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소개하는 [오학상송설](烏鶴相訟說)은 까마귀와 학이 희유조(希有鳥)를 찾아가 흑과 백의 우열을 시비하는 이야기로, [황새결송]이나 [서대주전], [까치전] 등의 조선후기 송사형 우화소설과 관련하여 주목되는 작품이다. 작자 유의건(柳宜健, 1687∼1760)은 효성이 지극하고 형제간의 우애가 돈독했던 인물로, 특히 시(詩)와 역(易)에 남다른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벼슬을 하지는 않았다. 원문을 다 보일 수 없어 경개만을 소개한다.
까마귀는 검은 빛이고 학(鶴)은 흰 빛인데, 까마귀는 검은 것이 옳다고 여기고, 학은 흰 것이 옳다고 여겼다. 둘이 희유조(希有鳥)를 찾아가 판결을 해 달라고 청하며 송사(訟事)를 벌였다.
학은 공자의 말을 빌어 "희다고 말하지 않겠는가? 검은 물을 들여도 검어지지 않으니."라 하고, 까마귀는 노자의 말을 빌어 "현(玄)의 또 현(玄)함, 그것이 곧 모든 만물을 낳는 문이다"라고 하였다. 또한 음양오행(陰陽五行)과 상생상극(相生相剋)의 설을 가져와 학이 ''''백이 흑을 낳았다''''고 하자, 까마귀는 ''''더러운 진흙이 연꽃을 낳고 늙은 조개가 진주를 낳으니, 연꽃이나 진주를 일러 진흙이나 조개만 같지 못하다고 함이 가하겠는가.''''라고 반박하였다. 학이 또 "사람들이 백옥은 귀하게 여겨도 검은 석탄은 천하게 여긴다."고 하자, 까마귀는 "사람들은 검은머리를 좋아하지, 흰머리는 싫어한다."고 반박하였다. 여러 증거를 들이대며 서로가 낫다고 주장하는 논쟁이 끊이지 않았다.
희유조가 ''''백(白)은 허물이 없고, 흑(黑)은 재앙이 된다''''고 하면서 ''''어찌 능히 희디흰 백으로 검디검은 더러움을 뒤집어 쓸 수 있겠는가?''''라고 판결하고는, 마침내 까마귀를 몰아냈다.
이에 흑이 백만 같지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된 까마귀는 다시금 없는 것을 꾸며내고 날조하여, 스스로를 희다 하고 학을 검다 하여 희유조에게 또다시 소송을 제기하였다.

날이 저물어 흑백을 분별하지 못하게 되자, 까마귀는 "학 중에도 현학(玄鶴) 황학(黃鶴)이 있으니, 학이 반드시 흰 것은 아니요. 진시황 때 백오(白烏) 수천 마리가 있었으며, 연단(燕丹) 때에는 까마귀 머리가 희었으니, 까마귀가 반드시 검은 것은 아니다."하였다. 학이 왜 말을 바꾸냐고 하자, 까마귀는 "지난번에 검고 이번에 흰 것이 내게 해될 것이 무엇이냐?"며 억지를 부렸다. 까마귀 떼의 억지 주장에 분함을 참지 못하던 학이 마침내 길게 울면서 날아가 버렸다.
그러자 까마귀는 희유조에게 학이 자신의 검은 것을 숨기기 어렵게 되자 먼저 가버렸다고 하면서, 그 죄를 다스려야 한다고 하였다. 마침내 수리를 보내어 학을 잡아왔다. 학은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면서 날이 밝기를 기다려 흑백을 밝혀달라고 청하였다. 그러나 희유조는 학이 거짓말을 한다고 노여워하며 "시비가 뒤섞이고 상벌이 잘못되어, 양공(羊公)의 학을 포창하고 그릇되이 증삼(曾參)의 새를 견책했었는데, 이번에 그것을 바로잡는다"는 요지의 죄안(罪案)을 작성하여 새들에게 보이고, 학을 죽이라고 명하였다. 학은 "세상이 혼탁하니 백을 바꾸어 흑이라 한다"고 탄식하면서 목숨을 거두었다. 이 소식을 들은 안처선생(安處先生)이 시비가 전도된 현실을 깊이 탄식하였다.
억지 궤변에 의하여 옳고 그름이 뒤바뀐 현실에 대한 비판을 담은 우언이다. 전고(典故)의 인용이 빈번하여 낯설어 보이지만, 그 서사적 구성과 형상화가 탁월한 작품이 아닐 수 없다. 특히 흑이 백만 같지 못함을 알게 된 까마귀가 날이 저물어 흑백을 분간하기 어려운 때를 틈타 자신이 희고 학이 검다며 다시 소송을 제기하는 대목이나 희유조의 부당한 판결로 인하여 억울한 죽음을 맞게 되는 학을 그린 대목 등은 독자들에게 적지 않은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고 문제의 심각성을 따져 묻게 한다. 까마귀와 학의 팽팽한 대립과 흑백이 뒤바뀌고 시비가 전도되는 상황은 조선후기 사회가 여러 방면에서 동요되고 있던 이행기의 모습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겠다.
윤승준<교양·강의전담> 초빙교수
윤승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