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란 어렵다. 오히려 두 마리를 쫓다가 정작 한 마리조차 못 잡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오직 경상도 악바리 근성 하나만으로 일과 학과 공부, 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재학생이 있다. 바로 예비 시나리오 작가를 꿈꾸는 백은진(예술학부·3)양.
처음 백양에게 인터뷰를 청했을 때, 그녀는 자신이 학보에 날 만한 사람이 아니라며 손사래부터 쳤다. 그러다 기사 최종 마감 날인 지난 일요일이 돼서야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
22살의 한 젊은 여자가 한 손에 무거운 책 꾸러미를 들고, 수줍게 신문사 문을 열고 들어선다. 그 나이 또래의 여느 여대생과 별반 다를 게 없는 수수한 옷차림이다. 하지만 그녀를 겉모습으로만 판단한다면 큰 오산이다.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SBS 방송국 인턴 사원에 KBS 시트콤 아이디어 작가, 그리고 싸이더스 영화사에서 주최한 시나리오 대회 장려상 수상까지,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매학기 성적 장학금을 놓쳐 본적이 없다고 한다. 이처럼 그녀 앞엔 언제나 화려한 수식어가 따라 다닌다. 주변에서는 그런 그녀를 두고 탄성을 내지르기 일쑤지만, 정작 그녀는 그럴수록 고개를 숙인다.
“고등학교 때까지 한번도 글을 써서 상을 타 본적이 없어요. 그냥 글을 읽고 쓰는 걸 좋아했을 뿐이죠. 문예창작학과에 진학하고 나서 처음엔 제 자신이 많이 위축이 되었어요. 다른 친구들을 보니 문학 특기자에 고등학교 재학시절부터 글쟁이로 이름을 날렸던 친구들도 더러 있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럴수록 더 열심히 했죠.”
백양의 말처럼 그녀가 처음부터 뜨거운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은 결코 아니다. 1학년 때엔 그저 주변에서 학과 공부 열심히 하는 학생 정도로만 인정을 받았었다. 그러던 중 2학년 2학기가 시작되면서 백양은 다른 쪽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평소 영화, 방송 쪽에 관심이 많았던 그녀였던지라 본격적으로 그쪽에서 경험을 쌓아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그쪽에서 일을 할 수 있는지 알 길이 전혀 없었다. 며칠을 고심하던 끝에 무작정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리고 몇 날 몇 일을 인터넷 구인구직 광고란을 뒤지며 영화, 방송 쪽 일을 찾았다. 그렇게 해서 그녀가 처음 시작하게 된 것이 바로 SBS의 야심만만이라는 오락프로그램의 인턴사원이었다. 인턴사원 역시 높은 경쟁률 끝에 뽑힌 운 좋은 결과였다.
“방송 일이란 게 밤새 강행하는 날이 많아서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저에겐 힘든 날의 연속이었죠. 한번은 일을 마치고 막차를 타려고 서울역으로 가려는 데, 지하철이 끈긴 줄도 모르고 무작정 기다리다가 결국 밤새 지하철역에서 운 적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쉽게 포기할 그녀가 아니었다. SBS 인턴사원을 계기로 지난 5월에는 KBS 시트콤 달려라 울엄마의 아이디어 작가로 들어갔다. 그때도 역시 1백 여명 중에 뽑힌 사람은 그녀를 포함 오직 3명뿐이었다.
“아이디어 작가로 들어갔을 때는 인턴사원보다 더욱 바빴어요. 일주일에 3일은 마라톤 회의를 했기 때문에 학과 수업은 교수님들께 레포트로 대체한다고 말씀드리고 양해를 구할 수밖에 없었어요.”
일을 한다고 학과공부를 소홀히 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방송국 일을 마치고 늦은 시간 녹초가 되어 돌아와서도 새벽까지 밤을 지새우며 학과공부를 하는 그녀였다.
요즘 그녀는 지난 4월에 싸이더스 영화사에서 주최한 시나리오 대회에 입상한 것을 계기로 본격적인 시나리오 공부에 몰두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방송보다는 영화 쪽이 그녀에겐 더욱 끌리기 때문이다.
무엇인가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무서운 근성으로 파고들어 꼭 이뤄 내고야 마는 당찬 젊은 여대생 백은진양. 오늘도 그녀의 기숙사 방엔 늦은 새벽까지 불이 켜져 있다. 끊임없이 도전하는 그녀에겐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박정길 기자>  irisjg@dankoo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