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력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미국 University of Texas At Austin 경제학 M.A./ 동아일보 워싱턴특파원/중앙일보 경제담당국장/ 편집국장대리/논설위원 /중앙일보 영어신문 IHT-JoongAngIlbo 편집인/본부장/논설고문

대학경쟁력 꼴찌의 반성

며칠 전 스위스의 IMD(국제경영개발연구원)가 발표한 <2004국가경쟁력순위>를 보면 은근히 부아가 치민다. 한국이 중국은 고사하고 태국과 말레이시아에도 뒤진다니 입맛이 씁쓸하다. 더욱 기가 차는 것은 미래의 국가경쟁력과 직결되는 대학의 경쟁력이 조사대상 60개국 가운데 59위로 꼴찌에서 두번째라는 사실이다.
국가경쟁력은 세계시장에서 상대방보다 비례적으로 부(富)를 보다 많이 창출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대학교육이 여기에 어느 정도 기여하는 가를 순위로 매긴 것인 대학경쟁력이다. 초고속통신망 세계1위, 인터넷접속 세계2위의 정보화강국 한국의 대학경쟁력이 꼴찌라는 것이 말이 되는가.
사실 객관적인 교육지표만을 놓고 보면 한국은 교육 모범국이다. 문맹율과 중도 탈락율은 초중고를 통털어 세계에서 가장 낮고 취학율과 대학진학율은 가장 높은 편이다. 우리의 중고생들은 물리 수학 등 올림피아드나 각종 세계경시대회에서 상위입상을 도맡아한다. 그럼에도 대학경쟁력이 꼴찌라면 우리의 교육시스템에 분명 큰 문제가 있다. 미래사회를 스스로 개척해 갈 수 있는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역량을 길러주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우리 대기업들의 인력채용관계자들 입에서‘대졸 신입사원을 뽑아보았자 쓸모가 별로 없다’는 푸념도 자주 나온다. 새로 뽑아 시간과 돈을 들여 훈련시키는 것보다 이미 훈련된 경력자의 스카우트를 선호하는 경향도 두드러 진다. 입시위주의 학관식 교육에 길들여진 사고와 체질로서는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만들어내고, 문제를 함께 생각하고 풀어내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읽고 쓰고 셈하는 능력은 기초교육의 도구에 불과하다. 초 중 고생의 수학능력은 세계 최고수준인데도 왜 한국에서 세계적인 수학자가 나오지않는가. 인터넷게임의 세계적 고수(高 手)들이 즐비한 한국에서 창의적인 게임과 혁신적인 게임기계는 왜 만들지 못하는가. 연주의 신동과 귀재들이 꼬리를 무는 한국에서 세계적인 작곡가는 여태 배출되지 않고있는가. 인성과 창의성을 배제하고 효용가치와 기능만을 중시하는 우리의 교육체제와 사고방식의 산물이라해도 과언은 아니다.
세계는 창의력을 갖춘 자가 지배하는 뇌본(腦本)사회로 급속히 치닫고있다. 가치창출의 근원이 토지나 자본이 아니고 인간의 정보와 지식이 부의 원천으로 갈수록 각광을 받는다. 경제권력의 바통도 물질에서 정신으로 옮아간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wealth of nations)을 대신한 소위‘아이디어 국부론’(wealth of notions)이다. 쓸수록 효용이 줄어드는 수확체감이 아니라 비용을 들이지않고 쉽게 복제 확대 재생산해내는 체증(遞增)의 세계다..
아이디어로 국부를 증진시키려면 우선 중요한 것이 열린 마음이다. 남의 것을 무작정 받아들이고 배껴 쓰는 것이 아니라 함께 생각하고, 함께 세계를 만들어가는 마음가짐이다. 세계속에서 우리를 보고, 우리문제를 세계의 시각에서 생각하는 총체적 안목과 자세다.
세계화는 다양성이 인정되고 서로 다른 삶의 방식과 사유체계가 공존하는 지구촌 한마당이다. 세계화가 미국화라며 국제적인 반대도 거세지만 우리가 원하던 원치 않던 세계화는 이미 현실(globality)로 우리생활 깊숙이 파고들고 있음을 인정해야한다.
민족이나 자주라는 틀 속에 자신을 가두지 말고 모든 문제를 인간으로 접근하고 풀어나가는 자세가 중요하다. 세계화는 주권의 포기가 아니다. 세계화시대일수록 경쟁력 있는 우리 것은 있어야한다. 마음속의 패배주의와 피해의식을 접고 남의 것이라도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소화하고 수용해 우리 것으로 재창조할 수 있어야한다. 전문성이 있으면서도 폭넓은 식견을 갖춘‘T자형’인간으로 자신을 갈고 닦아야한다.
한 시대에 그 사회가 공유하는 정신이 시대정신이라면 글로벌하게 생각하고, 행동은 개별국 실정에 맞게하는(Think global, Act local) 글로컬리즘(Glocalism)이야말로 아이디어국부론을 뒷받치는 시대정신이라 할 수 있다. 감성과 광기에 자신을 매몰시키거나, 눈앞의 것에 급급해 무모하게 방파제를 쌓는 것보다 글로벌파도를 유연하게 타고 넘으며 아이디어와 지식의 뉴 프론티어를 헤쳐 나갈 때 우리의 대학도, 나라도, 우리의 삶도 훨씬 더 역동적이고 풍요로워질 것이다.
변상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