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한국문화 - 물질 - 해녀들의 삶과 애환 2

평생을 물질과 그물질로 살아온 노부부, 그래서 행복했다.


아내는 바닷로 들어가고
배 위에서 그물 고르는
지아비의 옆에는
‘순진’ ‘양순’ 등의
해녀이름이 적힌 테왁들이
갈매기처럼 앉아 있었다.


물에 들어가기 전 진통제 가루약 ‘뇌선’을 들이키는 그들의 모습에서, 어쩌면 삶이란 피할 수 없는 고통이 따른다는 것을 말해주는지도 모른다. 제주도 우도 서광리에서 만난 해녀들은 지난호 차귀도 해녀들과는 또 다른, 그들만의 대화를 하고 있었다. 더불어 현장취재팀이 우도에서 만난 노부부와 많은 얘기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얼굴에서 많은 것을 느끼게 했다. 바다와 함께 70평생을 한 이들은 어느덧 바다와 닮아있었다. 그네들의 삶이 과거로 잊혀지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편집자주>

겨울이 찾아오면 한번쯤 겨울 바다가 그립다. 낭만적이기도 하고 멋스럽기도 한 것이 겨울바다를 보고 왔다는 친구들의 말은 그냥 지나치기는 어렵다. 가벼운 가방 하나들고 무작정 동해발 기차를 탄다던지, 연인은 두손잡고 정동진으로 장거리 여행을 시작한다.
해질녘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 한 장 남기고 복잡한 머릿속을 비우고 올 량이다. 수많은 스케줄 표 가운데 잡힌 ‘겨울 바다 여행’은 조금은 지친 일상을 벗어나게 해주는 피로 회복제 역할을 한다. 겨울 바다 바람이 매섭고 차더라도 대수롭지 않다. 그저 도시 사람들은 아니 뭍사람들은 그렇게 삶의 멋을 바다에서 찾아본다.
에위다 못해 따갑다. 맞바람 때문에 갈매기는 그자리에 머물러 있고, 끼륵끼륵 그 소리 한번 구슬프다. 포구에 정박된 배들은 바다의 거센 기운에 일렁이기 시작한다. 오늘은 물질이 아니될지 싶다. 누가 봐도 저기 저 바다에 뛰어 드는 것은 자살 행위나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먹구름이 하늘을 감싸고, 바다 역시 짙은 색을 드리운다. 구멍 송송 난 현무암 돌덩어리에 파도는 더욱 세차게 부닥친다. 그렇게 이내들에게 바다는 호사스럽지 못한 삶의 터전이다.
제대로 분위기 잡고 멋부려 본적이 있던가. 바다에서 자신의 모습은 그저 몸매를 훤히 다 드러내는 시커먼 잠수복 입은 모습일 뿐이다. 처음에는 민망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해녀복을 잘 살펴보면 윗도리에 기다란 끈이 달려 있어, 그것을 다리 사이로 한번 감는다. 짠물에 노출돼 있는 여자들을 위한 것이다. 버버리 코트에 깃을 세우고 천천히 걸어보는 것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타이트한 바지 입고 오리발에, 물안경이 전부다. 거기에 장신구라면 물질 도중 숨을 쉬기 위해 띄우는 테왁과 잡은 해산물을 넣어두는 망사리 그리고 비창 아니겠는가.
햇빛 쏟아지는 날은 아니지만, 오늘은 여름날 같다. 물질이 순조롭다는 ‘한조금날’이다. 마을사람들은 간만의 차가 비교적 심한 ‘너물’에서부터 ‘열물’까지를 ‘웨살’이라고 하고, ‘열한물’에서부터 ‘세물’까지를 ‘조금’이라고 한다. 열닷새째인 한조금 날의 물살은 적당했고 하늘은 청명했다. 산호빛 물 속에서 따낸 미역냄새가 그립고, 바다사람들을 만나면 그 냄새가 고스란히 전해질 것같다. 물질 하는 해녀. 그들의 바닷속 삶이 혹여 동남아시아 바다에서 스킨스쿠버나 스노클링을 멋지게 해내는 광고화면이 아님을 왜진작에 알지 못했을까. 바다는 치열한 삶의 현장이다. 배우지 못하고, 먹을 것 없었을 때, 선택의 여지 없이 해온 일이기에 자식들에게는 절대로 대물림 하기를 원치 않는다. 그저 하나라도 더 따올려야 더 좋은입성 사주고 가르칠 수 있다. 그래서 때로는 뭍사람들의 호기심이 가슴에 서운함을 남기기도 한다.

