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암일기(眉巖日記)를 중심으로 스승의 은혜를 생각하며

우리는 학창시절 선생님에 대한 추억을 가지고 있다. 사람 나름이겠지만 선생님에 대해 좋은 추억을 가진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며, 또 좋은 추억과 별로 좋지 않은 추억을 다 가진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필자 또한 예외는 아니다. 학부·석박사시절 뿐 아니라 나이 50세가 된 지금까지 필자가 흔들릴 때마다 무한한 애정으로 용기와 격려를 해주시는 은사님들이 있다. 은사님들께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죄송스럽다. 이와는 달리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선생님(솔직히 함자가 기억나지 않는다)의 경우, 일 년 동안 수업을 대충 하시거나 툭하면 안하시기 일쑤였다. 뿐만 아니라, 수시로 교실에서 모포 덮고 주무시거나, 걸핏하면 책걸상 뒤로 밀어 놓고 반 아이들을 싸움 시키셨다. 왜 그러하셨는지 지금도 그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런데 그때는 입학시험을 치르고 중학교에 진학하던 시절이었지만, 학부모나 학생 그 누구도 선생님께 이의를 제기한 적이 없었다. 아마 지금 같으면 큰 난리가 났을 것이다. 필자는 그 선생님을 원망은 했지만, 욕을 한 적은 없다. 어찌 되었든 나를 가르쳐 주신 선생님 아니신가? 지금 이런 글을 쓰는 것이 그 분께 누를 끼치는 것 같아 송구스럽다.
아무튼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다’는 노래가사도 있듯이, 스승의 은혜는 끝이 없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다워질 수 있는 것은 스승의 가르침과 인도 때문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사자소학(四字小學)』에 ‘스승 섬기기를 어버이 같이 하여 반드시 공손히 하고 반드시 공경하라’는 구절이 있다. 그런데 요즈음은 어떠한가? 흔히 스승은 삼부(三父)의 하나라고 하는데 그 말이 무색할 정도요, 사도(師道)는 땅에 떨어져 ‘개판 5분전’이라고 한다. 어쩌다 이 지경에 까지 이르렀는지……. 이렇게 된 것은 가정교육과 학교교육, 정부의 교육정책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는 선생·학생을 포함해 우리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예기(禮記)』에 보면 ‘스승을 선택하는 데에는 신중을 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구절이 있다. 일리 있는 말이다. 소신이나 지조가 없는 스승, 사명감이나 책임감이 없는 스승, 제자를 올바르게 가르치고 이끌어주지 못하는 스승,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 찬 스승, 아부만 일삼거나 시류에 영합하는 스승, 돈만 밝히고 부정한 짓만 일삼는 스승, 교육을 등한시하고 연구를 전혀 하지 않는 스승이라면, 이러한 부류의 스승한테 제자가 무엇을 배울 것인가? 그리고 스승을 쫓아내는 제자, 스승을 공격하거나 협박하는 제자, 스승을 모함하고 시기하는 제자, 스승의 은혜를 저버린 제자, 스승을 배신하는 제자, 스승을 이용하는 제자라면, 이들은 마땅히 파문(破門)시켜야 한다.

모름지기 스승은 스승다워야 하고 제자는 제자다워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 어찌 하랴? 특히 선생 같지 않은 선생도 있어 문제이다. 제자들을 성폭행하는 선생이 있는가 하면, 촌지 받은 것을 당연시 하거나 친구들 모임에서 자랑인양 떠벌이는 선생도 있다. 그런가 하면 촌지를 없앤다고 촌지신고제를 실시해 교사들의 반발과 함께 교단을 동요케 하고 위화감을 조성했던 교육부 장관도 있었다. 하는 짓들이 유치하기 짝이 없다.
‘선생’이란 말이 나왔으니 ‘선생’의 어원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선생’이란 원래 최고의 격조를 가진 호칭이었다. 지금은 ‘선생’이란 말이 너무 대중화되어 그 값과 격이 떨어져 아무한테나 ‘선생’이란 호칭을 붙인다. 그러나 옛날에는 대학자(大學者)나 학문과 인덕을 겸비한 사람에게만 ‘선생’이란 호칭을 사용하였다. 오늘날 대학에서 사용하고 있는 ‘교수(敎授)’라는 말은 애당초 품위나 격조가 높은 명칭이 아니었다. 조선시대에는 기능적 교육(주로 중인계층)의 담당자에게 많이 쓰이던 명칭이었다. 그리고 현재 쓰고 있는 ‘교수’라는 말은 가르쳐 주는 사람이라는 기능적 의미 밖에 없다.
『미암일기』에는 스승의 은혜에 대한 내용이 있어 소개한다.

“내일 김모재(金慕齋 : 김안국)의 묘에 제(祭)를 지내기 위해 공산(公山)에서 부조해 준 주과(酒果)를 헤아려 보니 2두(斗)1승(升)이요, 중박(中朴)·계피(桂皮)가 86동(同)이니 사행상(四行床)을 차릴 만하다…아침에 바쁘게 나복(蘿蘿 : 최산두)선생께 제사 지낼 제문을 초(草)하여 급히 순천의 광문(光雯)에게 심부름꾼을 보내 15일에 광양으로 가서 제사를 지내게 했다. 그 제문은 이렇다. ‘옛날 약관(弱冠)시절 책을 지고 스승을 찾아갔을 때, 선생님께서는 옛 정을 생각하여 저를 자식처럼 돌보시었습니다. 문 옆의 방에 머물게 하고 나물국을 함께 먹으며 속을 털어 놓으시면서 온종일 이끌어 주셨습니다. 밥을 얻어먹기가 미안하여 오래지 않아 돌아가기를 청하였는데, 그 뒤로도 편지를 왕복하여 더욱 애써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였다.”
유희춘은 귀양살이에서 풀려나 복직된 후, 스승 김안국(金安國)과 최산두(催山斗)의 묘에 자신이 직접 가거나, 피치 못할 경우 손자를 보내 제를 올렸다. 항상 존경했던 스승에게 제자로서 극진한 예(禮)를 다했다. 며칠 있으면 스승의 날이다. 형식적인 행사보다는 선생님을 찾아뵙거나 여의치 않을 경우 편지나 전화라도 하자. 그래서 진정으로 스승의 은혜에 감사하자. 필자도 거의 매년 찾아뵙는 선생님 댁에 찾아가 무례하고 어리석기 짝이 없는 못난 제자를 항상 감싸주시는 선생님께 감사의 말씀과 함께 죄송함을 표할 생각이다.
송재용(동양학연구소 연구실장)
송재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