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부끄러웠다. 국민의 한 사람이라는 것이 부끄러웠다. 11일 저녁 6시 조금 넘어(미국 L.A시간) 대한민국 국회 본회의장이 TV에 나왔다. 국회의장의 합법적인 의사 진행을 위해 그의 자리를 가로막고 있는 열린우리당 소속 국회의원들을 하나 하나 들어내기 시작한다. 무어라 울부짖으며 격렬하게 저항하지만, 합법적으로 끌려가고 있다.
진절머리나도록 지겨운 사람들, 모두 다 똑같은 놈들이라고 욕만 하던 사람들이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하는지 새삼 느끼게된 결정적인 모습이었다. 합법의 탈을 쓴 폭력과 욕설이 난무하는 그 부끄러운 곳에서, 국민의 대표 193명이 합법적인 투표로 대통령의 직무를 정지시켰다고 박수를 치며 환호하는 모습에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정치적 광기를 보았다. 군복을 입고 총칼든 사람들만 쿠데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맨 사람들도 쿠데타를 할 수 있다는 새로운 사실도 알았다. “나는 총을 들고 싶었다!”는 어느 시민의 반응을 인터넷 사이트에서 보았다. 그 심정을 이해할 수도 있겠다 싶다. 미국의 주요 신문과 CNN, NBC, ABC 등 방송에서도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 통과를 비중있게 다루면서 한국 정치에 대해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L.A타임스는 ‘사소한 정치적 다툼이 한 국가를 마비시키는 위기로 확대돼 한국 헌정사상 최초로 국회가 대통령을 탄핵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고 꼬집고 ‘문제의 발단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노무현 대통령의 총선 관련 발언이 부적절하다고 판정한 것이었지만 이는 탄핵을 요구하기엔 미미한 수준이었다’고 밝혔다.
미국에서는 지난 98년 1월 부터 시작된 백악관 인턴사원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부적절한 행위로 인한 빌 클린턴 대통령 탄핵 논란으로 99년 2월까지 1년여 동안 큰 홍역을 치뤘다. 미국 국회 하원에서 클린턴 탄핵안은 228표로 통과되었다. 과반수인 218표 보다 10표가 많았다. 공화당이 다수당이지만 클린턴이 소속된 민주당일부 의원도 찬성을 해 표를 보탰다. 당적과 관계없이 의원들이 스스로의 양심과 판단에 따라 표결에 참여한 것이다. 대통령 탄핵 여부를 헌법재판소에서 결정하는 한국과 달리 미국에서는 국회 상원에서 최종 결정을 한다. 상원의원의 표결에서는 찬성 45표 반대 55표로 부결되어 클린턴 대통령은 임기를 마칠 수 있었다. 당시 상원은 공화당 소속이 55명으로 다수당이고 민주당은 45명 이었다. 하원 표결과는 반대로 상원에서는 공화당 소속의원 일부가 반대표를 던진 것이다. 탄핵안이 부결된 뒤 공화당에선 계속 클린턴 대통령의 도덕성에 대해 문제 제기를 했다. 그러나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국민의 대표인 의원들이 결정한 상원의원 표결이 끝나는 즉시 법적인 문제에 대한 논란은 깨끗이 사라졌다. 대한민국 국회에서 합법적으로 통과된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안은 헌법재판소에서 최종 결정이 난다. 어떠한 결정이 나든 국민 모두가 깨끗하게 존중하는 모습을 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오는 4월 15일 국회의원을 뽑는 날, 투표권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나가 그 중요한 사람들을 내 손으로 꼭 뽑았으면 하는 바람은 더욱 간절하다. 부끄러운 모습을 보인 그 193명은 바로 우리 국민이 뽑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LA 미주한국일보 기자)
진천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