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하타 마사키(藤幡正樹) 『Field-Work@Alsace』(2002)


초등학교(?) 시절의 교과서에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이라는 단편소설이 실려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19세기 말 무렵 프랑스어를 사용하던 알사스-로렌 지방의 한 초등학교에서 베를린으로부터 ‘내일부터 독일어만을 사용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이때 어린 주인공이 겪게 되는 (프랑스어로 하는) 마지막 수업의 광경을 그린 글이었다. 그것은 독일과 프랑스가 이 지역의 소유권을 두고 반목했던 오랜 기간동안 일어났을 수많은 에피소드 중의 한 장면일 것이다. 그리고 이 소설이 교과서에 실렸던 것은 그것이 일제의 통치 하에 우리말을 빼앗겼던 역사적 기억과 오버랩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EU로 통합된 지금의 유럽에서, 그때의 경계선과 갈등은 거의 소멸되었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이 작품 『Field-Work@Alsace』는 작가가 GPS(위성추적장치)로 자신의 위치를 입력하면서 알사스 지방을 돌아다니며 주민들과 인터뷰한 것을 다시 3차원공간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작가는 이 지역을 가상적인 3D공간으로 재현하고, 그곳 주민들의 기억에 남아있는 역사적 시간과 공간을 (GPS로 정교하게 실측된) 실제공간의 거리와 중첩시켜 나간다. 관객들은 여기서 시간과 공간이 얼마나 복잡하게 서로 연결되어 있는가를 경험하도록 유도된다. 그리고 이 작품은 미리 준비된 안경을 사용해 스테레오타입(입체영상)으로 감상된다.

지금은 거의 없어진 경계선, 그 장소들의 거리, 기억 속의 거리, 차이, 역사에 대한 인식, 사람들, 그리고 마을들 간의 복잡한 네트워크, ... 사실 이 모든 것들이 어지럽게 얽혀있는 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의 실체이겠지만, 보통은 단순한 이데올로기나 일차원적인 구분법에 의해 간단하게 규정되고, 그것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의 모습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세계의 진짜 모습을 보는 것은 그만큼 어렵기만 한 것이다. 하지만 정보미디어를 이용해 가상공간 속에서 구성해 보면, 세계의 모습은 그만큼 달라져 보이고, 우리의 상상력이 따라갈 수 있는 인식의 한계를 절감하게 되며, 21세기의 정보미디어가 인간의 지성과 세계인식을 위한 새로운 도구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작가 후지하타 마사키는 동경예술대학 첨단예술표현과 교수로서, 90년대부터 (보통은 눈으로 확인하기 힘든) ‘네트웍’을 주제로 한 작품을 발표하고 있으며, <Global interior Project>로 ‘아스 엘렉트로니카’(Ars Electronica(Lintz, Austria))에서 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 작품은 5월 4일부터 23일까지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열리고 있는 미디어아트 전시 ‘충돌과 흐름’의 메인사이트에서 전시되고 있으며, (곧 없어질지는 모르겠으나) http://www.fujihata.jp/fwpics/에 다량의 스틸 컷들이 공개되어 있다.

<예술대학·예술학부·서양화전공> 교수
이원곤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