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와구치 요이치로(河口洋一朗)의 <성장모델> (Growth Model. 1975~)


이원곤의 美평新평 35

이 세상의 복잡하고 다양한 형상들을 설명하거나 표현하고자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유클리트 기하학에서는 그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20세기 초반에 화가 세잔느는 이처럼 복잡한 자연의 형태를 구(球), 원뿔, 원통형으로 환원(還元)시켰다. 그는 자연을 단순화시켜서 간단명료한 명제로 설명하려했고, 어떻게 보면 그것이 바로 모더니즘정신이었다.
그러나 수학자 B. 만델브로(Benoit Mandelbrot: 1924~ )는 ‘구름은 구(球)가 아니고, 산은 원추(圓錐)가 아니며, 해안선은 원호(圓弧)가 아니다’고 말했다. 말하자면 세잔느와 같은 방식으로는 복잡한 자연을 설명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만델브로는 해안선이나 산이나 구름 같은 형상이라도 자주 일부분을 확대해도 전체모양과 (그 복잡함이) 다르지 않은, 불변성을 지니고 있음을 발견하고, 자연계에서 볼 수 있는 많은 복잡한 형상을 기술할 방법과 모델을 부여하고자 했다. 또 이처럼 통계적인 자기상사성(自己相似性: self-similarity)이 자연계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자연의 복잡한 형태, 생명체 혹은 자연물의 형태에 내재된 수학적 법칙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유클리트 기하학보다 훨씬 방대하고 천문학적 단위의 연산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야말로 ‘혁명적인 계산기’인 컴퓨터가 등장하여 이러한 계산이 가능해 졌다.

1975년이래 이 세상에 나온 B. 만델브로의 프랙털기하학(fractal geometry)의 ‘프랙털‘은 ‘부수어져서 불규칙적으로 조각난 상태, 단편’이라는 의미의 라틴어 ‘fractus''''에서 나온 말인데, 그에 의하면, 프랙털은 자기상사성을 지닌 불규칙적인 기하학적 형상’이다. 또 ‘자기상사성’이란 ‘어떤 형상에 회전이동, 대칭이동, 확대/축소 조작한 형상이 다른 곳에서도 나타난다는 현상‘으로 풀이된다. 즉 ‘프랙털‘이란 외관상으로 무질서하게 보이는 혼돈 중에 내재된 질서를 규명하기 위한 기하학 및 그 형상을 지칭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 사진은 일본의 예술가 카와구치(1952~)가 1975년에 컴퓨터로 그린 형상이다. 어촌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그는 조개나 소라껍질의 형상이 이와 비슷한 성장원리를 지니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미술대학을 졸업할 즈음, 당시에 막 보급되기 시작했던 퍼스컴으로 이 형상을 그려내었고, 이 알고리즘에 그가 붙인 이름은 ‘성장모델''''(Growth Model)이었다. 이후 그의 작업은 SIGGRAPH를 통하여 전세계의 CG예술계에 엄청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발상이 수학과 미술에서, 서로의 공통점이나 연결고리를 찾아볼 수 없는 두 사람에 의해 동시에 나왔다는 사실은 놀랍지만, 우연의 일치만은 아니었다. 그야말로 미술과 과학이 공명(共鳴)한 이 순간에 두 사람은 모두 새로운 뇌(腦), 즉 컴퓨터를 사용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된다.
<예술대학·예술학부·서양화전공> 교수
이원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