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성효과’와 확률게임

지지난 주 탄핵정국 이후 전국을 가장 떠들썩하게 했던 일이 있었다. 주한 미군이 한강 이남으로 이전하게 되면 용산 주변 지역은 쾌적한 공원을 가진 주거·업무지역으로 변신하게 될 것인데, 그 곳에 주상복합 아파트를 짓는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주한 미군이 한강 이남으로 이전하는 이유는 아랑곳하지 않고 우선 좋은 투자거리라는 생각을 먼저 한 듯하다. 더구나 사람들은 외환위기 이후 부동산 투기의 원인으로 지목되었던 분양권 전매(아파트를 다 짓기 전에 다른 사람에게 파는 것) 금지조치가 이번에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하였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였다. 앞으로는 아무리 좋은 지역의 아파트 좋은 층을 분양받아도 입주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수 억원에 해당하는 돈을 적어도 2년간 묻어 두어야 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르다 당첨만 되면 즉시 팔아서 수 억원의 이익을 챙길 수 있다. 기존에 하던 식으로 지역 주민에 대한 우선권도 없다. 전국에 있는 누구나 신청금 3천만원만 있으면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용산에 짓게될 주상복합 아파트는 몇 달 전부터 전국민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인 듯 보였다. 과열된 투기 분위기를 염려하여 한 차례 연기된 청약일자가 다가오면서 사람들은 그동안 속으로만 가지고 있었던 대박의 꿈을 털어 놓기 시작했다. 마침내 청약기간 중 사람들은 몰려들기 시작했다. 3천만원만 있으면 누구나 가능하기 때문에 온 가족이 동원된 경우도 있다고 한다.
수십 년의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의 부동산 투기는 보통 사람들의 가슴을 찢어 놓기에 충분하다. 누구나 다 알고 있듯이 불로소득이므로 규제되어야 한다든가, 공평과세 차원에서 재산세를 대폭 인상해야 한다든가, 아니면 주택거래허가 제도를 시행한다던가 하는 것들은 이젠 너무나 진부한 처방이 되어버린 것 같다. 자산가치의 상승, 특히 부동산 가치의 급격한 상승은 가난한 사람의 소득을 부자에게 이전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앞에서의 예처럼 3천만원 내고 수억을 버는 일이 다반사가 된다면 아무도 정당한 소득과 저축을 통해서 부를 축적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더욱 심화된 빈부의 격차가 이번 기회에 다시 한 번 늘어날 것 같은 착각마저 들 정도이다. 이번 청약열기의 특징 중 하나는 평범한 봉급생활자가 상당히 많이 참여했다는 것이다. 주상복합 아파트의 원조격인 강남의 타워팰리스의 경우 평범한 샐러리맨은 별로 신청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보통 사람들이 몰려드는 바람에 청약 기간중 수납업무를 맡은 은행이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되는 대박의 꿈에 전 국민이 흥분했던 이틀간이었다.
왜 사람들은 확률적으로 희박한 당첨 가능성에 목숨을 거는 것일까? 실제로 당첨될 확률은 수 백분의 일보다도 낮았다. 0.2%도 되지 않는 확률에 기대를 걸고 통장 하나를 개설하기 위하여 4시간 이상을 은행에서 기다리는 끈기는 무엇 때문인가? 이와 비슷한 경우는 다른 곳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로또의 경우가 비슷하다. 수 십억원의 꿈을 안고 매주마다, 심지어 운이 좋다는 지역까지 찾아가서 복권을 사는 것도 희박한 당첨 가능성에 목숨을 거는 일이다. 또 다른 경우는 증권시장에서 외가격 옵션을 매수하는 것이다. 외가격 옵션이 실제 돈이 될 확률은 거의 영에 가깝다. 그러나 사람들은 만일 주가가 상승하면 백배 이상으로 당첨될 가능성에만 집착하여 외가격 옵션을 매수한다. 더구나 사람들의 발길을 돌리지 못하게 하는 것이, 주상복합 아파트 또는 로또에 당첨되거나 옵션을 사서 대박을 터트린 경우가 나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언젠가 얘기했던 형성효과(Framing Effects)라는 것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20여 년 전 두명의 심리학자가 발표한 “선호의 심리”라는 논문은 좋은 일과 나쁜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에서 사람들의 반응이 비합리적으로 나타난다고 주장하였다. 즉, 사람들은 만일 좋은 일의 결과가 큰 경우 비록 나쁜 일이 일어날 확률이 훨씬 크더라도 오직 좋은 일에만 집착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 그래서 실제 나타난 결과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쁜 일을 맞게 되고 소수만이 좋은 결과를 얻게 된다는 것이 요지이다.
<증권거래소 시장감시부 차장·87 법학 졸>choica@kse.or.kr


서울 용산 주상복합아파트 청약 현장.
최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