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곤의 美평新평 34

모리 마리코(森万里子)의 <정토>
(淨土: Pure Land. 1997∼98)



1967년생인 모리 마리코는 동경의 전문학교에서 의상학과를 나온 모델이었다. 그는 모델활동을 통해 모은 돈으로 미술을 공부하기 위해 런던으로 유학을 떠난 후, 90년대 후반에 베니스와 리용의 비엔날레에서 주목을 모으고, 퐁피두센터에서의 개인전을 여는 등, 30세 전후에 이미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이 사진은 디지털 기법으로 합성된 작품 <정토>의 일부분이며, 여기에 보이는 ‘서방정토’위에 떠 있는 관음보살(?)은 바로 작가 자신이다. 이렇듯 그의 작품에는 거의 예외 없이 자신이 주인공으로 분장해서 등장한다. (yahoo.com의 이미지검색창에 ‘mori mariko’로 검색하면 거의 모든 작품을 볼 수 있다)
그는 대기업의 TV광고의 일부라고 착각할 만큼, 어떤 때는 ‘SF영화의 우주인’ 또는 외계인처럼 생긴 무녀(巫女)로, 또 어떤 때는 대중매체 안에서 스타로 만들어진 소녀, 열반(涅槃)의 경지에 빠진 관음보살, 혹은 일본의 고전(예를 들면 겐지모노가타리: 源氏物語)의 주인공 같은 모습으로 변신해서 우리 앞에 나타난다. 어떻게 보면 그는 거리낌 없이, 일종의 ‘관광사진’을 남기듯이, 혹은 자신의 전직이었던 패션모델처럼 스스로를 변신시키며, 카메라의 앵글, 혹은 합성된 디지털 사진에서만 가능한 ‘덧없는‘ 리얼리티를 연이어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철없는 코스튬플레이(costume play: 줄여서 ’코스플레‘라고 한다) 소녀’로 보는 일부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또 디지털 영상 테크놀러지를 사용하는데 조금의 거리낌도 없으며, 사진, 비디오, 영상 등 모든 미디어를 혼용하는 ‘인터미디어’(intermedia) 예술가이다.

그는 이러한 영상물들을 통하여 현대인, 혹은 동서고금의 인간들이 지니고 있었던 ‘이미지의 덧없음’을 아프리만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것은 오늘날의 이미지가 원래의 그 지지체(支持體)로부터 이탈하여, 디지털기술과 네트웍을 통하여 수없이 복제, 가공되는 사실, 그리고 현실세계보다 더 넓어진 가상의 공간에서 ‘부유’(浮遊)하는 리얼리티, 또 당연히 여기에 동반되는 ‘기호’나 ‘스타일’이 더 이상 현실이나 정신 혹은 본질을 대변하지 못하는 현대의 상황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에게는 과거의 전설시대로부터 전해져오던 순결과 정결함의 ‘성역’들도 예외는 아니다. ‘(서방)정토’, ’비교적 우주‘(秘敎的 宇宙: Esoteric Cosmos), ’덧없는 꿈(Empty Dream)’ 등, 그녀의 작품에서 사용하고 있는 제목들에서, 그것들이 하나의 꿈에 지나지 않음을 암시하고 있으며 거기에는 늘 작가 자신이 주체가 되어 있는 것이다. 아마도 그는 예전의 모델시절, 무대 위에서 조명을 받고 있었을 때, 이미 이와 같은 ‘이미지의 실상’을 깨닫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모든 것이 자신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미지의 우주,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넘는 꿈과 환상의 미로인 것이다.
[예술대학·예술학부·서양화전공] 교수
이원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