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야 일식(日蝕), 태풍, 홍수, 가뭄, 지진 등이 일어나면 이를 자연현상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고대인들은 그렇지 않았다. 고대인들은 현대인들과 달리 천문(天文)·기상(氣象)에 대해 무지(無知)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대부분 하늘(天)에 대해 사람을 내려다보며 감시하는 신령스러운 존재인 상천(上天)으로 인식하였다. 그러므로 옛날 사람들은 하늘의 뜻을 위배하면 엄한 벌을 받는다고 믿었다. 이같은 인식 때문에 하늘이 인간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을 모두 결정한다고 여겼다. 이러한 생각은 별다른 인식의 전환 없이 계속 이어져 내려왔고, 우리 선인(先人)들도 그렇게 믿었다. 그러니 성운(星雲)이나 일식, 천둥과 번개, 태풍과 폭우, 가뭄과 홍수, 지진 등과 같은 자연현상을 이해할리 만무하였다. 따라서 천문·기상의 이변(異變)에 대해 왕을 비롯한 모든 백성들은 두려운 마음을 가졌다. 그리고 이러한 이변은 왕이 덕을 쌓지 않았거나, 신하들이 왕을 잘못 보필한 때문이라고 믿었다. 즉 정사(政事)와 연관시켰던 것이다. 그러므로 조정의 대신(大臣)들은 임금을 잘못 보필했기 때문에 이같은 이변이 발생했다 하여, 이에 책임을 지고 사직을 하기도 하였다. 또한 왕은 덕을 쌓고 소식(小食)과 금욕(禁慾)을 하면서 반성하는 한편, 국가에서는 기우제 등을 지내 하늘의 노여움을 풀고자 하였다. 이것이 당시로서는 최선의 해결책이었다. 그런데 동양, 특히 한국과 중국 등에서는 근대화되기 이전까지 이렇게 인식하였으니 그 무지함을 짐작할 수 있다. 「미암일기」에는 이와 관련된 내용이 있는 바, 여기에 소개한다.
“엎드려 보니 초엿새 밤 주상께서 비망기(備忘記)를 내려 전교하시기를, ‘근래에 와서 태백(太白)이 낮에 나타나더니 오늘은 하늘에 뻗치었다. 이는 실로 비상한 변이요, 하늘에 뻗친 것은 더욱 큰 변이다. 내가 놀랍고 두려움을 금할 수 없다’ 하셨다.… 영남의 서부 열세 고을에 이 달 초엿새와 초이레 동안 비바람이 크게 몰아쳐 벼와 곡식들이 모두 손상을 입고, 관사(官舍)의 창과 벽이 모두 부서지고 지붕의 기와가 다 날아갔으며, 민가가 전복되고 나무들이 부러지거나 뿌리째 뽑혀 매우 참혹하다고 한다.… 운봉(雲峯)에 지진이 나서 해괴제(解怪祭)의 향(香)과 축(祝)이 내려왔지만, 나는 대기(大忌)이기 때문에 출영(出迎)을 못했다.… 내가 나아가 아뢰기를 ‘재이(災異)가 일어난 것이 꼭 무도(無道)한 세상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도가 있는 때라도 하늘의 마음이 임금을 사랑하여 때로는 재변을 보여주어 각성케 하는 것이니,… 주자(朱子)가 말씀하시기를 「성왕(聖王)은 재이(災異)를 만나면 두려워하여 덕을 쌓고, 일을 바르게 하므로 재앙이 변하여 상서롭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어제 황해감사가 계문(啓聞)한 글과 곡산군수가 보고한 내용은 ‘이 달 초닷새 진시에 백홍(白虹)이 태양을 관통하여 변이(變異)가 비상하다’는 것이었다. 주상께서 서장(書狀)을 보시고 홍문관으로 하여금 전례(前例)를 널리 참고해 보라고 하셨는데, 금일에 옥당(玉堂 : 홍문관)에서 차자(箚子)를 올려 주상께 ‘덕을 닦으시라’ 했다고 한다.… 어제 전라감사의 서장(書狀)이 올라왔는데, …‘정월부터 비가 오지 않아 냇물이 고갈되고 땅이 말라붙어 비록 비가 적게 내리면 조금 젖었다가 금방 말라 버리니 도내(道內)의 가뭄이 너무나도 심합니다. 절서(節序)는 망종(芒種)이 임박했는데 씨나락을 붙이지 못한 곳이 너무나도 많아 남해

‘지리산’ 금성산의 신에게 한 번 기도를 드렸으나, 비가 오지 않으니 다시 한 번 기도를 해 보려고 합니다. 향·축 등을 하송(下送)하도록 예조(禮曹)에서 계하(啓下)하여 주십시오’ 하였다. 그제 사간원에서 올린 차자(箚子)를 보니 대략 쓰였기를, ‘근일 이래로 비상한 변과 놀라운 재앙이 층층 첩첩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전하께서 왕위를 계승한 뒤로 능히 선왕(先王)의 뜻을 이어 받으시어 무고한 사람들을 석방해 주니 지극히 다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는 아직도 펴지 못한 원통함이 있어 무고와 억울함을 당하여 구천에서 원통해 하는 자가 얼마나 많겠습니까?… 마땅히 풀어주시고 유체된 것이 없게 하여 하늘의 노여움에 응답하기를 서둘러야 함에도, 조정의 논의가 겨우 일어나자 즉시 단호히 거절하는 뜻을 보이셨으니, 이 어찌 대신(大臣)을 중히 여기고 억울함을 풀어주는 의리이겠습니까? 대신의 말을 중히 여기시고 천지의 틀어진 기상(氣象)을 소멸시키는 일을 안하십니까?’ 하였다.… 삼공(三公)이 계주(啓奏)하기를 ‘어제 뇌성과 번개 치는 것이 마치 여름철과 같아 신 등이 더욱 황공하옵니다. 청컨대 신 등을 파면하시와 하늘의 견책(譴責)에 보답하소서’ 하였다.”
선조(宣祖)초에는 유난히 천문·기상 이변이 자주 일어났다. 우리 선인들은 천문·기상의 이변을 정사(政事)와 결부시켰다. 즉 왕도(王道)와 지치(至治)가 행해지면 재이(災異)는 거의 발생하지 않지만, 패도(覇道)가 행해지면 천문·기상의 이변이 자주 일어난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왕들은 재변(災變)이 발생하면 그 해결책으로 수덕(修德)에 힘쓰고 기우제나 해괴제(解怪祭)를 지내는 등 하늘에 정성을 보이었다. 뿐만 아니라 왕은 부모와 같은 천지(天地)를 두려워하고 공경해야 하며, 항상 수덕(修德)·절용(節用)·애인(愛人)해야만 재이(災異)가 발생하더라도 그 반응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 조상들이 천문·기상의 이변을 통해 수덕과 왕도정치의 필요성을 재인식하려 했던 점은, 오늘날과 비교할 때 참고할 만하다. 홍수가 났는데도 고위 공직자가 연극관람이나 골프를 치면 되겠는가? 금년 여름에는 ‘사후약방문격’이 아니라, 미리 대비하여 기상 이변으로 큰 피해를 입지 말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송재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