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한 눈에’ 파노라마의 시대

老少莫論, 像由自身囚自身也
(노소막론하고, 상유자신은 수자신야라)


출전(出典)은 모르겠으나, 며칠 전에 불의의 사고로 타계한 공주대학교 영상학과 이종상교수의 홈페이지 초기화면에 떠 있는 글이다. “어린 아이나 어른 할 것 없이, 인간은 스스로 만들어낸 이미지의 포로가 된다”는 의미가 되겠다.
예를 들어, 플라톤의 ‘동굴의 우화(寓話)’는 인간이 스스로의 시각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말한다. 인간은 사물의 본질이 아닌 그림자 밖에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산업혁명 이후의 ‘시민’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의 진짜 모습을 보고자 했다. 18세기 말에서 19세기까지, ‘세계’를 집약한 것이나 다름없는 백과사전, 박물관이 생기고, 여행을 주제로 한 기행문과 소설이 유행하고, 사진이 발명되자 풍경사진집이 연이어 출판되었다. 해를 거듭할수록 ‘세계’에 대한 관심은 점점 높아졌고, 이러한 대중적 욕망은 현대에 이르기까지 흥행, 영상산업의 원동력이라고 할 만하다.

이 그림은 19세기 초에 유행했던 파노라마관의 단면도이다. 원래는 아일랜드의 화가 R. 바커(Robert Barker. 1739-1806)가 에딘버러에서 처음으로 제작(1788)한 후, 1800년에 파리의 몽마르트르 거리에 모습을 보이면서, 유럽과 미국의 주요도시로 확산된 것이다. ‘파노라마’는 그리스어로 ‘pan’=’all’, ‘horama’=’a view’ (from horan, to see))의 합성어인데, 바커가 처음으로 지은 이 ‘발명품’의 이름은 ‘세계를 한 눈에’(La Nature a coup d’Oeil)였다고 한다. 즉 이것은 ‘세계를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무대에 올려놓고자 하는 욕망의 발현이었으며,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시각문화의 전형이 되었다. 전시되는 장면은 주로 전투장면이나 이국(異國)의 장엄한 풍경들이었다. 이를 계기로 새로운 미디어에 의해 세계를 ‘스펙터클화’ 혹은 ‘시각화’하는 문화가 탄생하였고, 이 거대한 욕망이 폭주하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에 런던에서만 수백 개 이상의 파노라마관이 있었다고 하니, 그것은 현재의 영화관이나 다름없었던 셈이다.
‘세계를 부감하는 장치’였던 파노라마 이후로, 폭주하는 대중의 욕망을 밑거름으로 하는 시각미디어의 비약적인 발전이 거듭된 결과, 이윽고 현대인들은 예전에는 머리 속에서 상상력에 의해 조합할 수밖에 없었던 가상의 세계를 현실보다 더 리얼하게 그려내는 ‘디지털 이미지’라는 수단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파노라마든 디지털이미지이든, 알고 보면 ‘세계 그 자체’가 아니라, 결국 인간이 만들어낸 상(像)이며, 그것이 다시 우리를 속박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예술은 이러한 상태로부터의 자유를 원하는 사람들의 활동인 것 같다. 이종상교수의 명복을 빈다.
<예술대학·예술학부·서양화전공> 교수
이원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