제주도 우도 서광리 해녀. “무사왔수꽈(어떻게 왔습니까)”라는 말 한마디뿐이다. 숨비소리 내며 물질하는 그네들의 삶의 모습이 신기하게만 비춰져, 기자가 경솔하게 카메라를 들이대던 참이었다. 서운함을 드러내는 표정이 역력했다. 서운함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이미 그정도쯤은 숱한 언론들의 카메라 세례에 면역이 됐는지도 모른다. 다만, 왜 내가 6천 여명의 해녀 대표가 되어야 하는가 라는 점이다. 달리 특별할 것도 없는데 말이다. 그저 살아가는 것 뿐인데. 제주도에는 모두 5700명의 현역 해녀와 2명의 해남이 있다. 이미 퇴역한 해녀까지 꼽자면 무려 1만500여명이나 된다. 이들은 물질로 벌어 먹고, 아이 학교 보내고, 손주 과자값하는 것이다.
고무잠수복으로 갈아입기 전에 그녀는 진통제가루약이라는 ‘뇌선’을 삼키기 시작했다. 물밑 수압으로 인한 만성 두통과 고혈압은 해녀들의 상습적인 약물 남용을 불가피하게 만든다. 그동안 제주도가 수없이 잠수질병을 산재보험법상 재해보상 질병으로 지정해줄 것을 노동부에 건의했지만 노동부는 해녀는 자영업자이기에 산재보험법의 적용을 받기 곤란하다는 대답만 되풀이 했다. 그러나 사뭇 비장한 눈빛으로 ‘뇌선’을 먹는 해녀의 모습을 본 사람이라면 생각을 고쳐봄직 하다.
오늘은 그리 멀리 나가지 않을 생각인가 보다. 그물 손질 하는 두 노인네 옆에서 물질을 한다. 조그만 고깃배들이 드나드는 포구에 몇 척의 고깃배들이 닻을 내리고 있었다. 평생을 바닷바람에 살아온 두 노인이 그물에 걸린 찌꺼기들을 골라내며 호흡을 맞추고 있다.정정해보이는 두 분은 이제 고희를 넘기고 산수를 바라보고 있다. 둘 사이는 친구이고, 이웃사촌이고, 반세기를 함께 배를 탄 인생의 동반자다. 백상어(73) 할아버지가 그녀에게 오라 손짓 한다. 아랑곳 하지 않고 바닷물로 힘차게 들어가는 해녀를 한참 기다려야 했다.
“우리 마누라여. 한 두시간만 기다리면 나올것이야. 기자양반들이 많이 오니까 부끄럽고 싫은가봐. 저번에 한번은 6시 내고향서 왔었는데, 그때도 다 촬영해갔지. 그런데도 싫어하더라고. 한두시간 후에 저쪽에서 기다리면 얘기 할 수 있을 것이야. 저사람이 임신했을 때도 물질을 했는데, 이곳 생활이 다 그래. 나중에 한 번 물어봐.”
기자의 부탁을 가장의 권위로 해결해주고 나서는 자연스레 뭍에 사는 자식들의 자랑으로 이어졌다. 손녀같은 학생기자에게도 하실 말씀이 많으신지 부인을 기다리는 내내 말을 이어갔다.
15세 가량부터 익히기 시작해 물질을 해온 해녀들은 능숙한 솜씨로 아주 따뜻한 자궁으로 들어가듯 바닷속을 들어갔다 나오곤 했다. 점심도 굶고 오후 3~4시까지 15m 바닷속에 있는 그녀들. 고장풀도 뜯고, 소라, 전복도 따낸다. 해삼이나 가끔 큰 문어도 잡아 올린다. 1분간 숨을 멈추고 잠수했다가 물위로 올라와 테왁을 끌어안고 숨을 고른다. 모두 바닷속으로 들어가고 그물 고르는 지아비와 갈매기만 남은 배 위에는 ‘순진’ ‘양순’, ‘지선’ 등의 해녀이름이 적힌 테왁들이 대신해서 동행하고 있다.
두어시간쯤 기다려 해가 석양을 준비할 때쯤, 해녀들은 약속이나 한듯이 하나둘 물 밖으로 나왔다. 기다리는 해녀분은 좀처럼 나오질 않는다. 테왁을 늘여놓은 포구 근처에 다른 해녀들이 모였다. 바다밑에서 따올린 해삼, 전복, 멍게 등을 망사리에 옮겨담고 얼마나 잡았는지 세고 있는 중이다.
어촌계장이 그날치의 무게를 기록하고 있다.
취재팀은 그 자리서 싱싱한 자연산 해삼을 맛볼 요량으로, 갓 잡아 올린 것들을 사서 어촌 계장네로 향했다. 벌건 초고추장에 꿈틀거리는 해삼을 싹둑 잘라 입안에 턱하니 넣는 기분을 어찌 말로 설명할까. 소주 한 잔도 들이켰다. 힘겹게 취재 승낙을 받아내고, 제주 바람을 이겨낸 맛에 사르르 녹아든다.
뭍사람들에게 해삼을 썰어주고, 문어를 살짝 데쳐준 인심좋은 해녀는 그제서야 목욕을 하고 오겠다 했다. 짠물이 몸안에 그대로 스며든 탓이었다. 따로 인터뷰를 하지 않아도, 기다리는 동안 지켜본 그네들의 모습에서 고스란히 그들의 삶을 느낄 수 있었다.
제주도의 인심이 그리 넉넉하다는 말은 아직 잘 못들어봤다. 그들의 바다와 바람과 맞선 처절한 생활력과 뭍사람들을 의식하는 교육열이 다부지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물질 하는 해녀들은 자기 자신에게 엄하고 동료에게 관대하며, 자연의 힘 앞에서 순응 할 줄 아는 모습을 하고 있다.
고기잡이 배가 다 잡아가고, 오래지 않아 해녀가 사라질 지도 모른다. 그때가 되면 그들의 강한 태양 같은 얼굴이 많이 그리워 질 것같다.
노부부는 한참이 돼서야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들의 뒷모습에서 함께 살아온 50년 만큼 해온 물질과 그물질의 연륜이 묻어났다.
[길지혜 기자] tameyou@dankook.ac.kr
<길지혜 기자>  tameyou@dankoo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