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 유가공 제품인 버터에 비해서 다소 저렴한 마가린이 세상에 등장한 것은 1862년이다. 당시 프랑스의 황제였던 나폴레옹 3세는 군대에 보급할 버터의 대용품을 만들기 위해서 현상금을 걸었다. 화학자인 히폴리 마즈머리는 소기름, 탈지유 등을 혼합하여 지금의 마가린과는 좀 다른 동물성 마가린을 제조했고, 나폴레옹 3세로부터 상금을 받았다. 이 마가린이 미국의 소비자들에게 알려진 것은 1873년인데,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에 소비자들에게는 환영을 받았지만 버터를 생산하던 미국의 유가공업계를 바짝 긴장시켰다. 유가공업계는 마가린의 문제점을 과장하여 선전하고 정부와 의회를 상대로 대대적인 로비를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일부 주에서는 마가린의 생산과 유통을 완전히 금지시켰고, 미국 의회는 고율의 세금을 부과했다. 마가린은 원래 버터에 비해서 싼 가격에 거래되어야 하지만 법과 세금으로 규제한 결과 미국의 소비자는 엄청나게 비싼 가격을 지불해야 했다. 미국에서 마가린이 다시 등장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저렴한 버터 대용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가격의 결정이 시장의 논리에 따르지 않고 법과 세금에 의해서 정해지고, 시장마저 붕괴시켰던 극단적인 사례이다.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이 지배하는 완전경쟁시장은 현실의 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현실의 세계에서는 대부분의 시장을 장악하여 마음대로 가격을 올리거나 내리는 독점 또는 과점이 나타난다. 순수한 의미로 수요와 공급이 가격을 결정하는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고, 광고 등의 마케팅 활동이나 신기술, 디자인, 유통망의 구조 등도 같은 종류의 상품의 가격을 다르게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마가린의 예처럼 법률 및 세금이 가격을 결정하기도 한다. 같은 종류의 상품이라도 어디엔가 차이가 있어 소비자의 선호도가 다르게 나타난다.

제조원가, 성능, 디자인 등 질적으로 거의 수준이 같은 경우라도 브랜드에 따라서 소비자가 지불하는 가격은 차이가 난다. 더구나 같은 브랜드의 제품도 할인점에서 구입하는지 아니면 백화점에서 구입하는지에 따라서 가격이 다르다. 같은 할인점에서 구입하더라도 구입하는 시점에 따라서 가격이 달라지기도 한다. 다수의 합리적인 소비자가 참여하는 시장에서 나타나야 하는 일물일가의 법칙이 현실의 세계에서는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
그러나 증권시장의 가격결정 방식은 상당히 순수하다. 같은 종류의 증권의 가격은 같아야 한다는 명제에 철저하게 부합한다. 만일 어느 시간에 증권의 가격이 두 가지로 거래된다면 이를 아는 투자자는 무위험 이익을 얻을 수 있다. 무위험 이익의 기회는 어느 누구도 이익을 얻을 수 없을 때까지 계속되어 마침내 증권의 가격은 하나가 된다. 실제 일시적으로 발생한 무위험 이익의 기회가 없어지는 시간은 지극히 짧아서 몇초이내에 사라진다. 증권거래소에서 가격을 결정하는 방식도 같은 시간에 두 가지 가격으로 거래될 수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국제거래가 증가하면서 같은 주식이 두 개의 증권거래소에서 거래되기도 하지만 가격의 차이는 발생하는 순간 축소된다.
증권시장에서는 수많은 투자자가 각자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가격을 제시하고 경쟁하여 가격을 결정하지만 자신과 거래하는 상대방이 누구인지는 전혀 모른다. 법적으로는 거래가 성립하는 순간 증권거래소가 거래의 상대방이 되고 최종적인 결제까지도 책임진다. 매도하려는 투자자가 많아지면 가격이 내려가고 반대의 경우는 올라가도록 설계되어 있다. 또한 가장 적절한 가격은 현재와 미래의 회사 가치를 가장 정확하게 표현하는 가격이므로 회사의 정보가 변하면 그 순간 증권가격도 변동해야 한다. 이것을 뒷받침하는 것이 공시제도인데 증권을 발행한 모든 회사는 회사의 정보 중 주가에 영향을 주는 것은 거래소를 통하여 공표해야 한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불량한 투기세력도 존재한다. 가격을 조작하거나 가짜 정보를 유포하여 부당한 이익을 보려는 이른바 작전세력이 그들이다. 증권거래소는 증권가격이 왜곡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막대한 시설과 인력을 투자하고 불량 투기자를 적발한다. 증권시장의 가격이 수요와 공급의 윈칙에 따라 보이지 않는 손의 지배를 받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증권거래소 시장감시부 차장·87 법학 졸
최욱  <choica@kse.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