쇄국과 고립과 은둔의 고질 잘라내자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런던이나 파리나 시드니와 같은 큰 도시들을 돌아다녀보면 우리 서울과 비교되는 금방 눈에 띄는 것이 한 가지 있다. 그들 도시의 중심가에는 내국인이 아닌 외국인이 그렇게 많다는 점이다. 정말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인종의 물결이 넘친다고나 할까.
주로는 타국의 여행자들인데 짐작컨데 90%는 될 것이다. 거기에 비하면 우리의 서울은 사람은 많아도 대부분은 짐작컨데 90%는 자국인 곧 한국인이다.
아마도 짐작컨데 북한 평양의 거리는 99%가 북한 사람들로만 가득 채워져 있을 것 같다. 서울이건 평양이건 외국사람들의 왕래는 상대적으로 잦지 못하다. 그래서 남이건 북이건 국제적으로는 코리안은 고독하다.
상술에 박리다매(薄利多賣)라는 말이 있는데 참 좋아 보인다. 마치 우리 조상들의 지혜로운 경영철학을 구경하는 것 같다. 싸게 팔아서 낱개로 얻는 이윤은 극소화하지만 많이 팔아서 전체이윤을 극대화한다는 전략이다.
우선 사람이 많이 오게 하고서야 장사가 된다는 깊은 뜻이 그 안에 숨어있는 것으로 나는 이해하고 있다. 제아무리 좋은 상품이 있어도 사려는 사람이 몰려들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랴. 사람이 모여야 장사도 되고 학문도 있고 사는 신명도 나는 법이다.

지구촌 사람들이 런던에 파리에 그리고 시드니에 가 각종 관광도 하고 연수도 하고 비즈니스도 할 때, 가고 오고 주고받고 교류하며 서로의 생각과 정보를 나누며 나름의 연대와 결속을 다져나갈 때, 나아가 경제를 도약시키고 문명을 꽃피게 하고 있을 때, 어째서 우리는 끼리끼리만 모여 바깥세상을 외면하고 용무 없이 살아간다는 말인가.
그들의 역동하는 삶을 지켜보다가 우리의 고독한 처지를 돌아보면 고립, 닫힘, 정체 따위의 단어가 떠올라 갑자기 우울해 진다.
한 세기 전 쇄국으로 나라 문을 굳게 걸어 잠글 수밖에 없었던 우리 선배들의 불안해했을 심사가 느껴지기도 한다. 왜 우리는 그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우리끼리만 모여 살까. 우리가 본래로 남달리 배타적인가 이기적인가 비사교적인가.
지정학적으로 봐서 우리나라만큼 외교적 역량이 중시되어야 하는 나라도 세상에 없다. 주지하듯이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 이렇게 세계최대 4강국이 우리를 포위한 채 떡 버티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렇다. 우리 역사에 위대한 정치가도 장수도 학자도 많지만 위대한 외교관은 많지 않았다고 역사학자들이 지적하고 있다. 고려의 서희(徐熙)가 고작이라는 비아냥마저 있다.
정말로 우리 역사를 돌이켜보면 괄목할만한 외교사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기껏해봐야 중국과 일본의 틈바구니에서 힘겹게 맞서는 정도다. 남방 아시아를 원정 가 제패한 적도 없고 교역으로 중동에 진출하여 수교한 기록도 없다.
서방세계를 널리 여행했다는 발자취는 더더욱 없다. 오죽했으면 서양인의 눈에 이 반도의 땅이 숨어있는 은자의 나라(Hermit Nation)로 비쳤겠는가. 왜 백제의 의자왕은, 고려의 공민왕은, 그리고 조선의 세종임금은, 다들 명민하신 분들이었다는데, 세계로 뻗어가는 외교를 도모하지는 못했을까.
외국에 나와서도 유독 한국인은 고립되어 있다. 고립이라는 말이 싫다면 비외교적이라고 하자. 외국대학에 대개 국제학생회가 있지만 학생회의 행사에 가장 비참여적인 것이 한국학생이다. 여느 시 주최 국제음식박람회에 나가보면 동남아 아프리카 중남미의 별 음식이 다 있어도 우리 음식만은 빠지기가 일쑤다. 관광사들이 소개하는 세계 각국 도시 여행안내자료에도 우리 수도 서울이 추천되는 것을 거의 보지 못했다. 참 안된 일이다.
백년을 쇄국했다 해도 아니 반만년을 은둔했다 해도 이제 우리는 아니다. 우리의 뼛속깊이 파고든 쇄국과 은둔과 고립의 고질을 단칼에 잘라내자. 우리 모두가 외교인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가고 그들이 오게 하자. 세상 사람들이 서울에 여행 오게 하자, 인간권리를 존중하여 외국의 노동자들이 일할 수 있도록 하자,
그리고 기업경영환경을 개선하여 외국의 투자를 늘려 유치해보자. 그리고 우리도 나가서 여행도 하고 일도 하고 그리고 투자도 해보자.
미구에 외국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한국인은 참 외교적이야!’
황필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