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소개하는 우언은 임상덕(林象德, 1683∼1719)의 [함정에 빠진 호랑이[陷穽虎]]이다. 지난 주에 소개한 [수탉과 병아리[子老　]]가 유종원(柳宗元)의 <삼계(三戒)> 가운데 [영주 모씨네 쥐[永某氏之鼠]]의 이야기를 변용 재창조한 것이었다면, [함정에 빠진 호랑이]는 [검 땅의 당나귀[黔之驢]]를 반(反)모방한 작품이다.
현(縣)의 어느 마을에서는 사나운 호랑이에게 해를 입을까 걱정하여 함정을 팠는데, 과연 이 함정을 이용해서 호랑이를 잡았다. 그런데 마을의 한 사내아이가 함정에 빠진 호랑이를 살펴보다가 그만 미끄러져서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다. 함정에 떨어진 아이를 보고서도 호랑이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아이가 호랑이 함정에 빠졌다는 소식을 듣고 놀라 달려왔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을 해도 호랑이와 함께 있는 아이를 구할 방도가 없었다. 고민 끝에 사람들은 굵은 두레박줄을 위에다 단단히 붙들어 매고 함정 속으로 드리웠다. 그런데 줄을 붙잡은 것은 아이가 아니라 호랑이였다. 하지만 호랑이는 줄을 잡고 올라올 수 없었다. 호랑이가 줄을 잡자 사람들은 아이를 구하기 위해 활을 쏘고 돌을 던지며 위협하였다. 그러자 호랑이는 못 본 척 내버려두었던 그 아이에게 다가가 잡아먹으려는 듯 갑자기 아이의 옷을 물어 찢기 시작하였다. 이를 본 사람들은 더욱 겁에 질리고 놀라며 어찌할 줄 몰랐다. 이 때 그 마을의 나이든 어른[古老]가 말하였다.
“아이를 살리려거든 어서 함정의 문을 열어라. 참으로 지혜로운 호랑이구나.”

마침내 함정 문을 열자 호랑이가 뛰쳐나갔다. 아이 또한 온전하게 구출할 수 있었다. 지난번 그 어리석은 호랑이였다면 반드시 하루아침의 노여움을 이기지 못하고 사람들에게 사납게 굴었을 터이나, 이번 호랑이는 그렇지 않았으니, 지혜롭다고 하지 않겠는가? 무릇 호랑이의 포악함과 용맹함으로도 자신을 위해 일을 도모함에 그 주밀(周密)하고 원대(遠大)하기가 이와 같으니, 기이하기도 하도다.
검(黔) 땅의 당나귀는 호랑이 앞에서 섣불리 울어 젖히고 발길질을 해대며 자신이 가진 얼마 되지 않는 재주를 다 드러내 보였다. 그러나 결국 자신이 가진 재주가 그것뿐임이 드러나 잡아먹히고 말았다. 반면 함정에 빠진 호랑이는 위기의 상황에서 당황하지 않고 어떻게 해야 살아나갈 수 있을지를 신중하게 생각하여 행동함으로써 자신의 목숨을 건졌다.
함정 속으로 드리워진 줄은 호랑이의 목숨을 건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만일 호랑이가 이 줄에 의지해서 목숨을 구하고자 했다면, 줄에 매달린 호랑이는 그로 말미암아 화살의 표적 내지 사람들의 사냥감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자신의 목숨을 구하고자 한 행동이 도리어 죽음을 재촉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만 것이니, 검 땅의 당나귀와 같은 신세를 면치 못하였을 것이다. 그렇다고 함정에 떨어진 아이를 잡아먹는다 한들 자신의 목숨이 보장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람들이 아이를 구하기 위해 자신에게 활을 쏘고 돌을 던지는 것에 대해 화풀이를 한다고 아이를 잡아먹는다면, 순간적인 분풀이는 가능할지 몰라도 그것이 그의 목숨을 구하는 길이 되지는 않는다. 그의 목숨을 건지기 위해서는 함정에서 나갈 수 있는 문이 열리도록 하는 것밖에는 없다.
이러한 사실을 분명히 꿰뚫어 알고, 그것을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 어떠한 시련도 참고 견디며 섣부른 행동을 하지 않는 호랑이에게서, 우리는 은인자중(隱忍自重)하며 대사(大事)를 도모하는 방법을 배울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 글의 작자 임상덕은 "재앙은 방심하는 데에서 일어나고, 훌륭하고 좋은 생각은 자신에게 주어진 문제에 대해 끊임없이 근심하고 걱정하는 데에서 생겨난다."고 하였다. 경거망동하지 말고 매사에 신중하게 대처하라는 교훈을 전달하고자 한 것이다. [함정에 빠진 호랑이]는 [검 땅의 당나귀]와는 서로 다른 상황을 설정하고 이야기의 전개와 결말이 전혀 다르게 짜여져 있지만, 이야기를 통해 전달하고자 한 뜻은 동일한 것이었다고 하겠다. 윤승준<교양·강의전담> 초빙교수
윤승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