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된 사람들이 충돌하는 곳
‘꺼삐딴리’의 이인국과 ‘오발탄’의 송철호처럼

해방촌의 갈등은 오늘날에도
서울의 갈등구조로 남아있다


정식 지명으로는 서울시 용산구 용산동 2가인 해방촌. 오늘날 서울의 지명이 대개 그렇듯 해방촌 또한 명칭과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은 괴리감을 느끼게 한다. 1945년 이후 해방 이후 고국으로 돌아 온 동포들과 서로 다른 체제의 국가가 들어선 한반도의 현실 때문에 자신들의 정주지를 떠나온 월남인들이 지친 육신을 웅크리며 집단 부락을 이룬 곳이라는 속내를 알고 나면 해방촌은 ‘해방촌(解放村)’이 아닌 것이다.
일제시대에는 일본군의 군영 근처라서 민간인들의 가옥이 들어서지 못했던 곳이었지만, 해방이 되자 용산의 미군기지가 내려다보이는 산자락에 판잣집을 이루고 해방 이전에 서울에 연고지가 없던 이들이 거주를 시작한다. 해방의 벅찬 감격보다는 현실의 고단함이 피부로 와 닿았던 곳인 해방촌은 1950년대 문학에서 자주 등장하는 곳이다. 레이션 갑을 덧대어서 만들어진 지붕들이 어깨에 부딪칠 정도로 집이라기보다는 움막에 가까운 곳에서 이들은 생활한다. 해방촌이라는 곳이 해방 이후 거주할 곳을 찾을 수 없었던 이들이 만든 마을의 좁게 난 길에 끊임없이 이어지는 집들은 온전하지 않은 것들이다.
이렇게 이범선의 ‘오발탄’(『현대문학』, 1959)에서 묘사되고 있는 해방촌의 이미지는 암울하다. 상실된 고향에 대한 근원적인 슬픔과 현실의 고단함이 동시에 뒤섞여 있으며, 해방 이후 정상적인 것이 사라진 풍토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는 ‘오발탄’에서 해방촌은 남의 잔치를 뒤처리 하는 이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계리사(計理士) 사무실의 사원으로 등장하는 철호는 자신을 위한 잔치를 열지 못하는 인물이다. 이미 많은 인구들이 밀집한 서울이라는 곳에서 자신의 신념을 지킨다는 것이 무의미함을 설파하는 동생 영호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본분을 지킨다고 생각한다. 고향을 잃은 ‘삼팔따라지(분단 이후 삼팔선을 넘어 남한으로 이주한 북한의 이주민들을 지칭하는 속어)’들의 비참한 삶은 해방촌에서 갈등이 증폭된다.

‘꺼삐딴리’의 이인국과는 대비되는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은 삶의 기반을 잃은 이들의 예정된 길이다. 게다가 동생 영호의 푸념에서도 드러나듯이 환도령(還都令) 이전에 노점조차 점유하지 못해 이권을 인정받지 못한 이들에게 점심을 굶으면서 가장의 책임을 다하는 철호의 모습은 궁색함에 지나지 않는다. 월남하기 전에 북한에서 지주로서 윤택한 삶을 누렸던 이들이 현재의 비참한 삶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상대적인 박탈감 때문이다.
이에 비해 ‘꺼삐딴리’의 이인국 박사는 ‘일제 식민지 시기 ~ 소련군 통치 ~ 1·4후퇴 후의 남한 생활’에서 현실의 변화에 따라 카멜레온처럼 변신하며 사회지도층으로 자리를 잡는다. 같은 ‘삼팔따라지’이지만 이인국의 삶은 지조와 신념을 버림으로써 가능하다. 그는 6·25전쟁 이후 돈 있는 환자들만을 선별해서 받고, 다른 병원보다 두 배나 높은 치료비를 받으면서 자신의 영달에 성공한다.
반대로 ‘오발탄’의 송철호는 남하한 이후에도 자신이 생각하는 법적 · 윤리적 틀로부터 벗어나지 못함으로써 동생들에게는 무능력한 가장으로 폄하된다. 이인국과 같은 인물들의 부를 관리하는 계리사 사무실은 이중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 즉 장부를 조작함으로써 자신의 처지를 개선할 수도 있고, 반대로 원칙적으로 운영함으로써 장부상의 숫자는 풍요롭지만 실상은 비참한 상황이 지속될 수도 있는 상반된 성향이 송철호가 처리하는 업무에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해방촌’은 상반된 삶에 대한 가치관을 지닌 인물들이 갈등하고 충돌하는 곳이다. 철호가 답답할 정도로 자신의 신념을 유지하고자 하는 원칙적인 인물이라면, 동생 영호는 불우한 세상에 반감을 품고 반항하는 인물이다. ‘이인국’처럼 행동하기에는 밑천이 없다 보니 현재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방법은 위험하다. 즉 영호의 삶은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불만만큼 위태롭다. ‘전차 값도 안되는 월급을 받고 남의 살림이나 계산해 주는’ 철호와, 비정상적인 것을 알면서도 남의 잔치를 거부하는 영호의 삶은 불우한 현실을 타개하는 방식은 공존할 수 없는 것이다.
전쟁 후의 서울이라는 공간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추스르는 방법에는 세 가지 방법이 있었을 것이다. ‘돈을 모으기 위해서만으로 필요 이상의 돈을 버는 사람과, 필요하니까 그 필요한 만치의 돈을 버는 사람과, 또 하나는 이건 꼭 필요한 돈도 채 못 벌고서 그 대신 생활을 졸이는 사람들’ 중 영호는 형 철호의 속성에 해당하는 셋째의 유형을 혐오스러울 정도로 부정한다. 법률이란 것 또한 인간의 삶이 있고 나서 구성된 것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영호의 현실론에 대한 궤변은 타당성을 지닌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에 비해 또 다른 동생 명숙의 삶은 어떠한가? 양공주라는 미군의 노리개가 되어 타인의 혐오를 받는 인물로 등장하는 명숙의 선택은 공허하지 않은 현실성 때문에 더욱 비참하게 인식된다. 자신의 오빠로부터도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한 인물이 선택한 길은 조용하게 현실적인 인물이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의 양심을 팔지 않는다. 이 점에서 그녀는 자신의 양심과 지조를 내팽겨친 이인국과 대비된다.
‘오발탄’에 등장하는 ‘해방촌’의 이미지는 암울하다. 그럼에도 이곳은 전후 서울에서 삶의 끈을 이어가고자 했던 이들의 갈등이 보여지는 곳이다. 그리고 이러한 갈등은 산업화되는 서울에 남한 내의 인구가 다시 집중되면서 연속성을 띠고 이어지며, 오늘날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로 남아있다.
김재관<대중문화연구소 연구원>
김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