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마고치’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90년대 후반을 회상해 보자. 그것은 마치 정말로 살아서 존재하는 듯한 리얼리티를 가진 사이버공간의 캐릭터가 전세계의 청소년들을 사로잡았던 ‘사건’이었다. 그런데 이 ‘사이버 애완동물’의 탄생은 1989년의 산타페에서의 워크샵 이후로 본격화되었던 인공생명(Artificial Life)에 관한 과학적 연구와 무관하지 않다. 실제로 살아있는 생명체와 유사하게 관찰되는 컴퓨터 바이러스의 문제도 있지만, 가상현실(VR: virtual reality)이 그러하듯, 관찰자의 입장에서 그것이 ‘생명’이라고 보여질 수 있는 외관(presence)과 (사용자의) 작용에 대한 반작용(interaction), 그리고 생명체 혹은 그 네트웍의 자율성(autonomy)를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그것이 진짜로 살아있으며, 나와 소통하고 있다고 믿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몰입의 문제이며 때때로 매우 주관적이기도 하다. 그리고, 페트(pet)야 말로 매우 주관적인 몰입의 대상이다. 90년대 이후로 개발된 수많은 ‘사이버 페트(cyber pet)’들은 과학적 연구분야로서의 ''''인공생명''''의 영향이 반영된 탓이기도 하지만, 컴퓨터와 인간의 소통(interface)을 통하여 사용자를 얼마나 실감나는 착각에 빠트릴 수 있는가에 실험한 결과이기도 하다.
예술가로서 이와 같은 사이버페트의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대표적인 사람으로서 토사 나오코(土左尙子)를 들 수 있는데, 원래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80년대에 비디오 아티스트로 활약하던 그녀는 1992년부터 ‘뉴로 베이비’를 발표하면서 예술계의 주목을 받는 한편으로, 한때 ‘인공생명’에 관한 담론에서 자주 거론된 적도 있었다. (물론 그녀 자신도 관련 워크샵에 열심히 참석했었다) 최근의 작업은 인간의 목소리나 생리데이터에 포함된 감정이나 언어의 의미를 인식하여 인간과 소통하는 ‘자율적 캐릭터’를 주제로 한 작품을 제작하는 일이다.
이 사진은 1995년에서 2000년 사이에 발표된 ‘뉴로키드 MIC’의 한 장면이다. 이 주인공은 마이크로 입력되는 사용자의 음성으로부터 기쁨, 분노, 놀람, 슬픔, 혐오(disgust), 귀찮음, 공포 등을 읽어내고 이에 반응하는 데, 예를 들어 이 사진 ‘놀람’의 경우에는 비명(screaming)과 흥분된 목소리(excited voice)로 반응한다. (참조: http://www.mic.atr.co.jp/~tosa/).
이것을 예술작품으로 인정하는데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을 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녀의 ‘주제’가 ‘감정, 의식, 무의식의 정보를 다루는 소통’이라는 점을 알고 나면 생각이 달라질 지도 모른다. 예술가나 과학자나 인간과 자연의 본질이나 밝혀지지 않은 진실을 탐구하는 것이 본연의 소명인 점에서는 차이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MIT의 고등시각연구소의 초빙예술가’, ‘ATR의 지능영상통신연구소의 예술가 겸 연구원’과 같은 그녀의 ‘신분’(?)은 명실공히 과학과 예술이 만나고 있는 양상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것이다.
<예술대학·예술학부·서양화전공> 교수
이원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