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애니메이션, 문화 산업으로 성장시키기 위한 인식의 전환 필요

지난 수년간 영상 산업의 커다란 발전과 함께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떠오른 산업이 있다. 그것은 바로 애니메이션 산업이다. 특히 영화 산업 기술이 첨단 과학과 접목되어 일반 영화와 애니메이션의 구분이 모호해지면서 그 분야가 국경과 시간을 초월해 육성할 수 있는 산업으로써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일본에 이어서 세계 애니메이션의 30%를 그려내는 세계3위의 애니메이션 생산국이다. 하지만 우리의 애니메이션 수준은 그리 높지 않다. 지난 30여 년 간의 애니메이션의 하청 생산국가로서 창작 제작을 하는 기술은 많이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1990년대 후반, 영상산업에 점점 발전을 더해 가고 체계적인 애니메이션들이 조금씩 등장하였다. 「누들 누드」, 「영혼 기병 라젠카」, 「멀크와 스웽크」 등이 있다. TV 애니메이션 쪽은 정부가 국산 애니메이션의 성장을 위해 국산 애니메이션의 의무 방영 비율을 정한 이후 활발히 제작되었다. 그리고 서울 국제 만화 페스티벌 등 여러 가지 행사들을 개최하면서 세계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0년대의 시작과 함께 극장판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도약이 시작되었다. 2001년 「마리 이야기」를 시작으로 「원더풀 데이즈」 그리고 「오세암」까지 세 편의 순수 창작물이 사람들 앞에 선을 보였다. 물론 많은 시행착오와 문제점, 그리고 미약한 부분을 많이 보였지만 나는 애니메이션의 강국으로 가는 작은 몸부림으로 여기고 싶다.
「마리 이야기」가 극장에 선을 보였을 시기에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애니메이션을 단순히 아동을 위한 영상 물로 인식하였기에 홍보에 많은 부분을 투자하여 성인 관객들을 확보하려 노력하였지만 막상 「마리 이야기」가 뚜껑을 열었을 때 아이들이 보기에는 조금은 지루하고 무거운 주제였고 그렇다고 성인들이 보기에는 그냥 그런 이야기였다. 「마리 이야기」를 제작하는 당사자들 역시 애니메이션은 아동을 위한 것이라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려 애만 쓴 채 주저앉아 버린 거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영화를 선보일 대상에 대한 타겟층에 대한 사전의 준비가 많이 부족하였고 더빙과 같은 기본적인 부분에서도 기술적 한계를 들어내었다.
하지만 「마리 이야기」에서 보여준 파스텔 풍의 색감이나 그리고 전달하려고 했던 메시지는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예쁜 애니메이션이었으나 감동은 별로 전달하지 못한 작품이었다.
「원더풀 데이즈」는 1997년부터 기획에 들어가서 장장 7년에 걸쳐 순 제작비만 80억원이 투입된 국내 최대 애니메이션으로 안팎의 관심이 집중됐다. 이 작품이 흥행에 실패하면 향후 3년 간 국내 애니메이션 시장은 암흑기를 맞이할 것이란 전망마저 제기됐을 정도다. 국내 마케팅비용 17억원까지 합치면 「원더풀 데이즈」의 전체 투자비용은 97억원에 이른다. 이 정도 비용이면 웬만한 국산 영화 3편은 거뜬히 제작할 수 있는 수준이다. 초기 해외시장 반응도 좋았다. 개봉하기 전 칸 영화 마켓에서 100만 달러 이상 수출실적을 거두면서 국산 애니메이션의 해외도전 성공작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원더풀 데이즈」는 불과 보름만에 극장가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전국 관객 수는 26만9천명. 당초 제작진에서 기대했던 전국 관객 100만 명에 턱없이 부족한 수치다. 구전효과를 거두기도 전에 2주도 못돼 스크린에서 모두 철수됐다.

「원더풀 데이즈」는 철학적 심오함이나 스피디하고 빠른 전개가 없다. 오히려 관객의 이해를 위해 자잘한 설명을 지나치게 많이 삽입했고, 그래서 이야기의 전개까지 느려졌다. 이는 아마 가족들과 함께 온 아동관객들을 위한 배려인 듯 하다. 하지만 앞에서 말했듯이, 애니메이션이라 하면 ‘아이들만을 위한 유치한 장르’라는 인식이 대부분인 우리나라에서 그러한 배려는 일반 젊은 관객들을 모으는데 큰 걸림돌이 되었다. 그리고 무거운 주제와 시종일관 계속되는 칙칙한 분위기는 아동관객들의 흥미마저 잃게 만들었다. 결국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어중간한 관객설정이 작품을 망쳐버리고 말았다. 여기에서 우리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다 한 마리조차도 잡지 못하게 되고 놓쳐버리게 되는 평범한 진리를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다. 많은 아쉬움을 남겼지만 애니메이션에 대한 사람들의 의식 전환에 「원더풀 데이즈」가 미친 영향까지 무시할 수는 없다고 여겨진다.
우리나라 애니메이션은 현재 ‘희망’과 ‘우려’의 교차 시점에 와 있다. 현재의 단점들을 고치지 못하고 이대로 주저앉는가, 아니면 좀 더 발전하여 생산에서뿐만 아니라 제작에서도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강국이 되느냐의 길목에 서있는 것이다. 국내 애니메이션이 독창적으로 제대로 해보자고 나선 게 이제 겨우 6∼7년이며,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것이 만화영화 몇 편이 아니라 ''''문화''''라는 점에서 지금까지의 결과가 미흡한 것은 당연하다. 우선 이 애니메이션이라는 문화를 산업으로 바꾸려면 그 문화를 먼저 형성해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먼저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설사 그것으로 돈을 벌고 싶다고 해도 올바른 인식이 되어있지 않은 현실 상에서는 불가능하다. 인식의 전환을 이루고 만화, 애니메이션을 대중 문화의 한 부류로써 인정하여야 한다. 그 다음에야 한국에도 애니메이션이라는 문화, 문화 산업, 문화상품이 존재할 수 있다.
이상지<대중문화예술대학원·공연예술학과·석사과정5>
이상지