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덕(林象德, 1683∼1719)은 숙종 31년(1705) 증광별시(增廣別試) 전시(殿試)에서 3등으로 합격하여 정언, 지평, 홍문관 부교리, 이조좌랑, 이조정랑 등을 역임한 인물이다. 윤증(尹拯, 1629∼1714)을 스승으로 모셨으며 경학(經學)에 뛰어났다. 오늘은 그가 남긴 <잡설이수(雜說二首)>를 소개한다. ‘수탉과 병아리[子老老’와 ‘함정에 빠진 범[陷穽虎]’ 2편으로 이루어진 <잡설이수>는 유종원(柳宗元)의 <삼계(三戒)>를 모방하여 지은 것이다. 그 가운데 ‘수탉과 병아리’를 먼저 보기로 한다.
집에 늙은 수탉이 있었는데, 해마다 여름에서 가을로 바뀔 때쯤 병아리들의 털과 깃, 발톱이 조금 자라면 옹기종기 모여 무리를 이루었다. 어떤 사람이 내게 늙은 수탉을 주었는데 체구가 투실하게 매우 크고 싸움을 잘 하였다. 자기 힘을 믿고 또 나이도 많아 뭇 병아리들을 만나면 무례하여 걸어갈 때 무리 지어 몰고 다니고 음식을 빼앗았으니 병아리들이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하였다.
하루는 수탉이 채마밭에서 모이를 쪼아 먹고 있었는데 매우 만족스러운 듯하였다. 병아리들을 보고는 기뻐하며 전에 하던 것처럼 호령하고자 하였는데, 병아리들이 갑자기 나란히 줄지어 서더니, 끝에 서 있던 놈이 몸을 곧추 세우고 싸우려 달려들었다. 수탉은 우습게 여기고 그 놈의 꽁무니를 차 버리자, 병아리는 곧 달아났다. 그 다음에 있던 녀석이 이어 나와 두세 번 덤비더니 그 놈도 곧 달아났다. 달아나면 또 다음 녀석이 나오고 앞엣 놈이 나가면 뒤엣 놈이 들어오니, 수탉은 화가 더욱 치밀어 힘껏 쳤지만 병아리들은 계속 차례로 나와 그 줄이 다하도록 모두 한번씩 싸웠으니, 싸움이 또한 삼사 십 합이었다. 이에 가장 먼저 패주하였던 녀석이 또 달려드니 수탉은 더욱 화가 치밀었지만 힘이 점점 부쳐서 때리는 것이 점점 처음 같지 못하였다. 병아리들은 수탉이 더 이상 견디지 못할 것을 알고 마침내 무리를 모아 한꺼번에 좌우에서 공격하니 수탉은 이들에 대적할 형편이 아니었다. 이에 날개를 접고 부엌을 돌아 북으로 달아나니 병아리들이 승세를 타서 다투어 추격하여 담장으로 몰아붙여서는 마구 차 죽여 버렸다.
늙은 수탉은 자신의 힘을 믿고 기존에 하던 방식대로 하려다가 달라진 상황에 대응하지 못하고 도리어 피해를 당하고 만다. 시대는 변화하는데 그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과거에 하던 방식대로만 하려고 해서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이는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임상덕은 이 글을 마치면서 ‘힘에 의지해서 자신의 강함만을 믿고 뭇 사람들에게 불의(不義)를 행하는 자치고 패하지 않은 자가 드물다’고 하였다. 자신의 힘만을 믿고 늘 그렇듯이 병아리들을 우습게 대하는 수탉은, 시대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고 이전에 하던 대로 권력을 휘두르는 기득권 세력, 수구주의자들의 상징이다. 마치 주인을 믿고 아무런 거리낌 없이 온 집안을 헤집고 다니는 영주(永州) 모씨네 쥐들을 연상시킨다. 권력의 비호 아래 힘없는 자들을 수탈하는 노회한 무리의 상징으로서, 나이 많고 덩치가 큰 수탉은 ‘영주 모씨네 쥐[永某氏之鼠]’에 등장하는 ‘쥐’와 동질적 존재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임상덕의 ‘수탉과 병아리’는 등장인물을 새롭게 창조함으로써 ‘영주 모씨네 쥐’의 우의(寓意)를 그대로 되살린 우언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기회를 틈타 제멋대로 못된 짓을 하는’[竊時以肆暴] 무리들이 끝내 패망하고 만다는 서사적 결말은 그렇지 않은 현실에 대한 통렬한 풍자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윤승준<교양·강의전담> 초빙교수
윤승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