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어둠을 지난 신도 마을에 수탉의 울음보다 부지런한 기차소리가 아침을 열고 어느덧 촌로들은 소세를 마치고 문을 나선다. 역 앞 닥나무 아래는 이미 통근 기차를 타기위해, 또는 떠나는 이를 배웅하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지난 겨울 맹위를 떨쳤던 동장군이 물러난 마을에는 따스한 햇볕이 내리쬐며 고요한 아침이 시작되고 있다.
하루 딱 두 번 열차가 서는 이곳은 신거역이다. 무수히 많은 열차가 스쳐지나가지만 정차하는 열차는 아침과 저녁 통근기차 뿐이다. 때문에 이곳에는 도시와 같은 분주함도 없고 초조함도 찾아보기 어렵다. 단지 마을 노인들의 기다림이 존재할 뿐이다.
더러는 외지로 돈 벌러 떠난 이를, 또는 배움을 위해 떠난 자식을 기다리며, 추억하며 마을의 어른들은 늘 역전에 머무른다.
이제는 하루 여나무명이 기차를 타고 내리지만, 한 때는 이곳에도 많은 이들이 북적거렸다. 기차가 역을 통과할 때면 신이나 뛰어다니는 아이들과 새침한 여고생들, 그리고 다 자란 미나리며 딸기를 장에 내다 팔기 위해 모인 아낙들, 사람 냄새가 역을 메우던 때가 있었다.
특히 청도에서 5일장이 서는 날이면 마을 여기저기 생기가 피고, 아이들은 쫄래쫄래 어머니의 손을 잡고 나서며 신나했다. 아낙들은 오늘 장에 나가 이문을 좀 남겼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나누고, 무거운 짐을 챙겨 아침 일찍 기차를 탔다. 그리고 해질 무렵 다시 역에 모여 마을로 오는 기차에서 지친 몸을 쉬었다. 어느새 아이들 입에는 사탕하나 물려있고, 그날의 생필품을 마련한 이들은 함박웃음을 짓고 마을로 돌아온다. 그러면 신거역에는 부모를 기다리는 아이들이며 가족들이 나와 돌아오는 이를 반가이 맞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모래 바람과 정적만이 낡은 기찻길 위를 맴돈다.
20여 호도 채 되지 않는 마을에는 신거역의 낡은 표지판처럼 오랜 세월 마을을 지키며 머무른 노인들만이 남았다.
기다림을 담고 사는 이들처럼 이 간이역도 어딘지 마을과 닮은 듯 하다. 오랫동안 이곳을 외지와 연결해 주었던, 지금도 그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통근 열차는 통일호뿐이다. 무궁화호도 새마을호도 그저 스쳐 지나갈 뿐. 이곳은 어딘지 빠른 세상과는 단절되어 있다. 바쁨이 없는 이 마을에는 젊음의 열정은 없다. 기다림의 여유만이 존재할 뿐. 오늘도 마을의 노인들은 여전히 역전에 모여 옛일을 추억한다. 그리고 또다시 누군가를 기다린다. 스쳐지나가는 기차를 바라보며 바쁘게 사는 세상에 섞이지 않고 여유와 안식을 간직한다. 그러나 촌로의 미소 속에는 어딘지 모를 그리움이 베어있다. 그것은 옛 추억과 세월에 대한 그리움, 사람에 대한 그리움인 듯.
역전에 터를 잡고 살아 온지 수십 년. 이제 이들에게 기차소리도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포근한 신도 1리의 자연음에 동화된 기계음이 친숙한 생의 소리마냥 익숙하다. 저 소리와 함께 보고픈 이들이 이곳을 찾고, 누군가는 꿈을 위해 바깥세상으로 떠났을 것이다. 만남과 헤어짐이 있는 이곳에서 오늘도 통근기차는 어김없이 신거역에 멈춘다. 그리고 무수히 많은 기차들이 스쳐 지나간다. 다시 또 저 소리에 잠이 들고, 깨어날 것이다.
이제 이 봄이 지나면 통일호가 사라진다. 신도 1리 사람들을 외지와 연결해 주던 유일한 수단도 세월과 함께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열차가 없어지고 찾는 이가 없어도 신거역 역전 닥나무 아래는 늘 그렇듯이 마을 노인과 아낙들이 모여서 세상사는 이야기를 나눌 것이며 이들의 기다림도 계속될 것이다.
<이지희 기자>
edelwiess317@dankook.ac.kr
<이지희 기자>  edelwiess317@dankoo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