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언(寓言) 읽기의 즐거움-⑫ 구부러진 나무


조선 중기 우리의 한문학사에는 네 분의 훌륭한 문장가가 있었다. 흔히 월상계택(月象谿澤)이라 일컫는 월사 이정구(月沙 李廷龜), 상촌 신흠(象村 申欽,) 계곡 장유(谿谷 張維, 1587~1638), 택당 이식(澤堂 李植)이 그들이다. 인조반종 후 문형(文衡)을 맡았던 장유는 고문대책(高文大策)을 많이 지었으며, 청렴한 성품으로도 이름이 높았다. 다음은 그의 「계곡집」에 실려 있는 ‘곡목설(曲木說)’이다.

이웃에 장씨(張氏) 성을 가진 사람이 산다. 그가 집을 짓기 위하여 나무를 베려고 산에 갔는데, 우거진 숲 속의 나무들을 다 둘러보아도 대부분 꼬부라지고 뒤틀려서 쓸만한 것이 없었다. 그러다 산꼭대기에서 한 그루의 나무를 발견하였는데, 정면에서 바라보나 좌우에서 바라보나 분명히 곧았다. 쓸만한 재목이다 싶어 도끼를 들고 다가가 뒤쪽에서 바라보니, 형편없이 굽은 나무였다. 이에 도끼를 버리고 탄식하였다.
“아 재목으로 쓸 나무는 보면 쉽게 드러나고, 가름하기도 쉬운 법인데, 이 나무는 내가 3번이나 바라보았으면서도 재목감이 아니었음을 몰랐다. 그러니 겉으로 후덕해 보이고 인정 깊은 사람일 경우 어떻게 그 본심을 알 수 있겠는가. 말을 들어보면 그럴듯하고 얼굴을 보면 선량해 보이고, 세세한 행동까지도 신중히 하니 우선은 군자라고 아니할 수 없다. 하지만 막상 큰 일을 당하거나 중대한 일에 임하게 되면 본색이 드러나고 만다. 국가가 패망하는 원인도 따지고 보면 언제나 이러한 사람으로부터 비롯된다. 또한 이 나무는 짐승들에게 밟히거나 도끼에 찍힘도 없이 오로지 이슬 덕택에 날로 무성하게 자랐으니, 마땅히 굽은 데 없이 곧아야 할 터인데 꼬부라지고 뒤틀려서 이다지도 쓸모없는 재목이 되고 말았구나. 항차 요즘 같은 세상살이에 있어서랴.
물욕이 진실을 어지럽히고 이해가 판단력을 흐리게 하여, 천성을 굽히고 당초에 먹은 마음에서 떠나는 자가 헤아릴 수 없으니, 속이는 자가 많고 정직한 자가 적은 것은 괴이한 일이 아니다.”

이 생각을 내게 전하기에 나는 이렇게 말해주었다.
“그대는 정말 잘 보았소. 그러나 내게도 할 말이 있소. 「서경(書經)」 「홍범(洪範)」편에 오행(五行)을 논하면서 나무를 곡(曲)과 직(直)으로 설명하였소이다. 그렇다면 나무가 굽은 것은 재목감은 안 될지 몰라도 나무의 천성으로 보면 당연한 것이라오. 공자님께서는 ‘사람은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게 살아가는 것은 요행히 죽음만 면해 가는 것이다’ 하였소. 그렇다면 정직하지 못한 자가 죽음을 모면하고 살아가는 것 또한 요행일 것이오.
내 보건대, 이 세상이라는 것이 굽은 나무는 아무리 서투른 목수라도 가져다 쓰지 않지만, 정직하지 못한 사람은 잘 다스려지는 세상에서도 버림받지 않고 살아간다오. 큰 집의 구조를 한번 살펴보시오. 들보와 기둥, 서까래와 각목이 수없이 얽혀서 구조를 이루고 있지만 굽은 재목은 볼 수 없을 것이오. 하지만 조정 대신들을 보시오. 공(公)과 경(卿), 대부(大夫), 사(士)라고 하는 이들이 예복을 갖춰 입고 조정에 드나들기는 하는데, 그 중 정직한 도리를 간직하고 있는 이는 볼 수 없을 것이오. 이걸 보면 굽은 나무는 항상 불행을 겪고, 정직하지 않은 사람이 항상 행운을 잡는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않소. 옛말에 ‘곧기가 현과 같은 자는 길거리에서 죽어가고 굽기가 갈고리 같은 자는 공후(公侯)에 봉해진다’ 하였으니, 이건 정직하지 못한 사람이 굽은 나무보다 많다는 걸 말하는 것이라오.”
굽은 나무는 가져다 쓰지 않으면서 정직하지 못한 사람을 내치지 않는 현실, 물욕과 이해로 말미암아 진실이 흐려지는 세상, 그래서 속이는 사람이 많고 정직한 사람이 적은 세태, 이에 대한 비판을 담은 우언이다. 그러한 현실과 세태가 꼭 장유 당대의 문제로 끝나고 말았다면 오죽이나 좋았을까. 선한 일을 하면 하늘이 복을 주고 악한 일을 하면 하늘이 벌을 내린다고 하였으며, 하늘은 넓고도 넓어서 이 세상 모든 소리를 다 듣고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다 보고 있다고 하건만, 불행히도 인간 사회의 부정과 모순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하늘은 진정 하늘을 원망하는 소리를 듣지 못한단 말인가.
윤승준<동양학연구소 연구교수>
윤승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