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부리가 5달러 들고 따링 누나에게 달려들었다
서울은 별빛의 ‘푸른 슬픔’이 묻어 나오는 곳이 되었다


전쟁으로 난장판이 된 서울이 성장시킨 악동
쇼리킴에게도 서울은 지긋지긋한 곳이었다


한국전쟁은 순식간에 인간의 시간을 멈추게 만들었다. 그리고 한반도에는 생존의 시간만이 흐르기 시작했다.

“저 흙데미 위에서 어제까지는 웃음소리가 들렸고 노래 소리가 들렸고 울음소리가 들렸고 분명 저 흙데미 위에서 어제까지는 어떤 한 사람이 전쟁 이얘기를 하였고 또 한 사람이 전쟁 이얘기를 들었고 서로 걱정도 근심도 나누며·······참으로 한 순간 그 굉장한 폭음이 울리고, 그 다음에는 거기에 아무것도 없어진···········
(박남수, <원죄의 거리 2> 중에서)

폭음과 함께 사라진 전쟁 이야기를 하던 사람들, 그들의 흔적은 흙더미에 묻혀 버렸다. 얼마나 참혹한 일인가? 전쟁은 이야기의 대상이 아니었다. 이야기는 대상과의 거리를 전제하고 있는데, 전쟁은 동일한 시공간에 존재하고 있었다. 생존의 시간은 서사의 시간이 아니라 서정의 시간이다. 세상과 일심동체가 되지 못하면 생존할 수 없다. 그런데 서정의 시간에는 서정시가 써지지 않는다. 시보다 더 서정적인 현실이기 때문에. 그래서 참혹한 소설이 전쟁을 형상화 한다.
송병수의 <쇼리킴>은 한국전쟁의 상처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소설이다. 쇼리킴은 한국 전쟁이 창조해 낸 악동이다. 악동은 도시병리적인 성격을 가진 존재다. 쇼리킴도 전쟁으로 난장판이 된 서울이 성장시킨 악동이다. 그런 쇼리킴이 서울을 떠나 미군 기지촌에 터전을 잡는다.

“사람 사는 집이라곤 통 없는 일선지구 산골이지만, 진작 서울서 이곳에 오길 참 잘한 것이다. 예서 양키들에게 양갈보나 붙여주고 그럭저럭 얼려 지내다가 딱부리처럼 하우스뽀이라도 되기만 하면 그 땐 팔자 고치는 거다. 뭣보다도 이곳엔 뭐 날쳐오라고 야단치는 왕초도 없거니와 어디서 뭘 날치거나 쇼톨질을 안해도 뭣이던 쓸만한 건 양키부대에 쌓여 있어 좋다.”

쇼리킴의 서울 생활은 고달팠다. 지금은 하우스뽀이가 되어 있는 딱부리와 함께 청계천 다리 밑 왕초의 똘만이 생활을 했고, 왕초에게 도망치다가 교통순경에게 잡혀 하루 두 끼만 주는 배고픈 고아원 생활도 했었다. 서울은 쇼리킴에게 지긋지긋한 곳이었다.
서울에서 도망쳐 기지촌으로 온 쇼리킴은 따링 누나의 구덩이에서 함께 생활을 하면서 펨프 일을 시작 한다. 따링누나와 동거를 시작하면서 쇼리킴의 생활은 어느 정도 안정을 찾는다.
하지만 쇼리킴이 느끼던 행복감은 허상이었다. “기지촌은 각양각종의 부랑군중이 기식하는 공간이다. 양부인, 펨프, 구두닦이, 하우스뽀이, 딸라장수, 뚜럭군, 쓰레이꾼 등등, 그들이 얼레판 치는 그곳에는 온갖 끔찍하고 추악한 부정, 비덕, 죄악이 벌어진다. 피비린내 나는 약육강식의 상쟁, 손익을 판가름하는 갈등, 이권장악의 치열한 대결, 살인, 강탈 이런 것들이 기지촌의 생존수단이다.”(송병수, <작가노트>) 그리고 기지촌은 말초적이고 저급한 GI문화가 판치는 공간이었다. 딱부리가 5달러를 들고 따링 누나에게 달려드는 것과 같이 기지촌은 최소한의 윤리의식도 실종한 곳이었다. 한국전쟁으로 인하여 이러한 저급한 양키문화가 한반도에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양키 문화가 우리 무의식의 심저까지 촉수를 뻗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전쟁이라는 극한상황 때문이었다. <쇼리킴>에서는 이러한 상황이 리얼하게 그려지고 있다.
또한 기지촌은 인권의 사각지대였다. “오늘은 서뿔리 굴다간 정말 놈의 총에 맞아 죽을지도 모른다. 사실 이곳에선 양키가 한국사람 하나 둘쯤은 쏴 죽여도 고만이다. 요전에도 에 웬 한국 사람이 얼신거리는 것을 보고 보초가 쏴 죽였지만 엉구렁덩이에 쓱싹 해치우고는 누구하나 아랑곳 하지 않”는 공간이었다.
극악한 악동이었지만 동요 ‘산 너머 저 햇님’을 따라 부르는 동심도 가지고 있었던 쇼리킴에게 기지촌은 서울보다 더 끔찍한 공간이었던 것이다. 겁보였던 딱부리에게 놀림을 당하고 따링 누나에게 욕망을 느끼는 흑인사병에게 폭행을 당하고 급기야 따링 누나마저 엠피들에게 잡혀간다.

이제 이곳 양키부대도 싫다. 아니, 무섭다. 생각해보면 양키들도 무섭다. 부르도크 같은 놈은 왕초보다 더 무섭고, 엠피는 교통순경보다 더 미웁다. 빨리 이곳을 떠나 우선 서울에 가서 따링 누나를 찾아야겠다. 그 마음 착한 따링 누나를 다시 만날 수만 있다면야 까짓 딸라뭉치 따위야·····<중략>····그저 따링누나를 만나 왈칵 끌어안고 싫건, 싫건 울어나보고, 다음에 아무데고 가서 오래 자리 잡고 ‘산 너머 햇님’을 부르며 마음 놓고 살아봤으면····

기지촌은 쇼리킴이 안주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따링누나가 떠나간 기지촌에서 쇼리킴은 서울에 대해서 새로운 생각을 가지게 된다. 이제 서울은 왕초나 고아원이 있는 서울이 아니라 마음씨 좋은 따링 누나가 있는 서울이다. 따링누나와 함께 동요를 마음 놓고 부를 수 있는 공간으로 인식된다. 약육강식의 생존 공간이자 폐허가 된 서울이 오히려 동심의 세계이자 꿈의 공간이라는 아이러니. 쇼리킴이 향하는 서울은 밤하늘 별과 같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쇼리킴의 행로에는 푸른 슬픔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서울은 별이 아니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기 때문에…….
장두식<대중문화연구소 연구원>


1950~60년대의 서울역 앞 광장의 모습.
장두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