.
산불 피해액이 20억 달러 정도로 추산되지만 1조 4천억 달러인 캘리포니아 경제규모로 보면 그 파급효과는 그다지 우려할 만한 것이 아니라는 경제학자들의 분석이다.
산 기슭에 위치한 주택들은 전소됐지만, 실제로 상업지역의 빌딩들은 피해를 보지 않았다. 또한 도로나 철도, 통신시설 등의 산업기반을 비롯해 학교, 병원, 상하수도 등의 생활 기반도 큰 타격을 입지 않았다는 것이 그 이유다.
“대피소에서 밤을 새우면서 내내 집이 불안했는데 이젠 불안해 할 필요가 없게 되었어요. 다 타버렸으니까요” “동네 모퉁이를 돌아서는데 우리 집이 있어야 할 자리가 텅 비어있고 시커먼 연기만 올라오더군요” “우리 가족 모두 건강하게 살아 있으니 되었지요. 불도저로 싹 밀어버리고 다시 집을 지을 겁니다”
“막상 짐을 챙기려고 보니 꼭 챙겨야겠다 싶은 건 별로 없더군요.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들을 너무 많이 사들이며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불이 휩쓸고 지나가면 한 순간에 사라질 것들에 우리가 너무 많은 시간과 정력을 쏟으며 살아 온 것 같아요” 산불 피해자들이 한 말이다.
신문 사진이나 TV 화면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불기둥은 많이 보았지만, 큰 재앙때 면 우리가 항상 보아오던, 피해자 들이 땅을 치며 땅이 꺼져라 울부짖는 모습은 볼 수가 없다. 동서양의 정서적 차이가 근본적으로 있겠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보통 30만 달러 주택을 화재보험에 가입한 경우(거의 모두 들어야한다. 신용에 따라 은행에서 10%정도만(3만달러)있으면 나머지는(27만 달러) 30년 까지 융자를 해 주기에 은행 쪽의 첫번째 요구 사항이므로) 화재 발생시 재 건축비용으로 30만 달러(100%), 가재도구 보상비용으로 22만 5천달러(최대 75%), 대피 또는 재건축 기간동안의 숙박비 6만 달러(보통 20%) 정도로 모두 58만 5천 달러 정도를 보상받게 된다. 보험의 세세한 종류에 따라 차이는 나지만 웬만한 보험이면 이정도는 받는다.
캘리포니아 지역은 지진때문에 모든 집은 거의 나무로 짓지만 벽난로만은 벽돌로 만들기에 굴뚝만 덩그라니 남아있다. 그곳에 영화 터미네이터의 마지막 장면에 주지사로 당선된 슈워제네거가 한 말 “I’ll be back”이 아니라 “We’ll be back ”(우리는 다시 돌아온다)이라고 쓴 것이 기억에 남는다.
<LA 미주한국일보 기자>
진천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