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를 알 수 없는 강(江), 그 수천리 물길도
황포돛배만은 알고 있었으리라…….


세상이 복잡하고 어려울 때일수록 희망의 배를 띄우자. 하늘 가운데 닻을 올리고 밝은 세상으로 노 저어가자. 흐르는 강 건너며 밝아오는 아침을 맞고, 장인의 손길 닿은 황포돛배 타고 희망의 나라로 건너간다. 한국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스며 담고 있는 황포돛배. 투박하지 않으며, 섬세하고도 ‘여유자적’한 우리네 전통 한선(韓船)의 그림자를 따라가 본다. <편집자주>


긴 세월을 지나 나루터는 사라지고
물소리 끊겨 강의 흐름도 알아채지 못할 때
황포돛배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한강에 띄워졌다

요놈의 바람은 왜 아니 부나
바람이 불어야 노 안 저을걸.
손바닥이 다 부르텃네
두물 머리 어서 가서
책장술이나 마셔야지

황포돛대 높이 달고
굼실굼실 잘도 노는데
내 신세는 어이하여
칠성판을 떠메고 다니나
어기여 어이 저차
노를 저어라


황포 돛이 서늘한 강바람을 가르며 물위를 미끄러진다. 푸념 섞인 노 젓는 뱃사공의 가락도 흐르는 강물처럼 목을 타고 넘어간다. 세월이 뱃노래를 만들고 뱃노래가 세월을 만들었다.
강물은 오랫동안 흘러왔다. 강물이 흐르는 이유를 그 시작과 끝이 보이지 않아 사람들은 그렇게 말할 뿐이다. 보일 듯 보이지 않는 그 흐름은 바람 따라 떠돌고, 비에 젖어 불어나지만 늘 한결같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흐름을 연모하고, 따른다. 어쩌면 배를 타는 것이 아닌, 강에 기대며 서서히 노를 젓는지도 모른다.

긴 세월을 지나 나루터는 사라지고, 물소리도 끊겨 강의 흐름도 알아채지 못할 즈음 황포돛배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한강에 띄워졌다.
시원하게 뻗은 지방 국도를 타고, 한강을 거슬러 북한강 줄기를 따라 올라간다. 경기도 광주군 남종면 분원리 작은 마을.
돼지머리가 고사 상에 올려졌다. 꽹 가리가 마을 전체를 울리고, 뱃사람들은 물을 다스리는 신령에게 제물을 바쳐, 무사하고 평안한 뱃길을 가슴 깊이 기원한다. 배를 만드는 장인도, 그 동안 들인 공(功)이 헛되지 않기를 자식 얻는 마음으로 제를 올린다.
땀방울이 작은 내를 이뤄도 이뤘을 게다. 여름내 뙤약볕아래서 만든 배가 이제야 완성됐다. 끌질, 망치질에 손이 다 부르트고, 손톱은 멍들고 날아갔다. 굳은살이 박혀 뭉툭한 손은 그 형체만 알아볼 정도로 변해있었다.
나무를 고르는 데서부터 모두 수작업이다. 강원도 홍천에서 50년∼100년생 나무를 잘라오는데 곧은 나무는 재료로 부적당하며, 옹이가 적고 어느 정도 휘어있어야 재목으로 쓸 수 있다. 그렇게 장인의 눈에 찬 나무는 다시 다듬어지고 햇빛을 받아 새로운 생명으로 탄생하는 것이다.
집 만드는 목수가 배만드는 목수 못 따라 온다는 말이 있던가. 이유인즉슨 배를 만들려면 곧은 나무보다는 휜 나무를 잘 써서 타원을 만들기 때문이란다.
사람 몸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그 큰 조선소는 상상도 못한다. 철들 무렵부터 선친에게 배운 배만드는 기술이 40년 인생이 되어버렸다. 지난날 아버지의 기술을 배우러 온 젊은 청년들이 더러 있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한강 곳곳에 물을 막는 댐이 뱃길을 막았고, 넉넉하고 유연한 황포돛배는 추억으로 사라져, 그들도 오래지 않아 발길을 돌린 것이다. 아버지의 대를 잇는 것이 자식된 도리고, 이승에서 남겨진 몫일 것이라, 이것저것 눈 돌리지 않고 이 자리에 서 있다.
나무의 양끝에 홈을 판다. 나무 끝의 홈을 맞물려 잇고, 고정시킨다. 나무 옆면은 비스듬히 포개어 아귀를 맞춘다. 그렇게 햇볕을 쬐면 나무들은 서로 엉겨붙듯 달라붙어 견고하게 배 바닥을 만드는 것이다.
배 제작에 한강 상류지방과 하류지방은 밑바닥 구조가 다른데, 황포 돛대는 상류지방의 전통적인 배라고 할 수 있다. 상류지방은 밑바닥이 평평하고 넓어 수심이 얕은 곳을 무난히 헤쳐나갈 수 있도록 설계됐다. 그래서 돌이 걸려도 배가 부서지지 않고, 짐이 많아도 강물위로 왔다갔다 중심을 잡으며 유유히 지나갈 수 있는 것이다.

배에 쓸 못 한 개를 만들 때도 수없이 다듬질을 한다. 황혼이 가까운 대장장이는 칠십년 가까운 세월 배 못을 만들고, 가마니와 살아왔다. 쇠를 두들겨 못의 대가리를 굳힐 때, 자신의 몸은 수직을 취하고 있다. 세월이 허리를 굽히고, 등줄기를 휘감아 돌 때도 망치와 불 곁에서 살아온 인생인 것을 가족들은 다 알고 있다.
이렇게 배가 윤곽을 드러내고, 광목에 황토물을 들여 돛을 올리면 배가 완성된다.
누런 황포는 자연의 빛에서 얻어진다. 깊은 땅에서 파낸 황토에 소금과 백반을 넣고 끓여 광목에 물을 들인다. 광목을 썩지 않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 이 자연 염색인데 선조들은 어찌 이런 것을 알았을까 그 지혜에 탄복이 절로 난다.
염색하고 남은 부스러기를 맑은 계곡물에 씻겨보내는 아낙네들은 이 작은 일에도 정성을 담아 깨끗이 씻어 내린다. 쌓인 먼지가 함께 실려 내려가면서 이들의 시름도 한동안 잊는 것이다. 투명한 햇살아래 잘 말려진 황포돛은 푸른 하늘에서 벌써 배를 지위하고 있다.
다리가 없던 시절, 강 하구에서 나는 소금이나 새우젓, 강 상류에서 나는 목재들을 넉넉히 담아도 가라앉지 않는 배 황포돛배. 수없이 마을 어귀를 오고 가며 소금을 한가득 실어 날랐던 그 아련한 기억은 이제 켜켜이 사라지고, 노인들의 추억으로 자리 잡고 있다.
바쁜 현대인들은 더 빠르게, 더 쾌적한 운송수단을 만들어내고, 강물을 따라 고고하게 흐르는 황포돛배를 기억조차 하지 않는다. 하루 하루가 고달픈 사람들에게 끼니 걱정을 덜어주고 잠시나마 여유를 주던 황포돛배. 이것이 조선시대 대표적 운송수단이었음을 젊은이들은 배워서라도 알고 있을까. 이 돛배의 생명력은 장인의 손끝에서부터 불어넣어져, 그 빛을 더한다.
보이지 않는 깊은 강물처럼, 전통을 굳건히 지켜나가는 장인들. 그들의 손에서 만들어지는 황포돛배는 다시금 옛 시절의 삶을 떠올리게 한다. <길지혜 기자>tameyou@dankook.ac.kr
<길지혜 기자>  tameyou@dankoo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