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언(寓言) 읽기의 즐거움⑪ 배 터져 죽은 소



오늘 소개하는 우언은 강항(姜沆, 1567~1618)의 『우계(牛戒)』이다. 강항은 『간양록(看羊錄)』의 작자로 널리 알려진 조선시대 학자이다. 정유재란 때 왜적에게 잡혀가 4년간의 포로생활을 마치고 가족과 함께 돌아왔으나, 귀국 후 조정의 의논에 꺾여 벼슬을 하지 못하고 고향인 영광(靈光)에서 여생을 마쳤다. 『수은집(睡隱集)』에 실려 있는 이 작품은 그가 만년에 지은 것으로, 너무 많이 먹어서 배가 터져 죽은 소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는 농사를 짓고부터 한번도 소를 키운 적이 없다. 봄철에 동분서주하며 이웃 사람들에게 소를 빌려 밭을 갈았으니, 밭갈이할 때마다 사람들은 모두 너무 심하다고 원망하였고, 나 자신도 먹고 살기 위하여 남에게 폐 끼치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겼다.
지난 을묘년(1615)에 흉년이 들어 쌀값이 폭등하자 소작료로 받은 쌀을 가지고 암소 한 마리를 구입하였다. 그 이듬해 여름은 먹을 것이 좀 넉넉지 못한 게 흠이었지 마음은 맑고 편안하였다.
동짓달 초사흘에 잠포(岑浦)에 사는 소작인이 콩을 가지고 왔다. 한밤중이 되니 소가 코에 꿴 고삐를 물어 끊고서 섬돌에 올라가 콩을 훔쳐 먹었는데, 너무 많이 먹은 나머지 사흘이 지나 배가 터져 죽고 말았다.
나는 게으른 비복들이 여물을 제때 주지 못하여 소가 굶어 죽지 않을까 염려한 적은 있지만, 배불러 죽을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소는 무지한 짐승이니 나무랄 것이 없지만, 만물의 영장인 사람 중에도 배불러 죽는 우환이 있다.
『시경(詩經)』에는 “벼슬을 받아 사양할 줄 모르니 필경 몸을 망치리라.”라는 말이 보이고, 옛 글에도 “어린아이의 병은 너무 많이 먹는데서 생긴다.”라는 말이 보인다. 참으로 경계할 일이다.

소작인이 가지고 온 콩을 훔쳐 먹고 배가 터져 죽은 소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가 살아가는 인간 사회를 되돌아본 글이다. 특히 『모시(毛詩)』 소아(小雅) 어조지십(魚藻之什) 각궁(角弓)에 나오는 구절을 인용하여 환로(宦路)에 나아갈 줄만 알고 그로 인해 화(禍)가 닥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살필 줄 모르는 인간의 속물근성을 비판하고 있다. 이는 작자 자신 벼슬길에 나아가지 못하고 고향에서 지내야 했던 데 대한 스스로의 변명이자 위안일 수도 있다. 어쩌면 고향에서 농사를 지으며 사는 자신에 대한 자족적 표현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런 한편, 나서야 할 자리와 나서서는 안 될 자리를 가리지 못하고 오직 출세의 길이라면 죽으러 가는 길일지라도 용감히 나서는 어리석은 이들, 그러한 군상(群像)이 횡행하는 세태를 비판한 것으로 읽을 수도 있다. 강유선(康惟善, 1520~1549)의 『주봉설(酒蜂說)』에서 보았던 벌[蜂] 역시 이 글에 나오는 소처럼 한갓 구복(口腹)의 이욕(利慾)을 채우느라 자신이 죽음에 이르는 줄 미처 깨닫지 못했다. 이처럼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어떤 의미를 지닌 것인지, 결국 그것이 초래하고 말 결과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 그 어떤 생각도 않고 그저 당장의 배부름에만 취해서 파멸의 수렁 속으로 빠져 들어감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안분지족(安分知足)이란 말이 있다. 자신의 분수를 편안히 여기고,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사람이 어찌 자신의 현실에 만족하며 살 수 있겠는가? 그러하기에 사람은 자신의 분수를 넘어서는 욕망의 노예가 되기 쉽다. 경계할 일이다. 소나 벌은 무지해서 그렇다고 치자. 그러나 사람은 소나 벌이 아니지 않은가? ‘배부른 돼지가 되기보다는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라’는 말은 그래서 곱씹어볼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닐까? 윤승준(동양학연구소 연구교수)
윤승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