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드라마란 과연 어떠한 것인가? 이러한 질문을 던지고 그 해답을 구한다는 자체가 어떻게 보면 어리석은 일인지 모른다. 드라마란 그 주제나 소재를 어디에서 얻든지 간에, 그 형식과 기법이 무엇이든지 간에 결국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삶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인간에 대한 순수한 믿음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이미 드라마로서의 의미를 잃어버린 것이라는 점을 뜻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삶과 유리된 드라마란 단지 공허한 거짓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우리는 자꾸 망각하고, 재벌 2세를 둘러싼 삼각관계, 현대판 신데렐라, 이복남매의 사랑, 뮤직비디오 같은 화면 등 화려하고 자극적인 겉포장에 또 한번 우리는 눈을 빼앗긴다.
단순히 눈을 뺏는 드라마는 우리에게 순간적인 즐거움을 주고 현실에서 감히 이루기 힘든 헛된 꿈을 꾸게 하지만 2004년의 시작과 함께 KBS에서 방영된 「꽃보다 아름다워」는 가족의 사랑이라는 조금은 진부한 소재로 나의 눈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사로잡고 있다.
그냥 편하게 웃으며 보는 드라마가 아니다. 너무 우리 이야기 같아서 내 부모 내 형제 이야기 같아서 가끔은 부끄럽기도 하다. 이것이 방송 작가 노희경의 힘이라 느껴진다.
노희경 드라마가 지금껏 보여주었던 것은 한마디로 ‘불가능한 사랑’이었다. 「거짓말」에서의, 임신하지 못하는 여자와 성불구 남자의 사랑, 노년의 사랑, 기혼남과의 사랑으로부터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 제자와 교수의 사랑, 「바보같은 사랑」의 불륜,「고독」에서의 미혼모 직장 상사와 연하 부하 직원과의 사랑 등에 이르기까지 그녀가 보여준 사랑은 순탄치도, 마냥 행복하지 않은 모습들이다. 「꽃보다 아름다워」 역시 힘든 사랑의 대명사인 노희경 극본 드라마답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들로 가득하다. 딸을 둔 이혼녀이면서 연하의 미혼교수에게서 구혼을 받는 첫째 딸 미옥(배종옥 분), 오빠를 죽인 이혼남과 사랑에 빠지는 둘째 딸 미수(한고은 분), 그 막내아들 재수(김흥수 분)도 삼각관계에 놓여있다. 그리고 이 세 남매의 엄마인 영자(고두심 분) 역시 이혼도 해주지 않은 채 다른 여자와 또 다른 가정을 꾸린 남편을 아직도 사랑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작가가 이 드라마를 통해 보여주려는 것은 이 힘든 사랑의 여러 모습들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흩어지는 가족을 지키려는 힘없고 마냥 여리기만 어머니를 통해 진정한 가족의 의미와 그 속에서의 사랑을 보여주려 한다. 노희경의 사랑이라는 화두도 새로운 드라마로 거듭나면서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하는데 「화려한 시절」에서부터 보여지는 분위기는 그 전과는 사뭇 다르다. 주 등장인물들은 개인이 아닌 대가족으로 팽창되었고, 그와 함께 그가 돌파해야 할 인물간 관계들도 사랑보다는 가족으로 확대됐다. 결국 불가능한 사랑이라는 노희경의 주된 주제는 점차 가족 안으로 끌어들여 그 주제가 갖고 있는 의미를 더 크게 확대시키고 있는 것 같다.
오늘날 우리에게 가족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로 남아 있는지 모르지만 어찌 보면 작가는 「꽃보다 아름다워」라는 드라마 속 정상적이지 못한 가족의 모습을 통해서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우리에게 되살려준다. 가족이라는 큰 틀 속에서 우리가 느끼는 것들이 마냥 하찮고 흔한 것이라 여겨지기도 하지만 이 드라마를 보면 얼마나 소중하고 의미 있는 것인지 새삼 느끼곤 한다. 또한 우리의 어머니의 모습은 다른 대부분의 드라마에서처럼 극성스럽지도 않고 그렇다고 마냥 착하지도 않고 또한 마냥 화려하지도 않다. 「꽃보다 아름다워」에서의 영자와 같이 그냥 그런 별로 특별할 것 같지는 않지만 가슴 깊이 여러 가지를 묻어 놓고 살아가는 모습이 우리네 어머니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해본다.

멋지고 예쁜 젊은 배우들이 주인공으로 나오지도 않는다. 화려하지도 그렇다고 재밌지도 않고 드라마 내용 역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만큼 자극적이지도 않다, 근데 정말이지 이 드라마는 매력이 있다. 지금껏 노희경 드라마가 그러했듯이 잔잔함 가운데서 사람들 마음 속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배우들의 연기 역시 흠 잡을 데 없이 역에 고스란히 녹아 있고, 직설적이면서도 감성적인 특유의 대사들 역시 하나하나 마음을 파고든다.
사람들이 많이 보지 않아도 노희경의 드라마가 인정받는 이유는 여타 다른 드라마의 대중 지향적인 통속성에서 한 발치 물러나 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꽃보다 아름다워」는 무겁고 답답한 드라마일지도 모르고 마냥 유쾌하지도 않다. 하지만 다른 별나라(?)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모습을 담아낸 이 드라마가 지금의 이 힘을 잃지 않고 끝까지 꽃 냄새 보다 아름다운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드라마가 되길 바란다.
이상지
(대중문화예술대학원·공연예술학과·석사과정5)
이상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