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선비이야기 - 미암일기(眉巖日記)를 중심으로
⑫ 배움에는 부끄러움이 없느니라



학기초에는 선생이나 학생 모두가 바쁘기 마련이다. 특히 새학기를 시작하는 학생들은 남다른 각오와 자세로 배움에 임할 것이다. 원래 배움에는 끝이 없는 법이다. 3월2일자 단대신문에 팔순 고령의 나이로 이학박사학위를 받은 김기일 선생의 소감이 실렸다. “공부하는데 나이가 있나요? 죽을 때까지 배우고 연구하고, 배운 것을 이웃에게 배풀겁니다.” 공부하는 우리들을 각성케 하는 말이다.
이와 관련된 선인들의 말씀도 잊지 말자. ‘공부는 죽은 뒤에야 끝나는 것’ 이라고 하였던 이이, 아들 송시열에게 ‘난리가 났다고 학문을 게을리 하지 말라’ 고 당부하였던 송갑조, 살이 썩는 줄도 모르고 공부하였던 중인 출신의 통역관 고시언, 이들이 전하는 배움에 대한 메시지를 가슴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배움이란 이처럼 중요한 것이다. ‘사람이 배우지 않으면 마치 캄캄한 밤길을 걷는 것과 같다’ 고 한 강태공의 말 또한 명심할 필요가 있다.
배움에는 부끄러움이 없는 것이다. 「중용」에 ‘널리 배우고 자세히 물으라’는 말이 있듯이, 모르면 나이가 자기보다 적거나 지위가 낮더라도 창피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물어라. 영원히 모르는 것보다는 아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은가? 체면이나 자존심, 창피함 때문에 묻지를 못하는 사람은 결코 알 수도 없을 뿐 아니라 발전도 있을 수 없다. 모르면 묻고 알면 가르쳐 주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조선시대 선비들도 그러하였다. 특히 선조(宣祖) 때의 대표적인 학자요, 당대 제일의 경연관이었던 유희춘은 이런 점에서 남달랐다. 「미암일기」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전한다.

“어록(語錄)에 의심난 곳을 뽑아 기록하여 원접사 박순공(朴淳公)에게 보내 조용한 틈을 타서 질문을 해 보게 했더니, 다행히 천사(天使)의 상세한 대답을 얻어 얼마나 다행인줄 모르겠다.”
“기대승이 말하기를 ‘선생의 지시로 인해 몰랐던 호씨(胡氏)의 인자불위(仁者不爲)의 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였다.”
“소대(召對)를 한 뒤에 교리 이이가 「근사록」을 가지고 와서 의심나고 어려운 곳을 묻더니, 저녁 강의를 할 적에 나의 말을 많이 사용하 고, 또 소대할 때에 경연청에서나 주상의 앞에 나갔을 때에도 내 말을 많이 따랐다.”
“전일에 어록자의(語錄字義)를 승지 김계가 고치자고 말한데 대해 내가 그 중 옳은 말은 따르고, 잘못된 말은 고쳐 정서해서 저작(著作) 을 시켜 승정원에 바쳤다.”
“내가 말씀드리기를 ‘신이 지난 해 11월 초닷새에 야대(夜對)를 할 때, 「대학」에 ‘차위수신재정기심(此謂修身在正其心)’의 한 대목을 강 의하면서 풀이하기를 ‘몸 닦음이 그 마음 바름에 있나니라’ 했던 바, 주상께서 풀이하시기를 ‘그 마음이 바름에 있음이니라’ 하셨는데, 신이 그 때에는 분간을 하지 못했사오나 물러나와 생각을 해보니 신의 풀이는 소활하고 주상께서 하신 풀이는 정확하셨습니다’ 하였다.”
“전한 신응시가 편지로 알려오기를 ‘어제 낮 강의에 주상께서 묻기를 송인(宋人)이 어째서 태조(太祖)를 예조(藝祖)라고 칭하는고? 하셨 는데, 강관(講官)과 좌우에서 모두 대답을 못하였습니다’ 하며, 나에게 묻기를 ‘이것은 어떤 연고입니까?’ 하였다. 내가 답하기를 ‘예조는 순전(舜典) 귀격우예조(歸格于藝祖 : 돌아가 예조의 신<神>에 아뢰었다)라는 글에서 나왔습니다. 송인(宋人)이 생각하기를 역대 창업한 임금을 의례히 태조라고 하므로 특별히 태조를 예조라고 칭하여 높이고 색다르게 한 것입니다’ 하였다.”
“생원 강위룡이 정주서(程朱書)를 안고 와서 의심나는 곳을 질문하므로 내가 물음에 따라 대답해 주었다. 다만, 소자서(邵子書)에서 한두 곳을 대답하지 못한 것이 한스럽다.”

유희춘은 학문에 남다른 열정과 진지한 자세를 가지고 있었다. 특히 그는 의심스럽거나 모르는 부분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았으며, 또 다른 사람이 질문을 하면 성실히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자신이 모르는 부분에 대해서는 솔직히 인정하는 한편 이를 알고자 하였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저술이라도 잘못된 것은 즉시 이를 수정하고 보완하기를 꺼리지 않았다. 이처럼 유희춘의 학문적 자세는 독실하고 진지하며 열의가 있었을 뿐 아니라 겸손하였으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데도 솔직하였다. 그러므로 이러한 학문 자세는 타학자들이나 관리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모르면 묻고 알면 가르쳐 주었다. 특히 모르는 것을 묻고 배우는 것에 대하여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이들도 이러했는데 학생들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모르면 선생님께 확실하게 알 때까지 질문하라. 이를 싫어하는 선생은 아마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더구나 부모님이 피땀 흘려 마련해 주신 등록금을 생각해 보라. 그런데도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고, 또 배우는 것을 부끄러워 한다면 말이 되겠는가?
송재용<동양학연구소 연구실장>
송재용  <동양학연구소 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