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과학대학·어문학부·독일어전공>

소돔과 고모라에 철학이 있었다면


소돔과 고모라에 호텔이 있었다면…….
그건 아마 보나마나 요즘 우리나라 방방곡곡에 널려 있는 러브호텔과 같았을 것이다. 물론 야무진 일부 경제성 있는 사람들은 숲이나 자동차를 이용하여 돈 안 들이는 경우를 선택했겠지만, 품위를 생각하고 분위기를 중요시하는 소돔과 고모라의 점잖은 사람들은 러브호텔을 선호했을 것이다. 소돔과 고모라에 호텔이 있었다면……. 경제적 도움을 준다며 딸 같은 그곳으로 아이를 데리고 들어가는 아비 같은 돈 많은 아저씨가 있었을 것이며, 사랑하는 제자를 너무 사랑하는 나머지 학교에서는 미처 가르쳐 주지 않는 더 깊은 기술과 높은 지식을 전수하기 위해 조용한 배움의 장소로 만드는 스승도 있었을 것이다. 더구나 원조교제라는 편리한 신상품이 개발되어 많은 어린 여학생들이 이 곳을 이용해 힘든 아르바이트에서 해방되었을 것이다.
소돔과 고모라에 대학이 있었다면…….
틀림없이 우리의 입시 지옥과 맞먹는 고약한 입학제도가 있었을 것이다. 대학 행정을 이끄는 지도자들은 모든 학문을 니느웨(Ninive) 말로 강의하도록 권장했을 것이다. 니느웨 말을 가르치는 학과는 너무 혼잡하여 시장 바닥에서 모국어를 배우기가 어려움과 같았을 것이다. 학문의 자율성이나 다양성은 아랑곳하지 않고 학부제란 편리한 퀘퀘묵은 제도를 새로이 도입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유치원부터 모국어는 무시하고 니느웨 말만 어설프게 배우며 자란 학생들은 자라면서 김치는 물론 된장냄새도 맡지 못하고, 소돔하고 고모라한 것은 모두 나쁘고 천한 것으로 인식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들은 머리털에서 배꼽까지 온 몸에서 니느웨 냄새를 풍기다가 문득 발견한 자신의 낮은 코를 한탄하며 부모를 원망하였을 것이다. 패션쇼 무대에 선 듯한 잘 차려 입은 여학생들은 강의실에 들어가기가 어색하고 거북했을 것이다. 이렇게 점차 기형아가 되어 가면서 자신들의 정체를 의심하고 끝내 자신들의 문화를 무시하고, 기나긴 전통을 불사르고는 자신을 부정하는 길을 오히려 자신들의 유일한 생존의 길로 굳게 믿게 되었을 것이다. 소돔과 고모라에 대학이 있었다면……. 적지 않은 학생들은 고시라는 과거시험에 혈안이 되었을 것이다.

예전에는 절간을 찾아 가다가 점차 신림동의 골방 같은 격리된 공간을 찾았을 것이다. 절간과 골방에서만 생활하여 쌀값은 물론이고 세상물정을 전혀 모르는 이들 중 일부는 고위 관직에 오르게 되었을 것이다. 돈이나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그것을 지키기 위해 철통같이 방어망을 구축할 수단으로 만든 것이 법이란 것이지만, 그래서 바빌로니아의 귀족들은 자식까지 전쟁터에 보내는 noblesse-oblige 라는 제도를 엄격히 지켰지만, 절간이나 골방에서 육성된 귀족들은 철옹성을 지켜주는 그런 소중한 수단마저 이용할 줄을 모르고 자신은 물론 자식까지도 총자루를 잡아보지 않았을 것이다. 소돔과 고모라에 대학이 있었다면……. 사회 지도자들, 졸부들에 뒤질세라 스스로 기러기 아빠가 된 교수들도 있었을 것이다. 마누라를 딸려 자식들을 멀리 니느웨로 보내놓고 자신들은 기러기 아빠가 되어 외로이 혼자 소주를 마셨을 것이다. 자신의 얼굴을 잊어버리고 자신의 언어를 잃어버린 이런 국적 없는 아이들이 후에 소돔과 고모라에 돌아와 중요한 자리에 앉게되면, 이들은 절간이나 골방에서 공부하여 세상물정을 전혀 모른 체 국정을 휘두르는 사람들보다도 더욱 해롭고 위험할 것임을 기러기 아빠들은 몰랐기 때문이리라.
소돔과 고모라에 언론이 있었다면…….
밤의 대통령을 만들어 자신들의 부와 권력을 지켜가며 비대해진 언론들이 있었을 것이며 끝내는 낮의 대통령까지도 제조하겠다는 환상을 품게 되었을 것이다. 몸을 가누지 못하게 된 이들 재벌 언론들은 오만함에 빠져 진실을 보도할 능력이 없어졌으며 자신들만이 안정과 번영을 보도한다는 구호를 앞세워 이를 받아드리지 않는 사람들은 우르(Ur)와 가까운 샛노란 친구들이라 매도하고 이념의 위험성을 오도했을 것이다. 자기들의 구호는 일부 층만을 위한 속임수임이 점차 드러나자 이를 감추기 위해 우르와의 관계를 더욱 이념화시키고, 역사적인 우르와 맺은 화해와 포옹까지도 이들은 고개를 돌리고 욕지거리를 해댔을 것이며, 어느새 세뇌된 불쌍한 이들의 애독자들은 덩달아 함께 침을 뱉았을 것이다. 이들은 결국 자연스럽게 보수세력을 구축하고 수구세력을 형성했을 것이다. 몇 안 되겠지만 이들 중 그나마 양식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두 손을 모으고 하늘에 대고 이렇게 기도했을 것이다: "서로 생각이 다르다해도 우리가 서로를 사하여 주듯이 우리의 서로의 오만을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무지하다해도 保守의 줄에 서지 않게 하옵시고, 조금 가졌다 해도 守舊가 되지는 않도록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소돔과 고모라에 이런 저런 것이 있었다면, 위인이 열에 열이 있었다 해도 불의 기둥이 재앙을 불러오기 전에 이미 그곳은 멸망하고 말았을 것이다.
이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