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냥불로 아침과 저녁이 시작되던 시절
아직도 방산시장 한 귀퉁이에 옛날 성냥이 남아 있었다


얼마 전 친구의 집들이에 초대를 받고, 가까운 백화점을 찾았다. 평소 선물과는 거리가 멀었기에 딱히 집들이 선물이라 해서 떠오르는 것이 없어 그냥 무작정 백화점을 찾은 터였다. 그러나 막상 문을 열고 들어서니 이게 웬걸, 도자기 세트니, 주방세트니, 바디용품 세트니 또 무슨 선물세트니 이건 너무 많아 무얼 고를지 헷갈릴 정도다. 또 가격은 왜 그렇게 비싼지…그냥 점원이 추천해준 비누세트 하나 집어들고 도망치듯 나왔다.

별 수고 없이 쉽게 선물을 고를 수 있어 편하긴 했지만, 한편으론 각양 각색의 선물처럼 본질보다는 형식과 내용이 중요해진 요즘 세상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요즘같이 풍요롭지 못했던 옛날에는 집들이 선물하면 생각해 볼 것도 없이 ‘성냥’을 꼽았다. 당시에는 이사를 한 집이나, 장사를 개업하는 집에 갈 땐 팔각성냥 한 통씩은 꼭 사들고 가야 가는 이들의 발걸음이 가벼웠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그 흔한 라이터도 없던 그 시절, 성냥이 귀했던 까닭도 있지만 성냥에는‘집안의 앞길이 성냥불처럼 환하게 밝혀지고, 가세가 활활 타오르라’는 마음이 담겨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들을 수 없지만 당시 노래 중에 ‘성냥 공장 아가씨’란 노래가 있었다.
“인천에 성냥공장 아가씨∼ 한 달에 한 갑 두 갑 일년에 열두 갑∼ 치마 밑에 감추고서∼”
누군가 장난 삼아 지어낸 노래겠지만, 이 노랫말에는‘성냥’에 얽힌 우리네 애환이 담겨 있다.
우리 나라에 처음 성냥이 들어온 것은 한일합방 직후 일제가 인천에 성냥 공장을 세우면서부터. 일제는 전국 각지에 성냥공장을 잇달아 설립하면서, 시장을 독점해 비싼 값에 성냥을 팔아 착취의 수단으로 사용했었다. 그러니 매일 성냥을 만들면서도 성냥 한 갑 살 수 없었던 가난한 조선의 여직공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성냥을 빼내고 싶었을 것이다.

이렇게 일제의 착취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했던 성냥은 해방이 되고, 세월이 지나면서 우리네 문화로 자리잡았다.
어머니의 하루는 성냥불을 켜는 것으로 시작됐다. 장작에 불을 당기기 위해서, 밥을 하기 위해서, 물을 끓이기 위해서도 성냥에 불을 붙여야만 했다. 이처럼 성냥은 우리 삶의 ‘시작’이었다.
어머니들은 이런 성냥을 부엌 부뚜막에 물에 젖을새라 신주처럼 모셨고, 한 개비 한 개비 아껴서 불씨를 지폈었다.

그러한 우리네 어머니의 삶을 떠올리며 인사동을 찾았다. 오래 된 것은 인사동이란 단순한 공식을 성립시키는 필자가 안타까웠지만. 어쨌든 인사동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뜻밖에도 인사동의 한 골동품 가게에서 오래 전 어머니의 성냥을 찾을 수 있었다.
‘기린표 통성냥’,‘아리랑 성냥’ 그리고 ‘유엔성냥’이름도 정겹다. 그곳에서 성냥은 이제 다시 고귀한 신분으로 변해있었다.

"한 갑에 만원입니다. 그림 그려진 것은 1만 5천 원이요" 주인 아저씨의 말에 아무 말도 못하고 나오고 말았다. 1백원도 안 하던 것이 1만원이라니…
아저씨 말에 따르면 판촉물 공장에서나 주문에 맞춰 만들면 모를까 이제 성냥을 소매로 파는 곳은 없다고 한다.
그랬다. 이제 성냥은 자신의 이름을 버리고, 무슨 호텔이니 무슨 술집이니 다른 이름으로 세상에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성냥의 의미도 사라졌을 터.
그래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왠지 성냥이 있을법한 허름한 구멍가게를 찾아 둘러 봤지만 더 이상 성냥을 파는 가게는 없었다. 그러다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에서 뜻밖에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인사동에서 30년째 가게를 해왔다는 주인아저씨는 "청계 5가 방산 시장에 가면 아직 성냥을 팔 거야"라며 손수 약도까지 그려 준 것이다.

그렇게 찾아간 방산 시장, ‘한진상회’라는 아주 조그만 점포에서 아직도 유엔 팔각성냥을 팔고 있었다. 먼저 가격을 물으니 6갑을 묶어 4천 원에 판다고 한다. 그래도 높아진 가격보다 아직도 팔고 있다는 사실이 더 놀라울 따름이었다.
아직도 성냥을 사가는 사람이 있냐는 질문에 주인 이환섭(62)씨는 "요즘 누가 성냥 쓰나? 어르신들이나 사찰에서 가끔 사가니깐 놔두는 거지"라고 한다.

어르신? 사찰? 의아한 표정을 눈치챈 그가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불을 상서로이 여겼어, 조상 님들은 불이 이승과 저승을 이어준다고 믿었거든."
"라이터야 손쉽게 켜댈 수 있지만, 머리가 부서지는 아픔을 겪고 불을 내는 성냥불의 가치를 더 소중히 생각하는 것이지" 그래서 아직도 제사의 초와 향불을 피우기 위해 성냥을 찾는 이가 있다는 것이다. 성냥불에 담긴 또 다른 의미를 깨닫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성냥불은 우리네 삶 속에서 하나의 상징이었다. 마치 프로메테우스가 신으로부터 불을 훔쳐 인류에게 전달해 준 것처럼 ‘성냥’은 우리 삶 속에서 새로운 ‘시작’이었던 것이다.
비록 지금은 라이터에 밀려 사양화의 길을 걷고 있지만, 아직 이러한 소중한 의미가 기억되는 것에 잠시 위안을 삼는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잊혀지는 것들은 소중한 추억으로 남는다’ 그것이 바로 우리네 삶일 것이다.
<글/사진 오규욱 기자>  ohkw@dankoo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