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장’을 취재하기 위해 고군산 군도의 선유도로 향했다. 버스와 통통배를 타고 겨우 찾아 들어간 선유도에는 사라진 ‘초분’의 흔적을 기억하는 주민 몇만이 남아있었다. 선유도의 마지막 초분은 3년전에 매장됐다고 한다. 수소문 끝에 선유도 옆 무녀도에 초분 한 기가 남아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찾아갔지만 입산금지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어 실제로 확인하지는 못했다. 다만 산밑에 만들어놓은 모형초분에 만족하고, 주민들의 입을 빌려 취재를 하고 돌아왔다. <편집자주>

짧으면 한 사리(15일) 다녀올 참이다. 조기잡이는 몇 달씩 조기떼를 따라 이동하기 때문에 길면 한 두어 달도 무상타. 평생 팔자 ‘어부(漁夫)’로 낙점되어, 바다에 몸을 싣지 않고서는 살길이 없다. 그 덕분인지 집 떠나는 길에 돌아올 날을 기약할 수도 없다.
떠나기 전날 그물을 다시 꿰고, 어구들과 먹을 것 몇나 준비하고서는 날씨를 점치고 앉아 있다. 바람이 잦아야할 텐데 그도 생각처럼 되지를 않는다.
“하늘이 도와야 되지. 시방 암 걱정말고 댕겨 오드라고. 고마 천지신명 무사히만 돌아오게 해부렀으면 좋겄다. 싸게 오거라이.”
“여보, 여기일은 걱정할거 없소. 맘편히 잘 갔다 오시소.”
65세 허리 굽은 노모와, 갓난아이 들쳐 업고 마중 나온 아내가 멀리 손을 흔든다. 아내는 흔드는 손 때문에 바다가 더 거세진 것 같아 잽싸게 손을 내려놓는다. 한두 번 보내는 것도 아닌데 이번에는 맘 한구석 걱정이 내어든다. 파도는 없는디…
한 사흘 지났을까. 서방은 잘 있나 걱정도 하기 전에 노인네가 쓰러졌다. 아들이 없는 자리에 할일은 많고 무리를 했던 탓이다. 좀 쉬라고 성화를 부렸는데도 막무가네로 고집을 부리더니 일이 터진 것이다. 아이는 젖 달라고 울어 재끼고 집안이 엉망이다.
노인은 윗풍이 심한 안방에서 시름시름 앓더니, 결국 눈을 감았다.
“죽어서도 파도소리도 듣고, 굴 따던 갯 내음 맡으면서 눈감을 란다. 아그야. 니 혼자 두고 내가 우째 떠날까 싶다. 갸는 바다에서 거시기하고 있겄제. 나는 그냥 거죽이나 덮어서 묻어 도고.”
아들 이름을 연신 부르더니, 이 몇 마디만 남겨두고 떠났다.
마른자리에 눕는 것이 섬사람들의 소원이란다. 파도소리에 고기들의 울음소리가 그리워서 땅속에 묻히는 것이 싫은 것일까. 한자만 파고 들어가도 물이 고이는 섬의 토질 때문에, 육탈이 되고 나서 뼈를 묻고자 하는 것일까. 아무튼 노인네는 그 섬의 풍습대로 ‘초분’을 썼다. (초분은 ‘쓴다’라고 말한다.)
의례 중에 의례로 여겼던 장례에 장정들이 바다에 나가고 나면 여자들만 장례를 치러야 할 일이다. 멀리 장지까지 어떻게 갈 것이며, 땅을 파고 봉분을 만드는 일은 어떻게 감당할까.
바다에 나간 자식들에게 알릴 방법은 더 더욱이 없고 남겨진 아이와 어미는 눈물범벅이 되어 발을 동동 굴리고 있다.
섬마을 사람 몇몇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초분장을 지냈다.섬사람들은 갑작스레 부고를 당하게 되면, 자식이 돌아올 때까지 초분으로 대신하고 있다. 바다에 나간 자식이 부모의 임종을 못한 것도 불효인데 입관에 시신마저도 볼수 없다면 더 큰 불효될까 싶은 게다.
선유도에 친정할아버지를 초분으로 썼다는 이영례 씨는 “서해 섬사람들은 한 30년 전만해도 죄다 ‘초분’을 썼을 것이여. 갑자기 사람이 죽으면 묻을데도 엄꼬 해서 그랬지 아마. 정월에 사람이 죽으면 절대 땅을 안파기 땀시 ‘초분’을 안쓸 수 있간디”라고 말한다.

