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욱의 현장경제24 헤지(hedge)와 환율

주시하라! 환율의 변동


얼마 전 국내 언론에 우리나라의 외환보유고 중 일부를 달러가 아닌 다른 나라의 돈으로 보유한 결과 가만히 않아서 수십 억을 벌었다고 보도된 적이 있다. 솔직히 말해서 이것은 돈을 번 것이 아니다. 달러 자산의 일부를 헤지(hedge)한 결과 손실을 예방한 것이다. 우리 나라의 외환 보유고가 1,500억 달러라고 하자. 몇 년 동안 달러 가치가 하락하고 다른 나라의 돈의 가치는 올라가는 추세가 이어졌는데, 대충 유로화는 30% 정도 상승했고, 엔화는 17% 정도 상승했다. 우리나라의 원화는 12% 정도 상승했다. 미국 외에 다른 나라 돈의 가치가 올라가면 달러 가치는 상대적으로 내려가는 것이고, 각각의 경우 달러 가치의 하락율을 계산하면 달러는 유로화에 대해서는 23%, 엔화에 대해서는 15%, 그리고 원화에 대해서는 11%가 하락한 것이다. 이것은 어느 미국 회사가 과거 100달러 주고 사오던 프랑스의 전자 부품을 지금부터는 130달러를 지불해야 사올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같은 부품을 일본에서 사오면 117달러를 내야하고, 한국에서 사오면 112달러를 주면 된다. 그러면 그 미국 회사는 어느 나라에서 부품을 수입하는 것이 가장 이득이 남을까? 만일 그 부픔을 미국 내에서 자체 생산한다면 예전처럼 100달러면 공급이 가능한데, 이것이 가장 남는 장사가 아닐까? 중국처럼 환율이 거의 변동하지 않은 나라의 경우 100달러 미만으로 부품을 공급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얼마 전까지 미국이 중국을 상대로 환율하락 압력을 가한 것이 이해가 갈 것이다.
우리나라가 보유하고 있는 1,500억 달러에 달하는 외화를 모두 달러 자산(달러 현금, 미국 정부가 발행하는 채권 등을 말한다)으로만 보유하고 있다면 가만히 앉아서 손해를 보는 꼴이 된다. 달러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떨어져서 같은 물건을 살 때 더 많은 달러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수출 대금으로 받은 현금을 모두 원화로 바꿔서 보관하면 달러 가치의 하락에 따른 손실은 방지 할 수 있지만 다른 위험 때문에 그럴 처지가 아니다. 언제 또 다시 달러 가치와 상관없이 원화의 가치가 폭락할 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럴 때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외화자산을 여러 나라의 통화로 분산하여 보유함으로써 자산가치 전체에서 발생하는 가격 위험을 상쇄하는 것이다. 1,500억 달러에 달하는 외화의 절반을 유로화 자산으로 바꾸었다고 가정하자. 나머지 절반의 달러 자산의 가치가 하락한 만큼 유로 자산의 가치가 상승하기 때문에 전체적인 자산가치는 변동이 없다. 다만, 가치하락으로부터 자산을 방어한 것이다. 이렇게 자산의 일부를 가치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다른 자산으로 바꾸어 전체적인 가치를 보전하는 투자전략을 헤지전략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달러 가치의 하락은 쳐다 보지도 않고, 유로화가 30% 정도 오른 것만을 계산하여 750억달러에 달하는 유로 자산의 가치가 975억 달러가 되고 결과적으로 225억 달러를 벌었다고 주장하면 좀 썰렁해진다. 투자의 기본을 이해하지 못한 결과라고 생각된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채택하고 있는 변동환율제도하에서는 외환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따라서 환율이 결정된다. 그러나 중국, 말레이시아 등 아직 자본주의가 성숙하지 못한 나라에서는 고정환율제도를 사용하거나 정부가 환율에 개입하여 자국의 산업과 경제를 조정하는 수단으로 이용한다. 우리나라도 과거에는 변동환율제도였으나 1990년 3월부터 일정한 변동제한폭을 가진 시장평균환율제도로 변하였고, 1997년 12월 이후에는 변동제한폭이 없는 완전한 자유변동환율제도로 제도를 변경하였다. 그러나 자유변동환율제도하에서도 투기세력에 의한 농간을 막기 위해서 중앙은행이 외환시장에 개입하기도 한다. 환율은 기본적으로 우리나라와 다른 나라의 돈이 교환되는 비율이지만, 변동의 결과가 대단히 복잡하고 일반 국민의 생활과 기업활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정부의 경제정책 담당자가 매일매일 이를 주시한다. 또한 환율의 변동에 따라 기업과 금융기관의 외화자산 및 부채의 가치가 변동하므로 기업의 재무담당자에게도 중요한 관심거리가 된다. 따라서 환율의 변동에 따른 대응을 적절하게 하는 것이 투자활동을 넘어 국가와 기업, 나아가서는 개인에게도 중요해지고 있다.
<증권거래소 시장감시부 차장·87 법학 졸>choica@kse.or.kr
최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