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벤덤의 <파놉티콘(panopticon)>과
파놉티시즘(panopticism)


1787년, 영국의 법률가 J. 벤덤(Jeremy Bentham. 1748-1832)은 자신의 동생 새무엘이 러시아의 크리체브에서 고안한 공장의 관리시스템을 보고, 인간의 행동을 24시간 감시할 수 있는 장치인 ‘파놉티콘’이라는 시스템을 생각해 내었다. 그 어원은 ‘모두’를 뜻하는 ’pan‘과 ‘본다’는 뜻의 ‘opticon’을 합성한 것으로서, ‘모든 것을 본다’는 의미가 되는데, 한자어로는 ’일망감시시설(一望監視施設)’ 또는 ‘원형형무소(圓形刑務所)’로 번역되기도 한다.
이 도면에서 보듯이, 파놉티콘은 둥근 형태의 건물과 그 중앙에 세워진 탑으로 구성되어 있다. 탑에는 감시소와 간수가 있고, 돔(dome)으로 된 천장으로부터 빛이 들어오며, 원형건물의 독방과 감시소 사이에는 위에서 아래까지 격리된 공간이 있다. 감시자는 주위를 둘러싼 건물의 모든 방을 관찰할 수 있다. 그러나 간수는 블라인드 등의 장치를 사용해서 죄수의 눈으로부터 은폐되어 있다.

죄수과 간수 사이에는 아무런 소통도 없으며, 죄수는 자신이 늘 ‘보이지 않는 눈’에 노출되어 있다는 느낌을 가지고 생활하게 된다. 말하자면 이것은 항상 인간의 행동을 관찰하고 있다는 (기독교적 발상의) ‘신의 눈(eye of God)’과도 유사한 것이며, 최소의 노력과 비용으로 전체를 감시할 수 있는 시스템(round-the-clock surveillance machine)이므로 집단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매우 효율적이다. (J. 벤덤은 이 시스템을 공장, 병원, 학교, 빈민수용소 등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현대에 이르러 이것이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프랑스의 철학자 M. 푸코(Michel P. Foucault. 1926-84)가 『감시와 처벌-감옥의 탄생』(1975)에서 ‘파놉티콘의 감시체계 원리가 사회 전반으로 파고들어 규범사회의 기본 원리인 ‘파놉티시즘’으로 바뀌었다‘고 지적했기 때문이다. M. 푸코는, J. 벤덤이 말한 것처럼, 죄수가 감시당하고 있음을 ‘영원히 자각하고 있는 상태’를 만들어 내는 것을 파놉티콘의 특징으로 보았다. 즉 중요한 것은 자신이 누군가에게 보여지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는 것’, 즉 ‘의식화’ 또는 ‘내면화’이며, 그것이야말로 죄수를 복종하게 만드는 요인이라는 것이다.
전회에 소개했던 것처럼 ‘세상을 한눈에’ 보고자 하는 시각적 욕망의 폭주가 시작되었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파노라마가 탄생했던 바로 그 무렵, 마찬가지로 영국인에 의해, 그와는 정반대의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시각적 시스템이 발명되었다는 것은 매우 공교로운 일이다. 그리고 나서 200여년이 흐르는 동안, 파놉티콘은 M. 푸코의 지적처럼 근대사회의 전반에 보이지 않는 시스템으로 스며들었고, 파노라마의 욕망은 오늘날처럼 거대한 미디어산업과 시장을 만들어내었다. 이러한 ‘시선과 의식의 역학’은 단지 건축이나 시각미디어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정신의 보다 근본적인 문제인 것 같다.
<예술대학·예술학부·서양화전공> 교수
이원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