옆에 있는 할아버지는 “정월에 땅을 다뤄 마을에 좋지 않은 일이 생기든지, 아픈 사람이나 동네뭐가 안된다든지, 고기가 안잡힌다든지 아무튼 재수가 없써”라며 할머니 말씀을 덧붙인다.
초분은 임종후 입관까지는 일반 장제와 차이가 없지만, 땅을 파고 묻는 매장이 아니라 땅위에 돌이나 통나무 혹은 그냥 땅위에 관을 놓아두고 짚으로 이엉을 엮어 덮어두는 것이라 설명한다. 이후 3~4년이 지난 다음 탈골 후 손이 없는 길일을 택해서 매장하는 장례를 치르는 것이다. 땅에 묻지 않는 까닭에 짐승과 태풍 등 바람에 훼손되는 일이 많았다.
시어미 여윈 그 집안도 마찬가지다. 집 떠난지 한달이 다되어가는데, 바다에 그집 뱃머리 하나 닮은 배도 보이질 않는다. 무섭다. 밤이되면 바람은 세어지고, 멀리 바람 되어 간 시어머니 따라 갔나 별별 생각이 다 든다.
매일 초저녁 즈음, 초분 앞에서 갈매기들을 쫓고, 무덤을 살핀다. 혹여 이엉을 잘 매어놨는데도, 머리 없는 녀석들 때문에 초분이 상할까 노심초사다.
막상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앞으로 생계가 걱정이다. 젖먹이 젖이라도 물릴려면, 조개, 굴이라도 따다 팔아야하는데, 아직 서투르기 짝이 없다. 손에 익은 연장도 없다. 시어미가 쓰던 목장갑과 연장뿐이다.
“돌아가시기 전에, 좀더 가르쳐 주시고 가시지. 이제 우예 살라꼬.”
하늘은 맑고 청명했다. 오래간만에 파도는 잔잔히 내리치고, 갯벌의 생명들도 하나둘 땅을 뚫고 기어 올라왔다. 그날 남편이 돌아왔다. 풍선배에 실어진 어구들만 봐도 얼마나 고생했는지 눈에 선하다. 잡아온 조기들과 갖가지 그물에 따라 걸려온 해산물을 내보이며 어머니를 찾는다. 이만 하얗고 얼굴은 시커멓다. 무슨 소식부터 전해야할지 아내는 그만 울음을 터트린다.
“와 이리 늦었다요. 어머니가 돌아가셨소. 저기 저 앞에 묻어 드렸으니 한번 가 봐요.”
검게 그을린 그의 눈에서 짠 내음 나는 눈물만 연신 흘러내린다. 그는 이장하기 전 초분을 덮은 이엉을 1년에 한번 꼴로 갈아주었다. 처음 맞는 명절이 돌아와 일가 가족들이 모였다. 제를 올리고 그 표시로 이엉 위에 솔가지를 꽂아둔다. 그렇게 그는 바닷바람에 어머니를 보내드리고, 이엉 위에는 솔가지가 아주 많이 붙어있다.
이장기간은 보통 1~3년이지만 5년, 10년 그대로 두기도 한다. 초분한 자리가 좋으면 다른 곳에 이장하지 않고 바로 본 매장을 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는 이제 6년째 초분지기를 하며 바람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이처럼 1990년대 무렵에도 초분이 기록되어있는 섬으로는 완도의 보길도, 청산도, 진도, 신안의 비금도, 도초도, 자은도, 우이도, 증도, 영광의 낙월도, 송이도, 부안의 위도, 고군산군도의 선유도, 무녀도, 야미도 등이다.
취재를 위해 어렵사리 찾아간 무녀도에는 모형 초분과 설명을 담을 표지판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초분’의 원형을 짐작케 하는 이것을 본 순간 섬 사람들의 자유로움이 느껴져 왔다. 죽은 후에도 남아있는 자와 넉넉하게 나누는 저승사람의 이승과의 교류. 그것은 평생 맡은 바다내음을 잊지 않으려는 섬사람들의 마음이 아닐까.
고즈넉한 모습으로 저물어가는 해를 바라보며, 남겨진 늙은 아들이 흘렸을 쓸쓸한 눈물이 바람 속에 묻어왔다.

풍장1 - 황동규

내 세상 뜨면 풍장시켜 다오/ 섭섭하지 않게/ 옷은 입은 채로 전자 시계는 가는 채로/ 손목에 달아 놓고/ 아주 춥지는 않게/ 가죽 가방에 넣어 전세 택시에 싣고/ 군산(群山)에 가서/
검색이 심하면/ 곰소쯤에 가서/ 통통배에 옮겨 실어 다오//

가방 속에서 다리 오그리고/ 그러나 편안히 누워 있다가 /선유도 지나 무인도 지나 통통 소리 지나/ 배가 육지에 허리 대는 기척에 /잠시 정신을 잃고 /가방 벗기우고 옷 벗기우고/
무인도의 늦가을 차가운 햇빛 속에/ 구두와 양말도 벗기우고/ 손목시계 부서질 때/ 남몰래 시간을 떨어트리고/ 바람 속에 익은 붉은 열매에서 툭툭 튕기는 씨들을 /무연히 안 보이듯 바라보며/살을 말리게 해 다오/ 어금니에 박혀 녹스는 백금(白金) 조각도/ 바람 속에 빛나게 해 다오//

바람 이불처럼 덮고/ 화장(化粧)도 해탈(解脫)도 없이/이불 여미듯 바람을 여미고/ 마지막으로 몸의 피가 다 마를 때까지/ 바람과 놀게 해 다오

- 시인 황동규는 14년 동안 써온 연작시 「풍장」을 완결했다. 지난 82년 「풍장 1」부터 시작했던 시인은 [현대문학] 7월호에 「풍장 70」을 발표, 그 동안 문단에서 시인의 징표처럼 여겨졌던 연작시를 마감했다. 시인은 지난 9월 연작시들을 모아 시집 「풍장」을 문학과 지성사에서 펴냈다
<길지혜 기자>  tameyou@dankoo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