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극 속의 우희, 영화속의 데이, 그리고 현실속의 장국영까지 닮은 꼴


그가 세상을 등진 지 1년이 넘었다. 시간은 무섭게 흘러 이젠 그의 죽음이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되어버렸다. 그는 떠났지만 진정한 배우답게 많은 영화에서 그의 모습은 아직도 멋있고 그의 눈빛은 아직도 강렬하다. 장국영의 생과 너무 닮은 영화 「패왕별희」속에서 그의 모습은 왜인지 아직도 선명하기만 하다.
패왕별희는 눈물을 자극하는 영화가 아닌, 가슴속 깊은 곳을 오래도록 자극하는 영화이다. 시토에게 담뱃대로 입 속을 헤쳐지고 난 후 “나는 비구니 계집아이로서 사내아이도 아닌데…….”를 노래하던 데이의 담담한 표정과 대사는 아직도 나의 뇌리에 생생하다.
패왕별희는 많은 것을 담고 있다. 중국의 역사, 이데올로기 속에서 방황하는 인간의 모습, 경극의 아름다움, 남녀간의 사랑, 그리고 동성간의 사랑까지……. 그 중에서도 중국역사의 흐름과 각기 다른 모습으로 그 격동기를 맞이하는 인간의 모습은 이 영화가 다른 영화들과 다른 점이자 또 칸영화제 시상에까지 갈 수 있게 한 원동력이 아닌가 싶다. 지금까지의 대부분의 역사는 민중과 상관없이 소수 지배자의 의도대로 흘러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나머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 역사에 자신을 맞추는 것일 뿐이다. 영화에서도 그렇다. 샬로는 자신의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린다. 막역지간이자, 정의할 수 없는 미묘한 관계에 있던 데이, 자신의 양심, 그리고 그토록 사랑했던 여인 주샨 마저도, 어쩌면 이러한 샬로의 행동이 샬로를 영화 끝까지 유일하게 살아남을 수 있는 인물이 되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샬로를 비판할 수 있을지언정 비난할 수 없는 것은 이러한 샬로의 태도가 거듭하여 변하는 세태 속에서 인간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전형적인 자세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인간에게는 생존이 가장 근본적인 문제이고, 샬로 역시 처음에는 자신만의 신념을 가진 인물이지만 환경이 그를 이렇게까지 잔인하도록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샬로와는 정반대로 데이는 역사나 전쟁에 별다른 관심이 없다. 역사가 그를 어떻게 하든 상관하지 않는다. 그는 오로지 자신의 지키고자 하는 것에만 집착하며, 그것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다.

처음에는 자신을 남자아이로 지키는 것에 유일하게 집착한다. 숱한 매질과 설득에도 절대 자신이 여아이기를 거부했던 것이 그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한번 자신을 여자로 인정하고 난 후 그의 집착은 자신을 여자로 만들어 버린 샬로에의 집착으로 방향을 바꾸게 된다. 데이는 극과 현실을 혼동하며 자신을 여자로, 아니 더 정확히 우희로 착각하며 살아간다. 그가 경극을 그토록 사랑하게 된 것도 경극 속에서만 오로지 우희로서 자신의 사랑을 완벽하게 샬로에게 전달할 수 있었음이 아닐까? 결국 나의 시선에 비춰진 데이의 모습은 끝까지 경극을 지키고자 하고, 신문화를 거부한 것이 전통으로서 경극을 사랑한 것이 아닌, 샬로에 대한 열정인 것만 같았다. 그가 정말 경극을 사랑하고, 경극을 지키고자 했다면, 샬로를 위한 것이라 해도 일본인 앞에서 노래하지 말았어야 했다. 결국 데이에게 있어서는 경극보다 더 크게 작용하는 것이 샬로였던 것이다.
마지막 주인공인 쥬산은 가장 현실적이다. 데이처럼 오로지 자기세계에 갇혀 한 가지에 목숨 걸지 않으며, 적당히 사회에 적응도 하면서 인간으로서 지킬 것은 지키는 인물이다. 나는 영화가 데이와 쥬산의 관계에 대해서 더 많은 부분을 보여 줬다면, 어쩌면 쥬산과 데이의 관계는 지금의 영화에서 보이는 갈등의 관계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영화의 전체적인 흐름은 쥬산이 샬로를 데이의 속박에서 빼내기 위해 자꾸 경극을 그만 둘 것을 종용하고, 데이 역시 끝까지 쥬산의 호의를 뿌리치며 쥬산과의 관계를 갈등하는 관계로 묘사한다. 하지만 쥬산의 죽음에 마치 정신 잃은 사람처럼 날뛰는 데이의 모습과 아편의 고통으로 괴로워하던 데이에게 모성애를 느끼는 쥬산의 모습은 서로 미워할 수 없는 두 사람의 내면적인 정서를 말해주고 있다.
영화 속에서 ‘엄마 추워, 강물이 얼어버리겠어’ 라는 데이의 대사는 아직도 내 마음을 아리게 한다. 자신이 어머니에게 버림받던 그 추웠던 날, 그는 손가락이 잘리고 어머니에 의해 여성을 강요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지만, 그는 평생 자신을 버린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살았던 데이의 어둡고 긴 외로움과 어쩔 수 없는 것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 속에서 웅크려지는 데이의 삶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쥬산의 품에서 힘없이 이 대사를 되뇔 때의 데이의 모습은 나에게는 아편에 찌든 추한 사람의 모습이 아닌, 누구보다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사람의 모습이었다.
패왕별희 경극 속에서의 우희, 영화 속에서의 데이, 그리고 현실에서의 장국영. 그들의 인생은 한때는 사랑 받지만, 결국 자살을 통해 생을 마감하는 너무도 닮은꼴이다. 장국영의 죽음이 아직까지 정확히 해명되지 않는 것은, 어쩌면 경극 속 자신을 우희로 착각하며 살던 데이처럼, 배우로서의 자신과 현실과의 모호한 경계를 극복하지 못한 결과의 죽음이 아닐까? 지금까지 장국영의 죽음을 애도하는 많은 사람들을 보며 단순한 한 배우의 죽음에 너무 민감한 것이 아닌가 하는 한심한 생각이었다면, 지금부터는 위대한 배우, 예술적인 무형 문화재 손실로써 안타까움으로 나 또한 그의 죽음을 애도한다. 현실 밖에서 그리고 스크린 밖에서 그가 진정으로 자유와 행복을 찾을 수 있기를 기원한다.
이상지<대중문화예술대학원·공연예술학과·석사과정5>
이상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