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칼럼


챤디가르의 교훈
이 재 훈[건축대학·건축학과]



얼마전 대학원생들과 인도건축 답사를 다녀왔다. 인도는 동양전통의 뿌리를 갖고 있고 세계적으로 그 나라의 전통을 강조하는 몇 안되는 나라중의 하나이다. 핵무기나 IT 분야에서는 세계적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만, 도시나 사람들의 차림에서는 후진국의 모습이 보이며, 길에 앉은 사람들은 무위(행위를 하지 않음)의 전통적인 삶의 철학을 신봉하는 듯했다.
인도는 국토가 우리나라의 33배에 이르는 거대국가로서 다양한 문화와 종교가 복합된 국가이다. 인도의 오래된 도시 특징을 보여주는 올드 델리는 각기 다른 종교적 색채의 흔적을 가지며, 더위를 막고 외부의 침입에 견딜 수 있는 전통적인 인도의 가옥과 가로형태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시간의 변화에도 크게 바뀌지 않고 도시나 건물의 형태가 이어져 내려온 것을 보면 인도를 이끄는 전통의 힘을 다시 실감하게 된다.
인도 북부의 신도시인 챤디가르는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진 도시는 아니지만, 1945년 인도의 독립이후 인접국인 파키스탄과 종교적 영토분쟁이 끊이지 않던 때에 인도와 파키스탄간에 대타협이 이루어지면서 영토의 맞교환이 있었으며, 이런 와중에 상대영역에 있던 상대국의 국민들이 종교적 이유로 각기 제나라로 이주를 하게 되었고 챤디가르는 파키스탄 영토에 거주하던 인도인의 이주를 위해 신도시로 개발되게 되었다.
당시 인도의 수상인 네루는 거대한 포부를 안고 챤디가르를 세계적인 도시로 개발하기 위해 그 당시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던 프랑스의 건축가이며 도시설계가인 르 꼬르뷔제를 고용하여 도시설계와 행정타운 등의 건물 설계를 맡기게 되었다. 르 꼬르뷔제는 그가 평소에 생각하던 도시의 이상적인 모형을 이곳에 적용하고자 하였다.
행정타운을 중심으로 수직과 수평축에 의해 도시의 기본 틀을 짜고, 자동차를 전제로 한 대규모 블록의 분할과 그리드 체계의 차로계획, 보행자를 자동차로부터 분리하여 별도의 보행자도로 체계를 설정하며, 도시의 구역별로 부유층의 주거단지, 중산층 주거단지, 저소득층 주거단지를 분리하고, 대학단지, 공원용지, 시장구역, 호수공원 등을 일정한 지점에 분산 배치하는 안을 실행하게 된다.
그러나 꿈의 도시를 기대하며 건물과 도로, 공원이 멋지게 어우러지는 도시를 상상한 르 꼬르뷔제의 챤디가르 도시개발 안은 결과적으로 실패된 모형이 되었다. 그가 생각한 계획안은 사람의 삶의 기본적 특성을 망각한 것처럼 보여진다. 사람의 삶은 논리적 해석과 기계적 구상으로는 감당되지 않았다. 인도인의 삶의 양식은 거대한 도시를 이을만큼 체계화되어있지 않았으며, 생활은 작은 공간을 고밀로서 활용하는 것에 익숙해 있었고, 챤디가르의 사람들은 그가 생각한 정도로 자동차를 이용하지 않았을뿐더러 보행자를 차도와 구별할 필요성을 갖지 못했다. 용도별로 구별된 블록들은 동떨어진 기능이 되었으며, 블록내에는 새로운 복합기능이 필요했다. 도시가 개발된지 40년이 지났지만 근본적인 구조적 결함은 아직도 치유되지 못하고, 도시는 썰렁함을 보이고 있으며 올드 델리에서 보여지는 인도인이 갖는 인간다운 도시의 면모는 찾을 수 없었다.

새로운 도시를 만들어 인도인들에게 새로운 이상을 심어주고자 했던 네로나 르 꼬르뷔제의 희망은 오히려 일을 하지 않은 것보다 못한 상황이 된 셈이다. 만일 르 꼬르뷔제가 새로운 도시를 구상하며 인도에 대해, 인도인의 생활에 대해 보다 면밀히 연구하고 그들에게 필요한 도시가 어떤 도시인지를 깊이 연구했더라면, 그가 생각한 이상적인 도시의 이론적 모형을 그대로 인도에 적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인간의 삶의 복잡성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였거나 자만하여 인간을 무시하고 자신의 뜻을 그대로 펼친 결과라고 보여진다. 인도인의 미래를 위해 혁신적인 선택을 하였지만 결과는 많은 사람들을 오랜 시간동안 불편하게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새로운 도시의 개발이 그만큼 어려운 것처럼 인간사에 일어나는 많은 일들도 이러할 것으로 생각된다. 세간에는 거창한 꿈과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해 기존의 질서를 무시하고 새로운 시스템으로 내놓는 것들이 많다. 선진국의 방식이라는 이유로 평생직장이던 직장은 구조조정에 의해 언제고 떠날 수 있는 하나의 일터가 되었고, 학교도 하나의 시장처럼 소비자의 평가가 중심이 되어 부모에 대응되는 선생님의 권위는 사라졌고, 젊은이의 사고체계가 맞는다고 나이든 사람들의 가치는 무시되며, 믿음으로 지켜지던 친구의 우정은 취미생활의 동료로밖에는 치부되지 않는다. 조화와 협동을 대신하여 선점을 위한 경쟁과 독선이 우선시 되고 있다.
아무리 이상적 목적을 위해서라고 하더라도 이러한 것들이 사람들의 특성을 무시하거나 사람들의 삶의 방식에 맞지 않는다면 결국 겉도는 가치관으로서, 시스템으로서 실패의 길을 겪게 되고 말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많은 사람들을 오랜 시간동안 힘들게 할 것이다. 우리사회에 있어서 기존 질서의 불합리성과 모순의 개선은 시급한 당면과제이다. 그러나 현실적 여건과 기존 질서가 갖고 있던 장점을 무시하고 전혀 다른 시스템을 도입한다면 그것 또한 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챤디가르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것이 세계적 수준이 아니더라도, 새로운 틀의 설정은 삶의 특성에 걸맞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사례가 되고 있다.
이 재 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