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다른 사람과 척(隻)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물론 평생 동안 다른 사람과 원수지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은 참으로 어진 사람이요, 존경받는 사람이다. 그래서 인자무적(仁者無敵)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러나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성격이나 자존심 때문이라든지 언행의 문제 때문이라든지 아무튼 그 나름대로 연유가 있을 것이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그 근본적인 원인은 당사자에게 있다. 그러므로 항상 어질고 너그러운 마음, 포용력과 겸손한 자세가 필요하다. 그렇지만 이를 알면서도 행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평상시 점잖고 군자인줄 알았던 사람이 알고 보니 속 좁기 짝이 없을 뿐 아니라 소인과 진배없는 위군자(僞君子)요, 항상 겸손했던 사람이 업그레이드되어 높은 직위에 오르자 거만하고 오만하기 그지없는 사람으로 변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어디 그 뿐인가? 갖은 고생을 하다가 뒤늦게 안정적인 직장을 얻고 나서는 180도로 변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직 취업하지 못한 선배나 친구, 후배들에게 격려는커녕 별로 고생하지도 않은 자신의 고생담을 뻥 튀겨 늘어놓는 사람도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한마디로 ‘개구리 올챙이 시절 모르는 격’이다. 결국 이런 사람이 다른 사람과 척지게 된다.
그러나 인생은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평생 양지에 사는 사람도 있지만, 태반은 양지에 살다가 음지로, 음지에 살다가 양지에서 살기도 한다. 우리네 인생이라는 것이 이런 것 아닌가?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는 법이다. 그러므로 이를 알고 언제나 어질고 너그러운 마음, 포용력과 겸손한 자세로 사람을 대해야 한다. 특히 잘나갈 때일수록 자기보다 어려운 사람들에게 관심과 애정을 갖고 신경 써줄 필요가 있다. 이것이 사람 살아가는 도리일 것이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으니 문제이다. 우리는 이로 인해 척지게 되는 경우를 흔하게 본다. 이와 관련하여 진(秦)나라의 재상을 지낸 범수(范 )의 원수 갚은 이야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제(齊)나라 양왕(襄王) 때, 위(魏)나라 대부(大夫) 수가(須賈)가 위나라 왕의 명령으로 가신(家臣)인 범수를 데리고 제나라에 간 적이 있었다.

그런데 성과도 없이 돌아오게 되자, 속 좁은 수가는 범수를 제나라와 내통했다고 재상 위제(魏齊)에게 고해 바쳤다. 이 때문에 범수는 위제에게 심한 고문과 온갖 모욕을 받았다. 그 후 범수는 정안평(鄭安平)의 도움을 받아 진나라로 도망가 재상이 되었다. 그때 진나라의 소왕(昭王)이 범수가 제안한 원교근공(遠交近攻:먼 나라와 우호 관계를 맺고 이웃 나라를 공략하는 것)의 책략을 시행하여 한(韓)나라와 위나라를 공격하려고 하자, 위나라 왕은 수가를 진나라에 보내 화친을 청하도록 하였다. 이때 범수는 남루한 차림으로 수가를 만나러 왔다. 수가는 불쌍한 생각이 들어 범수에게 밥과 술, 비단 두루마기를 주었다. 며칠 후 진나라 재상을 만나러 간 수가는 범수가 재상임을 알게 되자 사죄를 청하였다. 범수는 자신을 모함한 수가가 죽어 마땅하지만, 비단옷 준 것을 생각해 모욕만 주고 살려주었다. 그러나 위제는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고 하면서, 위나라 왕에게 속히 위제의 수급을 갖다 바치라고 하였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위제는 화가 나서 자살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의 목은 범수에게 보내졌다. 이처럼 남에게 나쁘고 못된 짓을 하게 되면 언젠가는 그 보복을 받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를 재삼 명심할 필요가 있다. 『경행록(景行錄)』에 ‘남과 원한을 맺으면 재앙의 씨를 심는다’는 구절이 있다. 참으로 맞는 말이다. 이와 관련된 내용이 『미암일기』에 있어 소개한다.

“이감(李戡)이 경기감사로 있을 때에 항상 시기하고 포악하여, 파주 목사 변협(邊協)을 곤장으로 때린 일이 있었다. 그 후 이감은 경원으로 귀양 가고, 변협이 지금 북도병사가 되었으니, 이것은 이른바 ‘약봉뇌주구사호 인생하처불상봉(若逢雷州寇司戶 人生何處不相逢 : 만약 뇌주에서 사호의 구준<寇準>을 보면, 인생이 어느 곳인들 서로 만나지 않으랴)’격이다.”

변협이 이감을 어찌 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변협과 이감의 이야기에서 보는 것처럼, 인생은 아무도 속단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날지 모른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는 속담이 있듯이, 평소에 남에게 원한을 사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원한을 사게 되면 반드시 보복을 받게 되는 법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를 잊지 말자. 척지면 자신만 손해다. 우리 모두 척지지 않고 살도록 노력하자.
송재용<동양학연구소 연구실장>
송재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