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경제가 말이 아니다. 언론에서는 지금이 IMF 때보다 더 나쁘다고 한다. 실제 우리가 피부로 느끼는 것도 그렇다. IMF 위기를 넘긴 것이 불과 몇 년 전인데,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모르겠다. 특히 청년 실업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몇몇 일간지에서 조사한 것을 보면, 금년도 대졸취업률이 50%정도라고 하니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들은 우리의 미래를 짊어지고 갈 역군들인데 상황이 이러하니 안타깝기만 하다. 그렇다고 정부에서 내놓은 대책을 보면 별로 실효성이 있는 것 같지도 않다. 근본적인 해결책 제시가 아니라 미봉책에 불과하다. 이는 정부의 안일한 상황인식과 대처 때문이다. 그러니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항상 ‘사후약방문격’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뒷북치는 것도 문제지만, 때가 늦었다고 하더라도 전문가나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여 이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해결방안을 마련해야 할텐데 그렇게 하였을까? 도대체 언제까지 이럴 것인가?
필자는 용무가 있어 가끔 서울역 부근을 간다. 그때마다 눈에 띄는 것은 노숙자들이다. 멀쩡한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노숙자가 된 것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얼마전 아는 사람에게 들은 얘기이다. 그 사람은 지방 출장을 가기 위해 서울역에 갔다고 한다. 거기서 한 노숙자와 우연히 마주치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친구였다고 한다. 소위 한때 잘나가던 친구였던지라 너무나 놀랐다고 한다. 노숙자 친구가 도망가는 바람에 뒤좆아갔지만 끝내 얘기를 나눌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날 밤 그 사람은 너무나 놀랍고 서글프고 미안해서 한없이 울었다고 한다. 이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누구나 이처럼 될지 모르는 세상이다. 본인 탓도 있겠지만 경제가 어렵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그런데도 정계 관계 재계 등 각계가 제각각이니 걱정된다. 특히 정치판을 보면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 여야가 합심해도 시원치 않을 판인데 밥그릇 싸움이나 하고 있으니, 이들은 과연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자들인가? 실업자들은 취업이 안돼 난리인데, 국회의원이라는 자들은 경제문제는 등한시한 채 서로 잘났다고 싸움질만 하고 있으니 이들을 어찌 해야 할지…

3월11일자 중앙일보 기사 가운데 ‘외환위기 이후 아시아 각국이 동반호황을 누리고 있는데 유독 우리나라만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우리나라만 ‘낙오자 신세’로 전락할 지경에 처해 있다. 이처럼 우리 경제가 매우 어려운 실정일 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생활도 예전보다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이와 관련된 내용이 {미암일기}에 있어 소개한다.
“들으니 ‘국가의 저장 양곡이 기강의 해이로 인해 권간(權奸)이 뇌물 로 받고, 창고지기가 쥐새끼 마냥 무수히 도적질을 했다’고 한다. 또 ‘임술년 이후로 해마다 국상(國喪)이 있어 사용하는 바람에 이제 10 만석도 못되어 지극히 한스럽다’고 한다.”
“대사헌 이문형이 계하기를 ‘금년의 흉황(凶荒)은 전고에 없던 바로 서 8도의 길에서 굶어죽은 시체가 도처에 보이며…한양 근처에도 굶 어죽은 시체와 유랑민이 많은데, 8도가 모두 장계가 없고 조정에서도 전혀 생각을 하지 않아 매우 태평무사한 때인 것처럼 지내고 있습니 다. 지금 사람이 모두 죽어가게 생긴 판에 마땅히 대신들과 논의하여 적당한 조치를 취해야 할 줄로 압니다’ 하였다.…정종영이 아뢰기를 ‘8도 중에서 경상·충청·경기도가 가장 심하니 구호대책을 늦출 수 가없습니다. 특별히 어사를 보내 촌락들을 출입하여 구황(救荒)하는 형태를 살피고 간특한 무리를 두루 적발하되 그 중에 태만하고 지시 를 봉행하지 않는 수령들은 듣는대로 죄를 다스려야 합니다.…길에 굶어죽은 시체가 연달아 있고, 굶어죽은 사람이 도처에 있는데도 각 도의 감사들이 모두 장계를 올리지 않으니 지극히 해괴한 일입니다. 이는 반드시 수령들이 구호하기를 꺼려 숨기고 알리지 않아 그 참상 이 더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였다.”
“양사가 합계하기를 ‘금년에는 한발이 심하여 파종의 시기를 잃고 있으니 우리 백성들이 모조리 죽을 지경에 이르렀고, 국가의 형세도 조석(朝夕)을 보장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였다.”
국가비축미 고갈실태의 이유와 한발 · 흉년 등으로 인해 기아에 허덕이는 백성들의 참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백성들을 구호하지 않고 은폐에 급급한 목민관들의 행태와 조정의 구황책(救荒策)의 실상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유희춘은 국가 경제의 실상과 백성들의 비참한 생활상을 목도하고 이를 기록으로 남겼다.
아직도 우리는 늦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대통령을 비롯하여 정치인 · 기업가 · 공무원, 그리고 우리 국민 모두가 합심하여 슬기롭게 이 난국을 헤쳐나가야 한다. 그리하여 다시 한번 경제를 되살리자. 제발 다시는 국운상승의 기회를 놓치지 말자.
송재용(동양학연구소 연구실장)
송재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